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호퍼스], 익숙한 스타일에서 과감히 벗어나다
카란

자연을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기로 한 선택
픽사 애니메이션은 오랫동안 하나의 공통된 미감을 유지해왔다. 캐릭터는 만화적이지만, 질감과 배경은 극도로 정교한 사실성에 가까웠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현실에 닿아 있는 표현을 꾸준히 밀어붙여 온 것이다. 하지만 최근 픽사는 이 전통적인 방향을 조금씩 비틀기 시작했다. <메이의 새빨간 비밀>, <루카>, <엘리멘탈>이 각기 다른 미적 실험을 시도한 데 이어, 2026년 공개 예정인 <호퍼스>는 그중에서도 가장 대담한 변화로 평가된다.
사실적인 자연 대신, 감각으로 느끼는 자연

<호퍼스>는 다니엘 총 감독이 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자연을 사랑하는 소녀 메이블이 로봇 비버의 몸으로 동물 세계에서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설정부터 독특한 이 영화는, 이에 걸맞은 새로운 시각적 언어를 요구했다. 제작진은 동물과 자연을 현실처럼 재현하는 대신, 자연을 바라보는 주관적인 감각과 정서를 표현하는 쪽을 택했다.
다니엘 총 감독은 “관객이 동물들을 보며 만져보고 싶다는 느낌을 받기를 원했다”며, 둥글고 말랑한 형태, 촉감이 느껴질 것 같은 질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평면적인 TV 애니메이션 작업을 해왔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 입체감과 재질감을 적극적으로 실험했다.
인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낸 생동감
캐릭터 아트 디렉터 안나 스콧 역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고 말한다. 제작진은 손으로 만든 세트와 종이 잎사귀 실험, 펠트 질감의 털 표현 등을 활용해 자연이 손에 잡힐 듯한 감각으로 다가오도록 설계했다. 자연 특유의 날것 같은 느낌을 남기면서도, 관객이 정서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균형을 찾는 것이 목표였다.
그 결과 <호퍼스>의 숲과 배경은 세밀한 디테일 대신, 넓은 붓질과 흐릿한 질감으로 표현된다. 빛이 배경을 통과하는 방식 역시 의도적으로 부드럽게 처리돼, <토이 스토리 4>나 <인사이드 아웃 2>와는 확연히 다른 인상을 남긴다.
모든 선택은 이야기로 돌아간다

제작진은 이 변화가 단순한 스타일 변주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안나 스콧은 “현실적인 수채화 표현도 검토했지만, 이야기와 맞지 않았다”며 “모든 시각적 선택은 반드시 이야기와 연결돼야 했다”고 설명했다.
주인공 메이블의 디자인 역시 같은 원칙 아래 만들어졌다. 인간과 비버의 형태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머리 비율을 키웠고, 헐렁한 옷차림과 중성적인 실루엣을 통해 자유롭고 거친 성격을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재킷 같은 소품은 캐릭터의 정서를 은근히 드러낸다.
픽사의 또 다른 가능성
<호퍼스>는 말랑한 질감의 곤충 캐릭터, 친근함을 강조한 둥근 형태 등 곳곳에서 기존 픽사 영화와는 다른 즐거움을 예고한다. 제작진은 의도적으로 많은 요소를 감춰두고 있으며, 관객이 극장에서 직접 발견하는 재미를 남겨두고 있다.
픽사가 기술력을 바탕으로 보다 추상적이고 감각적인 표현을 시도하는 모습을 기대해온 관객이라면, <호퍼스>는 그 변화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분기점이 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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