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자들> Variety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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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버려진 자들’ 리뷰: 질리언 앤더슨과 레나 헤디가 출연한, 맥 빠지고 어딘가 허전한 수정주의 서부극
글: 앨리슨 허먼 (Alison Herman)
요즘 TV 시리즈가 이유 없이 방대해지는 경우가 워낙 흔하다. ‘기묘한 이야기( Stranger Things )’ 시즌 4 마지막 회는 지금도 여전히 보고 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불평하는 게 좀 염치없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서부극 <버려진 자들The Abandons> 같은 시리즈를 보면, “얇음”이 꽤 낯설 만큼 허전하고 압축된 느낌을 준다. (19세기 워싱턴주를 배경으로, 캐나다 앨버타에서 촬영되었다.) 제작자 커트 서터(Kurt Sutter)가 촬영이 끝나기도 전에 하차했고, 원래 10부작이었던 편성이 8부, 결국 7부로 줄었다는 제작 과정의 혼란스러운 뒷이야기를 몰라도, 이미 어딘가 삐걱거림이 느껴진다. 절반의 에피소드가 60분이 아니라 30분 남짓으로 끝나고, 이야기 구상도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았으며, 시즌이 갑작스럽게 끝나는 결말은 “혹시 뒤에 더 있나?” 싶을 정도다. 결과적으로 <버려진 자들>은 매력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하고 답답한 드라마로 남는다. 제목이 가리키는 “버려진 자들”은 극 중 인물들뿐 아니라 드라마 자체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버려진 자들>은 두 여성을 중심으로 한 대립을 다룬다. 한쪽은 미망인 광산 재벌 콘스턴스 밴 네스(질리언 앤더슨), 다른 한쪽은 독실한 아일랜드계 여성 피오나 놀런(레나 헤디)으로, 피오나는 입양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콘스턴스가 노리는 땅의 주인이다. 콘스턴스가 자신이 속한 가상의 마을 ‘엔젤스 리지(Angel’s Ridge)’ 전체를 위해 헌신하는 인물인 듯 보이는 점, 그리고 실존 자본가 코넬리어스 밴더빌트를 투자자로 내세운 점 등에서 <데드우드(Deadwood)> 잔향이 느껴진다. 하지만 ‘선스 오브 아나키(Sons of Anarchy)’ 창작자답게 서터는 개척시대에서 문명으로 이행되는 과정보다는 피로 맺어진 가족과 복수극에 더 관심이 많다. 이미 두 세력 간의 긴장은 극한으로 치달아 있으며, 콘스턴스의 부하들이 피오나의 목장을 괴롭히는 동안 보안관은 눈을 감는다. 그러던 중 콘스턴스의 폭력적인 아들이 피오나의 딸 같은 존재인 달리아(다이애나 실버스)를 위협하면서 본격적인 충돌이 벌어진다.
제목 그대로, <버려진 자들> 중심은 피오나가 꾸린 ‘버려진 사람들’ 무리다. 은광이 있을지도 모르는 작은 마을 재스퍼스 할로(Jasper’s Hollow)에 모여 살며, 사회에서 밀려난 존재들이다. 피오나는 아이들에게 유모로 일하다가 아버지가 죽은 뒤 가족의 농장을 함께 이어받았다. 서부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흑인 교사의 아들 앨버트(라마 존슨), 그리고 원주민 소녀 릴라 벨(나탈리아 델 리에고)과 함께 작은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단단한 유대 관계를 맺게 되었는지는 거의 설명되지 않는다. 앨버트는 한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되지만, 릴라의 사연은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피오나의 아들 엘라이어스(닉 로빈슨)는 콘스턴스의 딸 트리샤(에이슬링 프랜시오시)와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익숙한 사랑 이야기에 빠지지만, 달리아는 폭력의 한가운데에 휘말릴 뿐 거의 비중이 없다. 이런 불균형한 캐릭터 구성은 드라마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한편, <버려진 자들>은 앤더슨과 헤디가 연기하는 두 안티히로인에게만 초점을 맞춘다. 두 배우 모두 익숙하게 연기한다. 철의 신경을 가진 냉철한 귀부인 콘스턴스로 분한 앤더슨(마거릿 대처를 연기한 바 있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 어떤 선도 넘을 수 있는 어머니 피오나 역의 헤디(<왕좌의 게임> 서세이 라니스터로 유명하다). 두 사람의 연기가 새삼스러운 발견은 아니지만, 둘 다 충분히 강렬하고, 대결 장면과 독백 연기로 확실한 존재감을 보인다. <버려진 자들>이 여성 드라마가 되진 못했지만(특히 달리아의 처리를 보면 그렇다), 적어도 같은 넷플릭스의 2017년작 <그 땅에는 신이 없다(Godless)>보다는 “개척 시대 여성”을 다루는 방식이 낫다. (잔혹한 연출 또한 서터의 상징이다. 예컨대 코미디언 팻턴 오스월트가 시장으로 등장했다가 CGI 곰에게 물려 죽는 장면은 뜬금없지만, 인상적이다. 이후 선거에서 곰의 난입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끝내 알 수 없다.)
즉, <버려진 자들>은 헤디와 앤더슨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는 분명히 알고 있다. 문제는 그 외의 요소들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드라마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회의 느슨한 규범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버려진 가족’을 그린다. 충분히 뛰어난 수정주의 서부극이 될 수 있는 설정이지만, 투박한 제목 카드로 오프닝을 대신한 그 순간부터 이미 힘이 빠져 있다. 서터와 넷플릭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제작 중 난항을 겪은 작품이라도 훌륭한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버려진 자들>은 예외가 아니다.
https://variety.com/2025/tv/reviews/the-abandons-review-netflix-1236596708/





























이건 원 제작자가 완성 1주일전에 갈등으로 인한 탈주가 있어서 애당초 잘나올 수 없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