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VIP 시사회 후기 (스포 주의)
스포일러 주의 부탁드립니다.
돌이켜 보면 세조나 계유정난을 조명하는 미디어는 많이 떠오르지만, 단종은 비극적인 어린 왕으로만 다뤄질 뿐 서사의 주인공으로서 깊이 있게 다뤄진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왕과 사는 남자>의 시도가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단종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며, 무엇보다 그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와의 서사를 다룬다는 점이 흥미로웠거든요. 다만 영화가 단종의 유배 이후를 다루는 만큼, 서사의 진행에 있어 청룡포라는 공간적 제약과 결말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궁금했습니다.
영화 전개상 단종 복위 운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후반부와는 다르게, 전반부는 서사가 비교적 단조롭게 진행되는 대신 단종과 엄흥도 사이의 유대감 형성에 공을 들입니다. 후반부의 감정적 도약을 위한 워밍업에 가깝기 때문에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을 극복하고자 중간중간 개그를 넣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웃음 포인트들 때문에 후반부의 비극성이 더욱 돋보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사람에 따라 다소 과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영화의 오프닝이 전통 사극에 가까웠기에, 이후 청룡포 주민들의 삶이 개그 위주로 그려지는 점이 다소 이질적으로 다가올 수 있겠다 싶었네요.
그리고 많은 이들이 CG를 아쉽게 느꼈던 호랑이 씬. 이 사건은 영화 초반부터 평행선을 달리던 단종과 엄흥도의 감정선을 이어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유배지에서 모든 의지를 잃고 지내던 단종에게 하나의 분기점이 되는 사건으로 그려집니다. 옛부터 호랑이가 지니는 상징성과 인물들의 심적 변화 측면에서 바라보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만, 역시나 저 또한 CG가 많이 아쉬웠어요. CG 때문에 더 진지하고 극적일 수도 있었던 장면이 오히려 가볍게 보이지 않았나 싶네요…
이후 단종과 엄흥도의 감정선에 큰 영향을 끼치는 두 번째 사건이 등장합니다. 영화 초반부부터 한명회와 금성대군이 중간중간 등장해 긴장감을 부여했음에도 비교적 가벼운 분위기에서 영화가 전개되었다면, 이 사건을 기점으로 영화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무거워집니다. 무엇보다 단종이 행동하게 되는 결정적인 동기가 되며,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되기에 매우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해당 사건을 통해 감독은 단종이 왕위 복권 운동에 참여하게 되는 이유가 단순히 권력을 되찾기 위함이 아닌, 소중한 이들을 ― 넓게 보면 백성 그 자체를 ― 지키기 위함임을 드러냄으로써 단종의 올곧음을 조명함과 동시에 “진정으로 올바른 왕(권력자)의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물론 이는 현대적 관점과도 맞닿아 있지만, 과거를 통해 현재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것이 사극의 매력이기도 하니까요. 이러한 단종의 감정선을 표현하는 데 있어 박지훈 배우는 정말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명회와의 대립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강렬했던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단종의 서사에 집중한 나머지, 후반부 엄흥도의 서사가 대본상에서 다소 등한시된 것이 아닌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일련의 사건으로 아들은 목숨을 잃을 뻔했고 자칫했다간 마을 전체가 괴멸될 수도 있었음에도 엄흥도는 끝까지 신의를 지키는 쪽을 택합니다. 결말에서의 엄흥도의 행보를 보면 이해가 가면서도, 해당 부분의 전개가 다소 투박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유해진 배우가 연기로 설득시키지만, 그럼에도 그 공백을 배우에게만 맡겼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네요. 또한 실제 역사를 모르고 보면 단종 복위 운동의 전개가 다소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전반부부터 쌓아 온 긴장감이 다소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달까요…
아쉬운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자체는 재밌게 봤습니다. 또한 곧 설이 다가오는 만큼 시기상으로도 잘 어울리는 영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무엇보다 배우들이 연기를 정말 잘해서 영화의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보고 나서도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유해진과 박지훈 배우의 마지막 독대 씬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ps. 영화를 보고 난 후 포스터를 다시 보니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 후반부의 단종과 엄흥도의 관계성을 한눈에 보여줌과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뱃사공 카론이 떠오릅니다.
뭔가 계속 욕심이 나서 글을 계속 고치고 고치다 보니 후기가 매우 늦어졌네요. 익무 덕분에 정말 뜻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기뻤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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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잘봤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