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카메론, [아바타: 불과 재] 캐스팅과 편집, 그리고 관객에 대한 생각
카란
ㅡ 새 악역 ‘바랑’ 역의 우나 채플린은 어떻게 캐스팅하셨나요? 캐스팅 과정이 특히 까다로웠을 것 같아요.
저는 오디션을 아주 신중하게 봅니다. 추천을 받거나 테이프를 본 뒤, 직접 만나보고 싶은 후보를 추려서 시간을 넉넉히 잡아요. 보통 한 사람당 최소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 정도요.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심사위원처럼 앉아서 한 번 읽고 끝” 같은 방식은 저는 안 합니다. 배우를 실제로 만나서 분위기나 카메라에 어떻게 담기는지도 보고, 제가 직접 HD 카메라로 촬영도 합니다. 간단하게 조명도 조금 맞추고요.
그리고 제 팀의 연기자(상대역)를 붙여서 실제로 장면을 돌려봅니다. 먼저는 배우가 준비해온 방식 그대로 하게 두고, 그다음엔 제가 “이렇게 바꿔보면 어때요?” 같은 제안을 던져요. 그걸 얼마나 유연하게 받아서 확장하는지를 보죠.
어떤 배우는 준비한 방식만 고수하고, 어떤 배우는 굉장히 유연하게 받아서 재미있게 변주합니다. 저는 결국 “이 사람과 소통하면서 창의적인 결론까지 함께 갈 수 있나”를 확인하고 싶은 거예요.
제가 늘 느끼는 건, 영화에서 가장 큰 실수는 예산이나 일정이 아니라 캐스팅입니다.
ㅡ 우나 채플린을 처음 만났을 때 “바로 이 사람이다”라는 확신이 있었나요?
꽤 오래 진행했던 기억이 있어요. 한 장면을 여러 방식으로 시도하면서 깊게 봤습니다. 그 장면은 7~8페이지 정도로 길었고, 저는 “이 장면 안에 다 들어있다”는 생각으로 그 하나에 집중했죠.
당시 후보 중에는 이름만 들으면 바로 알만한 스타들도 있었고, 제가 꼭 함께 일해보고 싶었던 배우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나는 캐릭터를 바라보는 해석, 몸의 움직임,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움 없는 태도가 정말 강렬했어요. 준비도 완벽했고요.
솔직히, 익숙한 이름들을 제치고 당시엔 비교적 알려지지 않았던 배우를 선택하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누군지도 잘 몰랐고, ‘찰리 채플린의 손녀’라는 것도 몰랐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행운이었죠. 우나는 다양한 아마존 원주민 공동체와 연결해 우리에게 의식과 문화를 소개해줬고, 제작 전반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심지어 영화 안의 디테일에도요.
예를 들면, 그녀가 직접 “이런 무기가 있다”면서 시연해준 동작이 너무 매혹적이라 “이건 영화에 넣자”가 됐고요. 작은 부분처럼 보여도 그런 디테일이 세계를 진짜처럼 만듭니다. 다른 배우들까지도 우나가 가져온 의식과 문화에서 많은 걸 배웠어요.
ㅡ <아바타> 세계는 판타지인데도 현실에 뿌리를 둔 느낌이 강해요. 디자인은 얼마나 ‘현실 기반’으로 만드나요?
미술팀은 엄청난 시각 자료를 조사하고, 저는 과학적 리서치를 굉장히 많이 합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서 만나요.
예를 들어 어떤 생물의 피부 질감은 바다거북에서 가져오고, 또 어떤 질감은 개구리 같은 걸 확대해서 적용하기도 해요. 규모(스케일)를 바꾸고 섞어서 완전히 새로운 생명체처럼 보이게 만드는 거죠. 저는 이런 걸 ‘자연의 상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은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요. 색도 목적이 있을 때만 존재하죠.
다만 저는 <아바타>를 ‘정통 SF’라기보다는 SF처럼 보이도록 입힌 알레고리 판타지라고 생각합니다. 엄밀히 따지면 나비가 인간과 그렇게 유사한 형태로 존재할 확률은 높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디자인팀에도 늘 말합니다. 이 영화는 꿈 같은 논리로 작동해야 한다. 순간순간의 ‘꿈의 설득력’이 중요하지, 모든 걸 다 설명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1편에서 “산이 왜 떠 있는가”를 설명하는 장면을 찍어둔 적도 있었어요. 물리학적으로는 정확했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더군요. 장면을 빼도 아무도 신경 안 썼어요. 산은 떠 있고, 관객은 그걸 받아들입니다.
ㅡ 오랫동안 한 세계를 붙잡고 편집하면, 관객 시선으로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편집할 때 어떻게 ‘관객’이 되나요?
감독 일에서 가장 어려운 게 바로 그겁니다. 100% 객관적일 수는 없지만, 늘 관객의 관점으로 접근하려고 훈련해야 해요.
저는 편집에 직접 참여하고, 보통 편집자는 3명, 많을 땐 4명까지 함께 합니다. LA와 뉴질랜드로 나뉘어서 작업하거든요.
편집할 때 제가 편집자들에게 계속 말하는 건 이거예요. 관객은 다음 장면을 모른다.
우리는 수없이 본 장면이라 컷 다음에 무엇이 들어올지 눈이 ‘미리’ 따라가요. 그래서 저는 액션 시퀀스를 거의 완성했다고 느낄 때, 장면을 좌우 반전(미러)해서 다시 봅니다. 시선의 자동반응을 리셋하기 위해서죠. 이 방법은 <타이타닉> 때 배웠고, 이후로 계속 쓰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관객을 과소평가하지 않는 겁니다. 관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뒤 장면에서 그걸 적용합니다. 저는 ‘심고-강화하고-회수하는’ 구조를 자주 쓰는데, 경험상 강화 단계가 필요 없는 경우가 많아요. 때로는 ‘심는 것’조차 필요 없고 바로 회수로 갈 때도 있습니다. 관객이 맥락으로 상상해주니까요.
그리고 저는 스스로에게 규칙을 하나 둡니다. 영화 완성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5번 이상은 혼자 보지 않는다. 너무 익숙해지면 관객의 첫 경험을 잃어버리니까요.
이번 <불과 재>에서는 30분 이상을 덜어냈습니다. 장면의 프리앰블을 줄이거나, 통째로 들어낸 장면도 있죠. 저는 큰 장면을 과감히 ‘피 흘리듯’ 뽑아보고, 그래도 영화가 버티는지 확인합니다. 그게 시간을 가장 크게 벌어주거든요.
ㅡ 스펙터클과 친밀한 장면의 균형이 정말 좋았어요. 이런 ‘리듬’은 어떻게 잡으시나요?
저도 이번 영화에서 가장 강력한 순간들이 거대한 장면이 아니라, 3~4페이지짜리 대화 장면 같은 단순한 투핸더(two-hander)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우리가 이 인물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여정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멜로드라마적인 장면도 끝까지 따라가게 돼요. 만약 안 통한다고 느꼈다면 저는 뺄 겁니다. 저는 굉장히 냉정하게 자르는 편이에요. 제가 ‘벨벳 전기톱’이라고 부르는 방식이 있죠. 부드럽게 들어가서 큰 덩어리를 과감히 잘라냅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찍는 장면들은 “대충 찍은 B급 장면”이 아니라는 거예요. 다 배우들과 끝까지 밀어붙여서 좋은 장면으로 만들죠. 그래서 잘라낼 때 더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전체 오케스트레이션 안에서 불필요한 순간이 생기기도 해요. 포인트를 너무 길게 설명한다거나, 셋업이 과하다거나.
ㅡ 퍼포먼스 캡처는 배우의 연기를 ‘더 자유롭게’ 만든다고 하셨죠. 특히 시고니 위버가 10대 역할을 한 건 놀라웠어요.
맞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자꾸 ‘목소리 연기’처럼 말하는 게 정말 답답합니다. 시고니 위버는 ‘더빙’한 게 아니에요.
애니메이션에서의 목소리 연기는 보통 며칠 부스에서 끝날 수 있지만, 시고니는 18개월 동안 이 영화에 붙어서 모든 걸 했습니다. 눈빛, 숨, 손짓, 걸음, 자세, 감정—전부요. 완전한 신체적·정신적·감정적 퍼포먼스였습니다.
특히 그녀가 연기한 10대는 단순히 “어린애”가 아니라, 내향적이고 불안한 10대예요. 그 나이의 몸의 리듬을 살아내야 하죠. 그게 퍼포먼스 캡처의 진짜 핵심입니다.
ㅡ VFX 팀이 배우의 연기를 ‘훼손하지 않게’ 지키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요?
우리 팀은 1편을 거치며 “배우를 끝까지 지킨다”는 문화가 완전히 자리 잡았습니다.
물론 비율이 달라서 손이 닿는 위치가 어긋나는 식의 기술적 보정은 필요해요. 하지만 그건 배우의 의도를 훼손하는 게 아닙니다. “잡으려 했다”는 의도가 분명하니까요.
우리가 ‘창의적으로’ 추가하는 거의 유일한 영역은 귀입니다. 귀는 감정을 표현하거든요. 그리고 꼬리는 주로 고양이(큰 고양이 포함)에서 가져온 어휘로 움직임을 설계합니다. 배우들도 이런 걸 재미있어해요. 단, 항상 원래 연기와 충돌하지 않게 더하는 방식으로만 갑니다.
ㅡ 이 기술은 <아바타> 밖에서도 활용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역사 인물을 ‘완전히 닮게’ 만드는 방식으로요.
가능하죠. 배우가 그 방식에 동의하고, 감독이 그걸 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면요.
실제 분장과 보철로 완전히 닮게 만드는 방식은 표현력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갈 거면 오히려 이 방식이 감정 표현을 더 살릴 수 있어요.
저는 이 길을 <어비스> 때 조금 만져봤고, <터미네이터 2>에서 T-1000으로 본격적으로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스탠 윈스턴과 함께 ‘디지털 도메인’을 만들었죠. 그는 “CG가 캐릭터와 크리처 제작의 미래다”라고 믿었고, 저도 동의했습니다.
저에게는 그가 가진 “관객에게는 레버와 케이블이 아니라 마법만 보여줘야 한다”는 철학이 <아바타>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ㅡ 하지만 요즘은 ‘기술 공개’가 오히려 배우의 공로를 더 인정받게 만드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맞습니다. <물의 길>이 나오던 시기에 생성형 AI 논쟁이 커졌고, 사람들이 “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잘 몰랐죠. 그래서 우리가 배우 주도의 작업이라는 점이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이건 배우가 한 것이다”를 말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비하인드가 마법을 깨뜨린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극장에서 불이 꺼지고 이야기가 시작되면, 결국 관객은 기꺼이 믿어줍니다. 일종의 계약이에요. 관객도 즐길 의지로 들어오고, 영화는 그 의지를 배신하지 않아야 합니다.
ㅡ 이번 작품은 존 랜도 없이 완성한 첫 작품이기도 하죠. 그 과정은 어땠나요?
존은 제가 <타이타닉>과 <아바타>에서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 끝까지 믿어준 사람이었습니다. 감독은 건강한 수준의 의심을 가져야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모든 게 너무 거대하고 가혹해 보이거든요.
특히 <타이타닉> 때는 언론이 우리가 망하길 기다리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존은 끝까지 영화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믿음과 동시에 문제를 해결하는 제작자의 칼날 같은 효율을 가진 사람이었죠.
그가 병을 얻은 뒤, 부담을 덜어주려 했지만 그는 끝까지 중심에 있으려 했습니다. 결국 그는 작년 6월에 세상을 떠났고, 그 뒤 1년 반 정도는 우리끼리 해내야 했어요.
저는 새로운 “스타 프로듀서”를 데려오는 대신, 존을 둘러싼 팀과 조용히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모두가 같은 질문을 했거든요. “이 순간, 존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저는 사람들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의 존재는 주변 사람들의 행동과 선택에 새겨져서 계속 파문처럼 퍼져나가요. 우리 모두가 그와 함께 일한 경험 때문에 조금씩 달라졌고, 그건 계속 이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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