롭 라이너 감독에 대한 상세한 부고 기사
golgo
갑작스런 충격적 타살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할리우드 명감독 롭 라이너.
버라이어티에 그의 인생과 경력을 정리한 부고 기사가 올라와서 우리말로 옮겨봤습니다.
원문은 아래입니다.
https://variety.com/2025/film/news/rob-reiner-dead-princess-bride-spinal-tap-1236608541/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촬영장에서 모습(가운데)
전설적인 코미디 배우이자 <프린세스 브라이드> 감독 롭 라이너,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
<올 인 더 패밀리>(시트콤)의 출연자로 시작해, 감독으로서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 <어 퓨 굿 맨>,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등을 연출한 롭 라이너가 일요일 오후 브렌트우드 자택에서 아내 미셸 싱어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78세.
LA 경찰에 따르면 두 사람의 사망은 타살로 수사 중이며, 이들 부부는 흉기에 찔려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다.
유족 측은 성명을 통해 “미셸과 롭 라이너의 비극적인 별세를 깊은 슬픔 속에 전합니다. 이 갑작스러운 상실에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며, 믿기 힘들 만큼 어려운 이 시기에 사생활을 존중해 주길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라이너의 최근작은 고전이 된 1984년 작품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의 속편인 <스파이널 탭 2>였다.
저명한 작가 겸 감독이자 코미디언인 칼 라이너의 아들 롭 라이너는, CBS의 인기 시트콤 <올 인 더 패밀리>의 9시즌에 걸쳐서 주인공 아치 벙커(캐럴 오코너)의 히피 사위 마이클 ‘미트헤드’ 스티빅 역을 연기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1974년과 1978년 코미디 부문 남우조연상으로 에미상을 수상했다.
<The Smothers Brothers Comedy Hour>, <Happy Days>, <올 인 더 패밀리>의 작가로 경력을 쌓고 TV 영화 두 편을 만든 뒤 라이너는, 1984년 영화계로 넘어가 감독, 각본, 출연까지 한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를 선보였다. 이 작품은 멍청하고 고집 센 헤비메탈 밴드를 다룬 애드리브 위주의 모큐멘터리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10여 년간 그는 다양한 장르에서 뛰어난 감각을 보여 주는 박스오피스 히트작과 대중적 인기작을 잇달아 내놓았다. 스티븐 킹 단편을 원작으로 한 성장 드라마 <스탠 바이 미>(1984), 판타지 영화 <프린세스 브라이드>(1987), 새로운 감각의 로맨틱 코미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 또 다른 스티븐 킹 원작 스릴러 <미저리>(1990), 톰 크루즈와 잭 니콜슨이 출연한 군사 법정 영화 <어 퓨 굿 맨>(1992)이 대표작들이다.
롭 라이너는 1987년부터 자신의 영화들에서 직접 프로듀서까지 맡았다. 그해 영화사 캐슬록 엔터테인먼트를 공동 설립하여, 자신이 만든 영화들과 <사선에서>, <욕망을 파는 집>, <맬리스> 등 히트작들을 선보였다. 이 회사는 1993년 터너 브로드캐스팅에 인수됐다.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출연한 2007년의 달콤쌉쌀한 코미디 영화 <버킷 리스트> 같은 흥행작을 제외하면, 자전적 가족 드라마 <찰리> 등을 포함한 그의 후기 연출작들은 여전히 다채로웠지만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그는 2008년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제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듭니다. 스튜디오들은 수억 달러의 이익을 원하지만, 작은 영화로는 그게 어렵죠. 하지만 저는 상품을 찍어내는 게 아니라 저 자신을 표현하고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이 업계에 들어왔습니다.”라고 했다.
할리우드의 대표적 진보 성향 인사였던 라이너는 캘리포니아 주의 여러 투표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는 민주당 후보들의 열성 지지자였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를 강하게 반대해 왔다. 200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때는 아놀드 슈워제네거에 맞서 출마를 고려했지만, 결국 경선에서 물러났다.
롭 라이너는 1947년 3월 6일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칼은 소위 ‘텔레비전 황금기’의 대표적인 코미디 작가이자 스타였다. 당시 최고 인기 프로그램 <Your Show of Shows>, <The Dick Van Dyke Show>의 작가이자 출연자였고, 여러 성공적인 코미디 작품들을 연출했다.
부전자전. 할리우드에서 성장한 라이너는 UCLA 영화학교에 다녔고, 드라마 <배트맨>, <That Girl>, <The Beverly Hillbillies>, <The Partridge Family> 등에 출연했다. 또한 아버지의 자전적 영화 <Enter Laughing>(1967)에도 출연했다.
1971년 그는 리처드 드레이퍼스와 해리슨 포드 등을 제치고, 영국 시트콤 <‘Til Death Do Us Part.>를 미국식으로 각색한 <올 인 더 패밀리>에 캐스팅됐다. 이 시트콤은 이전까지 TV에서 다루기엔 지나치게 민감하다고 여겨졌던 시사적 소재들을 솔직하게 탐구했고, 출연진의 뛰어난 호흡까지 더해져 TV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시리즈가 되었다.
1978년 <올 인 더 패밀리>를 떠난 뒤, 라이너가 다시 자신의 자리를 잡기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는 1984년 상징적인 뮤지컬 코미디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로 첫 장편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다. 대략적인 구상만으로 시작해 카메라 앞에서 애드리브 연기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크리스토퍼 게스트, 마이클 매킨, 해리 시어러를 멍청한 밴드 멤버로 출연시켰고, 라이너는 진지한 다큐 감독 마티 디버기를 연기했다.
1986년부터 1992년까지 그는 강렬한 연기를 담은 일련의 작품으로 다재다능함을 입증했다. <스탠 바이 미>에선 청소년 배우들과의 작업으로 골든글로브상, 인디펜던트 스피릿상, DGA 후보에 올랐고, 이색 판타지 영화 <프린세스 브라이드>는 열성적인 컬트 팬층을 형성했다.
그의 연출 실력이 가장 돋보인 작품으로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가 꼽힌다. 빌리 크리스탈과 멕 라이언이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두 주인공으로서 완벽한 호흡을 보여줬다. 노라 에프런이 각본을 쓴 이 히트 코미디에서, 멕 라이언은 손님들로 붐비는 식당에서 가짜 오르가슴을 시연하는 명장면을 펼쳤고, 잊을 수 없는 명대사도 나온다. 바로 감독의 어머니 에스텔이 던진 “저 여자가 먹는 걸로 주세요(I’ll have what she’s having,)”다.
1990년대 후반 들어 롭 라이너의 흥행 성적은 미적지근해졌는데, 이는 그가 1960년대 시민권 운동(<미시시피의 유령>, 1996), 린든 존슨의 정치 경력(<LBJ>, 2016), 그리고 2003년 걸프전(<충격과 공포>, 2017) 등 보다 정치적이고 상업성이 떨어지는 소재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2023년에는 다큐멘터리 <Albert Brooks: Defending My Life>를 연출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목소리 큰 정치 활동가 중 하나였던 그는, 공직 출마 대신 동성애자 인권 옹호와 담배 로비와의 오랜 싸움 등 자신이 지지하는 대의를 위한 활동에 전념했다.
그는 “아니요, 저는 선출직 공무원이 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일을 해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라이너와 그의 아내는 자녀 제이크, 닉, 로미를 남겼다. 그는 첫 번째 아내이자 사망한 배우 겸 감독 페니 마셜의 딸인 배우 트레이시 라이너의 양부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