모란등 (1968) 으스스한 전설의 고향. 수작. 스포일러 있음.

나는 잔인한 것 싫다, 너무 무서운 것 싫다, 너무 어설프거나 완성도 떨어지는 것 싫다 - 그런 사람에게 딱 맞는
수작이다.
적당히 무섭고, 악당 안 나오고, 전설과 문학의 향취가 넘치고, 잔인한 것 안 나온다.
그리고, 완성도는 높다.
호러영화들은 많지만, 이런 조건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영화들은 드문 것 같다.

오봉날은, 귀신이 이승에 돌아온다는 일본 명절이다.
오봉날에는 등불을 강에 띄우는 풍습이 있나 보다.
하기와라라는 사무라이는 오봉날 강에 갔다가,
풀에 걸려서 강으로 못 떠내려가고 있는 등불을 보고,
막대기로 건드려 떠내려가게 해 준다.
여러분은 이런 것 함부로 하면 안된다.
이때 젊은 여자가 중년의 하녀와 함께 나타나서 고맙다고 말한다.
하기와라는 예의 상 꾸벅 인사하고 마을로 돌아온다.
하지만,
잘 생기고 예의 바르고 인텔리 분위기가 팍팍 풍겨오는 하기와라에게,
젊은 여자는 이미 뿅 간 상태다.


오봉날의 환상적이고 좀 으스스한 분위기와 그 속을 떠도는
하기와라, 수수께끼의 여자, 등불을 띄우며 즐기는 마을사람들 -
너무 환상적으로 잘 그려졌다.
관객들을 영화 속 세계에 풍덩 내던지는,
그런 신비로운 화면이고 이미지들이다.
희미한 청록빛으로 가득찬,
그 윤곽이 파스텔화처럼 밤 허공 속으로 조용히 흩어지는 세계.
좁은 무대처럼 보이지 않고,
넓게 저 멀리까지 활짝 열려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공간.
마치 밤의 일부분인 것처럼 보이는
조용한 사람들.
누가 귀신인지 누가 사람인지 모르겠다.
귀신도 사람같이 촉촉하고, 사람도 귀신처럼 신비롭다.
이 영화 속 세계는 그런 세계다.
벌써 시작한 지 몇분만에 관객들은 영화 속 신비한 세계에
빠져든다. 훌륭하다.
하기와라는 굉장한 명문집안의 아들이지만,
세속적인 부와 권력에는 관심 없고
빈민가에 내려와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친다.
잘 생기고, 겸손하고, 당당하고, 집안은 명문이고, 인텔리에다가,
이상주의자, 예술가이기도 하다. 도대체 없는 것이 무언가? 젊은 여자 귀신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그에게 계속 찾아온다.


오요네라는 젊은 여자 귀신의 방문을 계속 받으면서도
하기와라는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닫지 못한다.
오요네는 사무라이 집안의 딸로 예술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받아왔다.
하기와라와는 마음이 잘 맞는다. 함께 음악을 연주하고, 예술을 이야기하고,
마음 맞는 대화를 하고-
며칠 그러다가 보니,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된다.
어찌어찌 둘이서 자기들끼리 결혼까지 하게 된다.


줄거리가 엄청 특별하다거나 하지는 않다.
반전으로 "아니, 저 여자가 귀신이었단 말이야?"하고 충격을 줄 생각도 없다.
이 영화는,
전설의 고향이나 고전문학같은
문학적이면서도 신비롭고 우아한 그런 세계를 만들어내고
관객들을 그 안에서 숨쉬도록 하는
그런 영화다.
이 영화를 보는 재미는 이것이다.
신비로운 세계의 서서히 퍼져가는 그 빛깔을 호흡해 보는 것.
그렇다고 안 무섭다는 뜻은 아니고,
적당히 관객들이 공포를 느끼도록 만든다.
썩어서 뼈가 보이는 귀신이 어째 사람보다 더 착하고 순하다. 애절하고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그런 귀신이다.
귀신이 하기와라에게 해를 끼칠 생각이 없더라도,
하기와라는 귀신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생기가 빠져나가 죽음을 향해 간다.
하기와라를 존경하던 마을사람들은,
귀신이 하기와라에게 찾아오는 것을 알고
귀신을 쫓으려 한다.
하기와라도 마을사람들로부터
그 젊은 여자가 사실은 오래 전에 죽은 사람임을 듣는다.

밤이 되면, 썩어서 뼈가 보이는 청록빛 여자귀신이
허공을 둥둥 떠서 마을로 내려온다.
이 장면이 참 무섭고 신비하고 아름답다.
지금 보아도 특수효과가 훌륭하다.
아니, 지금 특수효과보다 낫다.
이것은 CGI가 아니라
실제 물리적 장치를 이용한 특수효과니까
물리적 실제감이 든다.

오봉날 무렵 며칠 동안만 이승에 머무는 여자 귀신은
애가 탄다.
함께 저승에 가자고 하고 싶은데, 차마 그런 부탁은 못하겠고.
하기와라도 이 여자귀신이 오래 전 죽은 사람임을 알게 되고,
고민에 빠진다.
이 귀신을 쫓아내 버릴 것인가
아니면 서로 사랑하는 이 여자와 맺어질 것인가.
하기와라의 선택을,
관객들은 영화 끝까지 짐작할 수 없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하기와라의 선택을
지켜보게 된다.
영화의 주제나 줄거리가 묵직하고 단단하다.
고전문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듯하다.
날내 나거나 가볍게 촐랑거리는 것이 없는
훌륭한 고전영화다.
특수효과는 상당히 창의적이다. 신비로운 세계를 영화 안에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배우들도 하나같이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다.
추천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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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