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이 말하는 어두운 유머, 인간의 모순 그리고 선택이라는 감옥
카란

박찬욱 감독은 언제나 인간의 모순을 이야기해왔다.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스스로 만든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틀 안에서 점점 잔혹해지는 선택들.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그 질문을 가장 노골적이면서도, 가장 웃기게 밀어붙이는 영화다.
아래는 <어쩔수가없다>를 중심으로 나눈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다.
말은 차분하지만, 생각은 날카롭고 솔직하다.

ㅡ <어쩔수가없다>는 감독님이 원작 소설 『액스(The Ax)』를 처음 읽은 뒤, 20년 넘게 품고 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이야기가 그렇게 오래 마음에 남았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작품은 무언가를 각색하려는 목적에서 찾은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도널드 웨스트레이크라는 작가의 팬이었고, 독자로서 소설을 읽었죠.
그런데 이 이야기에 담긴 유머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겉으로 대놓고 웃기기보다는, 상황 자체가 웃길 수 있는 구조였어요.
이걸 영화로 옮기면 아주 우스꽝스러운 작품이 될 수 있겠다고 느꼈죠.
특히 아이러니가 가진 어이없음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주인공 만수는 회사에서 해고당한 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짜 회사를 만듭니다.
채용 공고를 내고, 이력서를 받고, 인재를 선별하죠.
기업이 하는 일과 똑같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회사는 사람을 뽑고, 만수는 사람을 찾아가 죽인다는 점이죠.
이건 얼핏 보면 말도 안 되는 선택 같지만,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행위와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죽이는 행위’가 일종의 평행선처럼 느껴졌습니다.
권위와 자신감을 잃은 한 사람이 절망 속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그 과정에서 오히려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는다는 점도 흥미로웠고요.

ㅡ 원작에 감독님만의 어두운 코미디 색을 더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유머는 이처럼 어두운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나요?
유머는 이 작품뿐 아니라 제 영화 전반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비극, 긴장, 공포 같은 감정과 깊게 엮여 있죠.
보통 유머는 관객을 편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로 쓰이지만, <어쩔수가없다>에서는 정반대입니다.
가장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웃음이 나오게 만들죠.
그 결과 슬픈 장면은 더 슬퍼지고, 무서운 장면은 더 무섭게 느껴집니다.
유머가 감정을 누그러뜨리기보다 오히려 날카롭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ㅡ 원작을 각색할 때의 기준도 궁금합니다. <어쩔수가없다>는 어떤 방식으로 변주된 작품인가요?
각색 방식은 작품마다 다릅니다.
제가 존경하는 김기영 감독님은 “원작의 30% 이상이 남아 있으면 실패한 각색”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저는 그 정도까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가 연출한 드라마 <동조자>를 보셔도 원작의 문장이나 장면은 남아 있지만, 사건과 인물 구성은 꽤 달라져 있죠.
『액스』의 경우, 원작은 결말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영화에서는 관객이 결과를 아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개념 중 하나가 ‘허무함’이거든요.
이렇게까지 애썼는데, 결국 모든 것이 거품처럼 사라지는 느낌.
그래서 이야기의 방향을 조금 바꿨습니다.

ㅡ 만수는 가족을 위해 선택했다고 믿지만, 그 선택이 결국 가족을 더 힘들게 만듭니다. 감독님의 유머 감각에 영향을 준 작품이나 작가가 있나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작품은 읽으면서 웃게 됩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글도 마찬가지고요.
최근에는 배우 존 터투로가 진행한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코엔 형제의 <바톤 핑크>를 언급한 적도 있습니다.
처음 그 영화를 봤을 때, ‘아, 이건 정말 내 취향이다’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ㅡ 이 영화는 감독님의 작품 중 가장 웃기면서도, 동시에 가장 반자본주의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다고 보시나요?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뿐일까요?
만수는 처음부터 시스템을 정확히 이해한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동료들을 돕고 싶어 하지만, 시스템 자체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인물은 아니죠.
그는 적과 싸우기보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범죄 경험도 없는 사람이 대량 살인을 선택했다는 점 자체가 굉장히 패배적인 시선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이 시스템에 맞서 진짜 변화를 만들 가능성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자본주의라는 구조가 얼마나 강력한지, 그리고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그 안에 순응하는지를 보여줍니다.

ㅡ 영화의 시각적 스타일에 대해서도 여쭙고 싶습니다. 감독님이 특히 애착을 가진 장면이 있다면요?
서로 충돌하는 두 개의 개념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일과 가족, 살인과 가정의 평온함 같은 것들이죠.
영화 후반부에 미리(손예진)가 사과나무 아래에서 땅을 파는 장면과 만수(이병헌)가 선출(박희순)의 집에서 땅을 파는 장면이 교차됩니다.
이후 두 사람의 통화 장면이 이어지고, 마치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연출했죠.
그 장면이 제가 생각한 개념이 가장 잘 구현된 순간이라고 봅니다.

ㅡ 출연진도 한국 영화 팬들에게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캐스팅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대부분의 경우, 각본을 쓸 때 특정 배우를 떠올리지는 않습니다.
<헤어질 결심>은 예외적으로 박해일과 탕웨이를 생각하며 썼죠.
<어쩔수가없다>는 처음에는 미국 영화로 시작했지만, 한국 영화가 더 어울리겠다고 판단한 순간 주인공으로 이병헌 배우가 바로 떠올랐습니다.
미리 역의 손예진 배우는 이병헌 배우의 제안이었고, 아라 역의 염혜란 배우는 시상식에서 가까이 본 뒤 아주 인상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이성민, 박희순 배우와도 언젠가는 꼭 함께 작업하고 싶었는데, 주연이 아닌 역할을 맡아줄지 걱정했죠.
결과적으로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ㅡ 이병헌 배우와는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오랜만의 재회입니다. 다시 함께 작업한 소감은요?
<공동경비구역 JSA> 때는 둘 다 굉장히 긴장한 상태였습니다.
“이 영화가 실패하면 끝이다”라는 마음이었죠.
그땐 만날 때마다 일 이야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각자의 길을 걸은 뒤 다시 만나니 이번에는 진지하게 일하면서도 농담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됐습니다.
ㅡ 한국 영화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한국 영화는 감정의 밀도가 높습니다.
여러 감정이 한 작품 안에서 강하게 충돌하죠.
장르도 하나로 고정되지 않습니다.
한 영화 안에서 장르가 여러 번 바뀌기도 하고, 그 변화가 관객에게 예측 불가능한 경험을 줍니다.

ㅡ 감독님 개인적으로, 영화 만들기가 예전보다 쉬워진 점과 어려워진 점이 있다면요?
배우와의 소통은 훨씬 쉬워졌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틀릴까 봐, 상대가 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봐 두려웠죠.
지금은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고, 같이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어려워진 건 관객을 더 많이 떠올리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 장면이 지루하지 않을지, 이야기가 잘 전달될지 같은 고민을 더 하게 됩니다.
ㅡ 앞으로 다뤄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오랫동안 준비해온 프로젝트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공상과학 액션 영화, 하나는 서부극 복수 영화입니다.
둘 다 미국 영화이고요.
<어쩔수가없다>를 완성한 지금, 다시 이 작품들에 도전할 힘이 생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