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연대기] 크리스틴 스튜어트·이모겐 푸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카란

<물의 연대기>로 첫 연출에 나선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주연 이모겐 푸츠가 작품을 만들며 겪은 ‘몸의 기억’, ‘친밀함의 안전’, 그리고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에 대한 욕심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두 사람은 이 이야기가 보기 편한 방식으로 정리된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말하며, 관객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삶을 자기 언어로 다시 쓰게 되는 경험을 바랐다고 강조했다.
ㅡ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뭐였나요?
이모겐 푸츠: 생각이 몇 개였는지 세기도 어려울 정도였어요. 대본을 받자마자 “크리스틴이 각색했고, 연출도 한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게 정말 커요. 사실 이 일 하다 보면 “좋아하고 싶은 작품”을 만나도, 막상 읽으면 어딘가가 안 맞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디어는 괜찮은데 완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든지요. 그런데 이 대본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빨려 들어갔어요. 천천히 읽었어요. 다 담아두고 싶어서요.
그리고 요즘은 배우가 연출도 하고, 창작자가 너무 많아졌잖아요. 그래서 누군가를 붙잡고 “당신 진짜 대단한데 같이 뭐 만들어볼래요?”라고 말하는 게 오히려 더 어려워요. 저는 크리스틴이 지금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 정말 드문 타입이라고 생각해요. 과장되게 튀려고 하는 게 아니라, 본인만 가능한 방식으로 아주 구체적으로 다른 걸 해내는 사람이요. 이 대본도 그 연장선이었고요.
저는 로맨틱 코미디나 애니메이션도 좋아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스크린 위의 사람”이랑 진짜로 연결되는 영화를 보고 싶어요.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너무 인공적으로 보일 때가 있잖아요. 그리고 성숙한 여성 캐릭터가 주연으로 서야 할 자리에 잘 안 서기도 하고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스크린과 연결될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느껴요. 이 캐릭터는 불완전하고, 희망과 환상도 있고, 좋은 걸 스스로 망치기도 하고, 심지어 남이 만든 문제를 내가 책임져야 하는 순간도 있어요. 끔찍한데, 그래서 더 눈을 떼기 힘든 이야기였어요.
ㅡ 첫 연출작으로 이 이야기를 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크리스틴 스튜어트: 원작은 ‘내면의 지형’ 같았어요.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게만 겨우 털어놓는 작은 방들이 있잖아요. 그런 주머니 같은 공간, 좁은 통로들이 책 안에 너무 많았어요. 어떤 부분은 너무 뜨거워서 손대기도 무섭고, 어떤 고백은 위험할 정도로 솔직해요. 그런데 그걸 꺼내 놓는 방식이 너무 대단했고, 저는 그 용기가 정말 자랑스러웠어요.
이건 누군가를 친절하게 붙잡고 “여기부터 이렇게 읽으면 돼요” 하고 안내하는 책이 아니에요. 경험이 흩어져 있는데, 이상하게 목표는 또 아주 선명해요. 읽을 때도, 영화로 볼 때도 인내심이 필요해요. 힘들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시간을 줘야 하니까요. 저는 솔직히 우리가 비슷한 영화만 계속 만들고 있다고 느껴요. 그러면 관객이 ‘자기 생각을 할 기회’를 매일 조금씩 빼앗기거든요. 심지어 그걸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로요.
이모겐 푸츠: 그거, 가부장제가 하는 일이죠.
ㅡ 수영 장면도 있고, 몸을 다루는 방식이 강렬해요. 준비 과정은 어땠나요?
이모겐 푸츠: 수영 훈련을 정말 많이 했어요. 카메라 앞에서 자세가 그럴듯해야 하니까도 있지만, 그보다 “리디아의 머릿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어요. 수영은 그냥 운동이 아니라, 어떤 사람에겐 삶 전체가 되잖아요. 수영하는 사람들의 회고록도 읽었는데, 수영을 하며 생기는 끝없는 허기 같은 게 있거든요. 리디아는 인생 전반에서 그런 ‘바닥 없는 갈망’을 가진 사람이었고요.
웨이트 트레이닝도 제겐 중요했어요. 몸이 강하다는 감각이 필요했거든요. 가끔은 내 몸이 낯설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누군가가 내 몸을 ‘자기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자꾸 번역하려고 할 때가 있어요. 그게 사람을 망가뜨리기도 하고요. 그래서 “내 몸이 뭘 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게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리디아는 강한데 동시에 아주 취약한 사람이잖아요. 그 대비가 몸에서 느껴졌으면 했어요.
크리스틴 스튜어트: 여기서 꼭 밝힐 게 있는데, 이모겐이 훈련하다가 탈장이 두 번이나 왔거든요. 그런데 저한테 말도 안 하고 버텼어요. 촬영 끝나고 나서야 얘기하더라고요. 원작에 저를 완전히 흔든 문장이 하나 있었는데, 결국 영화엔 못 넣었어요. 대신 이모겐의 몸이 그 문장을 ‘말 없이’ 해버렸거든요. 원작에 이런 대사가 있어요.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강했어”라고요. 이 영화 찍을 때 이모겐도 아마 자기 인생에서 가장 강했을 거예요.
이모겐 푸츠: 그리고 그때 크리스틴이 저를 아름답다고 느끼게 해줬어요. 이게 정말 큰 일이거든요.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배우가 다른 배우에게 그런 감각을 준다는 게요. 이 영화에서 ‘몸’이 중요한 이유랑도 연결돼요.
ㅡ 영화가 1인칭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몸을 아주 가까이서 잡는 장면들이 많더라고요. 어떤 의도였나요?
크리스틴 스튜어트: 처음엔 특히 “1인칭인데 어색하지 않게” 만들고 싶었어요. 리디아가 보는 것, 리디아가 갇혀 있는 느낌을 관객이 같이 느껴야 하니까요. 일반적인 영화 문법으로는 잘 안 잡는 각도도 필요했어요. 초반엔 특정 자세, 특정 위치에 ‘붙잡힌 느낌’이 있어야 했거든요. 그게 어린 리디아가 겪는 억압과 물리적인 감옥 같은 경험이랑 맞닿아 있으니까요.
그리고 집을 떠나도, 사실 집에서 완전히 못 빠져나오잖아요. 기억이 따라와요. 유령처럼요. 그래서 번쩍번쩍 들어오는 플래시 같은 순간들이 있어요. 침투하는 생각이거나, 불현듯 찾아오는 경이 같은 것들요. 시간은 직선으로만 흐르지 않잖아요. 어떤 기억이나 소망, 미래에 대한 상상이 지금 이 순간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할 때가 있어요. 그건 정말 개인적인 경험이라 남들이 잘 공유 못하죠.
리디아가 나이가 들수록 영화는 점점 더 ‘정돈된 구성’을 가져요. 몸에서 조금 물러나서 그녀를 바라보는 순간도 생기고요. 그때는 훔쳐보는 느낌이 아니라, 그녀가 자기 기준을 세운 사람이니까요. 저는 방 안에 ‘세 번째 사람’이 있는 느낌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아주 객관적인 와이드 숏으로 확 넓어지는 장면이 있어요. 그건 엄청 공들여 얻어낸 순간이라 더 강하게 느껴져요. 이모겐은..정말 야생동물 같아요. 한 번 튀어나오면 관객이 숨을 멈추게 돼요. 그래서 더더욱 처음엔 가두고, 나중엔 그 감정 감옥을 깨고 나오게 해야 했어요.
그리고 저는 솔직히 “두 사람이 섹스하는 걸 바깥에서 구경하는 장면”은 더는 보고 싶지 않았어요. 대신 안쪽에서부터 보게 하고 싶었어요. 그게 좀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게 진짜니까요.
ㅡ 그 친밀함을 다루는 게 배우로서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모겐 푸츠: 맞아요. 친밀함은 카메라 안팎에서 모두 우리가 계속 배우는 영역이에요. 특히 친밀함에 대한 첫 경험이 누군가에 의해 망가졌거나, 다른 방식으로 각인된 사람이라면 더요. 저는 사람들이 “당신 엄청 오픈적이네요?”라고 말할 때가 있는데, 사실 저는 꽤 단단하고 보호적인 면도 있어요. 누구나 그렇듯 취약한 순간도 있고요. 그걸 카메라 앞에서 가까이 가져가는 건 당연히 취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안전이에요. 실력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 “이들이 나를 지켜준다”는 감각이 생기거든요. 저는 어떤 프로젝트는 그렇게까지 드러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렇게 해야만 했어요. 이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가 거기까지 가야 한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힘들지만, 그래서 하고 싶었어요. 결과적으로는 영화가 저에게 선물처럼 돌아오기도 했고요. 아마 다들 그런 감각이 있었을 거예요.
ㅡ 서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두 분 사이의 신뢰가 정말 크게 느껴지네요.
크리스틴 스튜어트: 이모겐은 제가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동료” 같았어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오디션을 보고, 계속 벽에다 소리치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내잖아요. 그러다 갑자기, 친구이자 동료가 나타난 거예요. 저는 이모겐이 차갑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안에 너무 많은 게 있어서, 스스로를 절제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배우는, 그게 ‘충분히 가치 있는 현장’이 아니면 그 벽을 못 허물어요. 허물 이유가 없으니까요.
저는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이모겐이 우리를 위해, 저를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요. 딱 한 달 반 정도였는데, 그 시간이 우리 관계 자체를 바꿔놨어요. 어떤 장면은 지금도 “저게 어떻게 가능했지?” 싶어요. 예를 들어, 여성 세 명이 등장하는 사랑 장면이 있는데, 처음엔 이게 될지 몰랐어요. 섹시한 물거품 콜라주 같은 걸 만들 뻔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이모겐의 삶과 영화 전체가 그 장면 위로 쏟아져 내려왔어요. 그러니까 그 장면이 리디아가 됐고, 이모겐이 됐고, 친밀함 자체가 됐어요. 그건 장면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라, 그 삶 전체를 사는 배우가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이모겐 푸츠: 저 울 것 같아요. 리디아는 굉장히 외로운 사람이거든요. 자매와의 관계가 있어도, 깊은 외로움이 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세상을 살아가다가 이런 사람을 못 만나고 지나칠 수도 있잖아요. 누군가가 당신을 진지하게 봐주고, 당신이 이미 향해가던 곳으로 더 밀어주는 그 순간요. 창작 인생에는 그런 ‘넘어서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걸 놓치면 그냥 지나갈 수도 있어요. 그것도 괜찮지만, 그래도 저는 이 만남이 “될 만해서 된 일”이라고 믿고 싶어요.
크리스틴 스튜어트: 이런 건 정말 드물어요. 운이 좋다면, 인생에 몇 번 오죠.
ㅡ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무엇을 가져갔으면 하나요?
이모겐 푸츠: 우리가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영화 같은 영화를 더 많이 만들었으면 해요. 좋은 사람들과 일하고, 그런 영화에 자금이 붙게 만들고요. 저는 어떤 문장을 좋아해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기 자신을 믿는 모습을 보기 위해 큰돈을 낸다”는 말이요. 음악 얘기지만, 영화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여성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돈을 내고, 한 인물이 삶을 통과하는 걸 보기 위해 돈을 내는 거요.
이 영화는 저는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 희망이 단순한 방식이 아니에요. 흔한 말로 잘라낸, 예쁘게 포장된 결론이 아니고요. 날것이고, 엉망이고, 대담해요. 거대한 순간도 있고, 너무 평범한 순간도 있어요. 삶을 산다는 게 원래 그런 거잖아요. 오히려 중요한 건 그 사이사이의 순간들이고요. 사람들의 ‘그 사이’를 보는 게 저는 위로가 돼요.
크리스틴 스튜어트: 어젯밤에 누가 저한테 문자로 “다시 생각하게 해줘서 고마워요”라고 보냈어요. 저는 그냥 단순하게 말하고 싶어요. 이건 “스스로 생각해보는 용기”에 관한 영화예요. 그래야 우리가 다른 사람이 정해준 ‘우리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믿을 수 있으니까요.
추천인 7
댓글 16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1등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이번에 다들 쟁쟁해서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