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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쌍곡선 (1956)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고의 코메디 영화. 스포일러 있음.

BillEv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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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메디영화로 이 정도 경지를 이룬 영화가 우리나라 영화사에 다시 없을 것이다. 

당시 대중예술인들이 다 등장한다. 요즘으로 치면, K-POP 스타니 트롯트 스타니 하는 사람들이 총등장해서
연예계의 complete 한 세계를 영화 안에 구현해놓는 격이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말로만 듣던 전설적인 인물들 - 김시스터즈와 작곡가 박시춘이 나와서 코메디를 한다. 

나중의 원숙한 모습이 아닌, 젊고 팔팔한 사람들이다. 3000곡을 작곡하고 가요사의 최고 대작곡가 박시춘이 40대 초반의 팔팔한 젊은이다. 김시스터즈는 아직 젊음을 시작도 안 한 소녀티가 난다. 이들이 재즈노래를 부르는데, 

의외로 현대적으로 들린다. (관객들은 벌써 여기서 "어? 예상하고 틀린데......" 하고 느끼게 된다. 영화가 낡지 않다.) 여기에 코메디언 양석천이 등장한다. 골골하던 노인의 모습으로 "코메디의 전설"하는 식으로 소개되던 그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35세의 나이다. 에너지가 팔팔 넘친다. 

1956년 영화이니, 지루하고 신파조에 과장이 넘치는 영화로 생각하고 영화를 본다면 첫 5분에 벌써 놀랄 것이다.

김시스터즈의 노래는 분명 일급이고 분위기를 확확 띄운다. 박시춘은 기타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코메디 쪽으로 영화를 틀고 간다. 양석천이 나와서 만담을 한다. 코믹하지만, 인간적이고, 사람 냄새 나고, 잘 만든 코메디 특유의 그 리듬과 유려한 흐름이 있다. 요즘 코메디 영화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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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양훈과 황해가 등장한다. 모두 훗날 대배우 대코메디언들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30대 청년들이다. 

625 이후 부산에 사는 사람들인데, 양훈은 너무 먹어서 병이 걸리고, 황해는 너무 못먹어서 병에 걸렸다. 

양훈은 해변가 대저택에서 호사를 누리며 살고, 황해는 산동네 판자촌에서 굶으며 산다. 

사회 비판이다. 의사 박시춘은 양훈과 황해더러 집을 바꿔 살라는 처방을 내린다. 

양훈은 황해가 되어 굶으며 살고, 황해는 양훈이 되어 마음껏 호사를 누리면 각기 병이 낫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의 처방대로, 양훈은 생전 처음 달동네를 찾아가서 살고, 황해는 생전 처음 대저택에 들어가 

화사를 누리게 된다. 

 

일단, 영화는 기발한 줄거리로 관객들을 빨아들인다.

양훈은 코메디언이지만, 정극연기에서도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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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뒤에 선 뚱뚱한 사람이다. 

바보로 보여서도 안되고, 세상물정 어두운 사람으로 보여서도 안된다. 순수하고 착하고 하지만 현명한 사람이다. 

황해의 누이동생을 보고 그 내면의 아름다움을 꿰뚫어보고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다. 로맨틱코메디의 주인공 역할을 해야 한다. 로맨틱한 분위기,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 서정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 - 거기에다가 아주 약간 코메디도 해서 영화의 분위기를 살려야 한다. 이것을 다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양훈은 이것을 해낸다. 로맨틱 코메디 주인공들 중 역대 최고다. 사실상 이 영화는 양훈의 원맨쇼다.

 

젊은 김희갑이 등장한다. 한국의 짐 캐리다. 성대묘사,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표정과 동작 등이 지금 보아도 

활력이 넘친다. 70년을 넘어 생생하게 전해지는 천재적인 코메디언의 모습이다. 

웃느라고 허리를 못 펴던 여주인공이 "어휴,  이렇게 재주 넘치는 분이 왜 지게꾼이 되어서 산동네를 오르락내리락하세요?" 하니까 "백가지 재주 가진 놈이 밥 먹는 재주 하나는 없는 법이랍니다"하고 길을 내려간다. 

원래 그가 늘 부르고 다니던 노래가 "신체 건강하지만, 쌀 한 톨 벌지 못하는 신세다. 얼씨구 좋더"하는 노래다. 

비참한 현실을 오히려 코믹한 긍정으로 위로해야 하는 비극적 상황을 상징하는 모습이다.

당시 사회에 대한 이 영화의 비판은 날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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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훈은 판자촌으로 가서 황해의 누이동생과 함께 산다. 

그 누이동생이 깐깐하고 날이 선 여자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살아 남으려다가 보니 그렇게 된 것이고,

속으로는 마음 착하고 현명하고 감성 풍부한 여자다. 양훈은 아까 말한 그런 남자고.

선남선녀가 만나 함께 하다 보면, 로맨스가 싹튼다. 

1956년 영화가 로맨틱하면 얼마나 로맨틱하냐고? 역대 최고다. 

저 위의 블루레이 표지를 보라. 지금 저 여주인공은 625 직후 폐허가 되어 잠들어있는 상처투성이의 부산을 

바라보며 산동네 판자집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여주인공의 노래는 비관적이거나 어둡지 않다.

여주인공은 그 비참한 상황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혼자 노래로 부른다. 아무도 이것을 듣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그냥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고 흘러가 버린다. 영화는 보여준다.

그 여주인공이야말로 아름다운 내면을 가진 사람이다.

이 영화를 보면, 관객들은 이 순간, 모두 나와 같이 느낄 것이다. 여배우가 미녀라서가 아니라,

이 순간이 주는 강한 정서적 힘 때문에, 이 순간 이 여자는 어느 미녀보다 몇배는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뒤에 있는 양훈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 뭐 구구절절 말할 필요 없이, 사진 하나만 딱 보아도 느낌이 팍 온다.

이 장면을 실제 영화에서 보면, 인생에 몇번 못 느낄 감동이 저절로 온다. 

요즘 독립영화만도 못한 예산을 가지고 만들었을 텐데, 배우들도 아무 서포트 없이 몸 하나만 갖고 

연기를 했을 텐데, 훗날 아무도 못해낸 영화의 황홀한 경지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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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판자집에서 비참하게 살던 사람들은 얼마나 인생에 낙이 없고 죽지 못해 살았을까 생각하면 안된다.

이 영화를 보면 안다. 인간은 굉장히 강한 동물이다. 이 비참함 안에서도 웃음을 찾고, 행복을 찾고, 사랑을 찾고, 환상을 찾고, 기쁨을 찾는다.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힘이 바로 이것이다. 인간의 이런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

이들은 어쩌면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 

 

이 영화의 로맨틱 코메디는 달달하고 환상적이고 서정적이다. 일급 중의 일급 로맨틱코메디다. 

로맨틱한 상황에서 로맨스가 발생하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 영화는 로맨틱한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먹을 것이 없어 굶다가 간장을 가져다 마시는 가난하고 처절한

상황이 무대다. 수도도 없어서 물을 쓰려면 물지게를 지고 산 아래까지 갔다가 물을 짊어지고 올라와야 하는 

상황이 무대다. 비가 오면 지붕에서 물이 새는 상황이 무대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굉장히 로맨틱한 

사건들이 된다. 영화를 직접 보면 안다.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이런 로맨틱한 사건들은, 

우리나라 영화사에 쉽게 보기 어려울 정도로 애절하고 웃기고 로맨틱하고 환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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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여기까지만 들어도,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감이 올 것이다. 영화가 살아 숨쉰다. 사람 냄새 나고,

감정이 살아 움직이고, 사건들은 발랄하고, 젊은이들은 활력에 넘친다.

이런 코메디영화가 우리나라에 다시 있나 생각해 보면 - 별로 없다. 나는 사실 달리 못 찾겠다.

 

양훈은 황해 누이동생의 아름다운 내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현명하고, 황해 누이동생도 양훈의 순수함과 깨끗한 영혼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현명하다. 그러니까, 둘이 맺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관객들은 흐뭇하게 이것을 바라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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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가령 양훈과 황해 누이동생은 단칸방이라서 모기장 하나를 경계처럼 쳐 놓고 잠을 잔다. 비 오는 날이라서 여름밤이라서 천장에서 물이 똑똑 듣는다. 덥고 찌고 비까지 오고, 배는 고프고, 양훈은 잠을 못 든다. 왜 이 여름밤의 정경이 실감나게 그려졌냐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찍었으니까. 객관적으로 보면 비참 그 자체다. 하지만, 양훈 입장에서는 로맨틱 스 자체다. 왜냐하면 황해 누이동생이 곁에서 자고 있으니까. 뭐 훔쳐본다거나 그런 것 안한다. 그냥 혼자 설레서 잠을 못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모기장 밖으로 황해 누이동생의 손이 뻗어나와 있다. 잠결에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 위로 빗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양훈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손을 밀어 모기장 안으로 다시 집어넣으려 한다. 그런데 갑자기 이 놈 하는 호통이 들린다. 양훈은 잘못 들었나 하고 주변을 보지만, 아무도 없다. 그래서, 다시 손을 잡으려는데, 또 호통소리가 들린다. 양훈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벽에 붙은 황해 아버지 사진 속에서 호통이 들리는 것이었다. 양훈은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막대기를 들어 황해 누이동생의 손을 모기장 안으로 다시 밀어넣는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국식 로맨틱 코메디 장면이다. 정말 로맨틱하다.  

 

cf. 양훈은 술을 좋아해서, 술을 안 먹으면 살 수 있다고 하는데도, 술을 먹고 죽어버린 사람이다. 아마 술을 그렇게 좋아해서 일찍 늙어버린 것일까. 그는 이후, 배우로서는 별반 성공을 못 거둔다. 참 아깝다. 이 영화에서 보여준, 순수하고 싱그러운 로맨틱코메디 주인공의 연기는 정말 대단하다.   

 

cf. 이 영화가 오늘날 영화보다도 더 현대적으로 보이는 것이,

영화에 신파조나 과장이 없고, 굉장히 산뜻 절제되어 있다.

영화에서 어떤 감정을 찾아내는 것은 관객의 일이기 때문에, 배우들이나 감독이 관객의 이런 행위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오늘날 영화들보다 더 쿨하다.

사실 신파조영화들은 오늘날 영화들이다. 감정을 담담히 전달해서 관객들더러 느끼라고 하는 대신, 자기가 호들갑을 떨어서 관객들에게 이것을 느껴라 하고 충동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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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Evans 작성자
동글똥글
이런 영화가 안 알려지는 것은 참 안타깝죠. 우리나라 영화도 뒤져보면 걸작들이 많이 있습니다.
01:05
26.01.24.
2등

못 본 영화인데 글 잘봤습니다.

글을 읽다보니 우리 나라 영화중에 유명인 퍼붓는 걸로 최고의 캐스팅작인 긴급조치 19호가 민망하지만 떠올랐습니다. 그게 왜 재미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개봉날갔는지..

01:00
26.01.24.
BillEvans 작성자
min님
대중예술인들을 강한 스토리 구성 안에 필연적으로 배치해서 그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게 하면 되더군요. 그런데 다들 몰라서 못하는 것은 아니겠죠.
01:06
26.01.24.
BillEvans
납자루떼가 완전히 망하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조폭마누라로 크게 성공한 故서세원분이 긴급조치19호를 들고 나온 것은 스토리부재를 스타들로 메꾸면 된다는 그런 생각이 아니었나 봅니다.영화판을 너무 가볍게 본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마 말씀하신 부분을 몰라서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01:21
26.01.24.
BillEvans 작성자
다크맨
사실 많이 알려져야 하는 영화입니다. 유현목/김진규 주연의 순교자는 잉마르 베리만 스타일의 걸작인데, 꼭 리매스터링해서 극장에 재개봉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01:08
26.01.24.
profile image
우리나라 고전 로코라니 한번 보고 싶네용~
소개 감사합니당!
01:07
26.01.24.
BillEvans 작성자
카란
우리나라 로코 1호가 아닐까 합니다. 최초이자 최고입니다.
01:11
26.01.24.
BillEvans 작성자
이각박한세상에서오르막길을오르다가낙사한사람
로코 많이 보았지만, 이 영화만큼 정서적 힘이 강한 영화는 별로 없을 듯합니다.
01:16
26.01.24.
최초이자 최고라는 수식어를 갖기가 쉽지 않은데 정말 궁금해지네요!!
01:38
26.01.24.
BillEvans 작성자
cocoinbox
궁금하셔도 됩니다. 한형모감독이 상당한 거장이지요. 사실 이런 거장들을 인정하고 떠받들어야, 우리나라 영화계도 덩달아 높아지는 거겠죠.
08:05
26.01.24.
BillEvans 작성자
이상건
좋은 영화는 함께 나누는 것이 기쁨이 배가 되겠죠.
15:51
26.01.24.
profile image
한형모 감독이라면 자유부인이나 운명의 손도
생각나네요.이 작품도 다음에 봐야겠습니다
09:48
26.01.24.
BillEvans 작성자
Sonatine
빼놓을 수 없는 거장들 중 한 명이죠. 이 영화도 아주 멋집니다.
15:52
26.01.24.
profile image
대배우들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작품이네요 게다가 작품까지 좋다니 보고 싶네요 소개 감사해요^^
10:15
26.01.24.
BillEvans 작성자
마이네임
원숙 내지는 노년의 대가들을 보다가 젊었을 적 모습을 보니 에너지가 엄청나더군요.
15:53
26.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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