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미 별세
1957년 데뷔해서 1980년대까지 주연으로 활동했으니,
미국으로 따지면 여자 탐 크루즈였다.
너무나 미인이어서 김기영감독의 눈에 띄어 여고생이 영화 주연으로 데뷔했고 (그게 자유당 이승만정권 시절이었다!),
그 후 주욱 1980년대까지 주연이었으니 30년 동안 주연만 한 셈이다.
1960년대에는 최은희와 경쟁했고, 그 이후 신세대가 나오자 윤정희와 경쟁했다.
그 대단하던 여배우들이 나이 들어 물러나도,
최고를 지키며 세대를 바꿔가며 경쟁한 셈이다.
전무후무한 여배우다.
이순재같은 경우에는, 드라마에서 성공했어도, 영화에서는 눈에 안 띄는 주연이었다.
본인도, 신성일이 거절하면 그 영화에 주연을 맡아하는 위치라고 푸념했다.
하지만, 지금 보면, 걸작들에서 많이 주연을 한 셈이다.
김지미는 1950년대부터 대스타였다. 그 대단한 신성일보다 10년 전부터 대스타였다.
1960년대 우리나라 고전영화 전성기 막을 연 영화가 신상옥 감독 최은희 주연의
춘향전이었다. 말하자면, 그때 쉬리같은 영화다. 이 영화가 대성공하면서 우리나라 고전영화 황금기가 시작되었다.
그때 똑같이 춘향전을 만들어 최은희와 경쟁한 사람이 김지미다. 지금은 아주 유명한 영화사적 사건이다.
그때 사람들 다 죽었어도, 그 자리의 주인공으로서 증언을 해줄 수 있었던 사람이 김지미다.
우리나라 영화사 고전영화 황금기 시작의 주인공인 김지미는 영화사적 중요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신성일을 키워준 사람이 최은희다. 그런데, 최은희와 경쟁한 사람이 김지미다.
김지미의 위치가 그렇게 높다. 신성일보다 (나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 세대 전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1980년대까지 주연을 하고 대종상 주연상까지 탔으니 전무후무한 일이다. (1980년대 걸작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언급되는 길소뜸, 티켓 두 영화 주연여배우가 김지미다. 그것도 자기가 가진 재산 투자해서 만들었다. 신성일 말에 따르면, 영화에서 번 돈은 영화판에 바치는 것이 당시 배우들 암묵적 룰이었다고 했다. 신성일도 자기 재산을 영화계에 바쳤다. )
지금 데뷔한 배우가 시작부터 대스타,
그리고 그 자리를 30년 동안 유지한 다음,
30년 뒤에 주연여배우로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탄다고 생각해 보라.
그 사람이 김지미다.
1960년대 우리나라 배우들이 홍콩에 가서 서유기 영화를 찍은 적 있다. 그때, 손오공 원숭이 역을 맡았던
김희갑이 연기를 환상적으로 해서 화제가 양국에 된 적 있다. 거기에서 공주 역할을 맡았던
주연여배우가 김지미다. 우리나라 대표배우로 홍콩에 간 사람이었던 것이다.
김지미의 미모는 그때에도 홍콩에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1960년대 홍콩 인기배우 왕우가 지미라고 영어이름을 붙인 것도, 김지미를 사모한 탓에 김지미 이름을
따 지은 것이라는 루머가 돌았다. 그 사실 여부야 알 수 없지만, (세계적인 대스타도 사로잡을) 김지미의 미모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졌던 것은 분명한 사실 같다.
하지만, 김지미 영화 중 작품성 있는 것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영화계 위치 상 작품성 있는 영화들이 많이 있어야 정상인데 (700편 찍었다는데, 그 중에 걸작이 수도 없이 있어야 정상 아닌가?),
별로 작품성 없고 흥행만 노리던 작품들이 많다.
아마 그런 작품들이 별로 남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김지미가 많이 잊혀지고 있는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김지미가 영화계 고인 물이 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자기 재산도 영화계에 바치고, 30년 동안 대스타로서 영화계를 지키고,
1980년대에도 영화사에 남을 작품성 있는 영화에서 주연 및 대종상 수상을 하고 했으니
할 만큼 한 셈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 영화계 암흑기에도 영화판을 지킨 묵묵한 기둥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젊은 배우들이 고인물이라고 나가라고 하니까,
"내가 여기서 30년 동안 자리를 지켜왔는데, 젊은이들이 나보고 나가라고 하느냐. 1970년대 암흑기에 내가 영화계에서 자리를 지켰는데, 그때 너희들은 어디 있었느냐?" 하고 어이 없어 했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김지미가 이해 간다.
김지미는 여장부였다. 임권택 감독 영화에서 영화계에서 활동하던 깡패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느 유명여배우를 다른 영화판으로 억지로 데려가려고 난입한다.
그때 이쁘장한 젊은 여배우가 쌍욕을 하면서 대든다. 그 깡패가 "이년, XX를 찢어 버릴라"하니까
가랑이를 싹 벌리면서 누워서 "찢어봐"하고 바락바락 소리지르던 여배우가 나온다. (기세 등등하던 깡패도 질려서 꼬리를 뺀다.) 그녀가 김지미다.
사업수완이 좋아서 돈도 많이 벌었고, 결혼도 당대 대감독 홍성기, 대배우 최무룡, 당대 대가수 나훈아, 당대 대의사 이종구와 세번 했다. 그리고 남긴 명언 "나는 잘 났다는 사람들과 결혼을 해 보았는데, 남자는 잘 났든 똑똑하든 모두 미성숙한 존재들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하지만, 결국 자기 자산을 영화계에 바치고 떠났다.
지금 보니까, 김지미가 사망했는데, 애도의 물결이 넘치는 가운데, 고인 물로 영화계 망치다가 떠났다 하는 식으로
악담도 있다. 김지미가 누구였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김지미가 자기 일생을 적으면,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 영화계의 핵심 중 핵심에 대한 역사의 기록이 된다. 자유당 시절 우리나라 영화계 태동부터 시작해서 1970년대 암흑기 그리고 1980년대 부흥기까지 그 중심에서 있으면서 역사를 생생하게 기록해 줄 수 있었던 여배우가 김지미다. 김지미가 우리나라 영화계 그 자체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고인 물이라고 떠나라는 소리 들을 때 미련 없이 떠날 것이라 확신이 든다. 사실 고인 물이 어떻게든 눌러붙으려 하면, 추한 것은 사실이다.
큰 별이 졌다 하는 소리마저 부족한 사람이 김지미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 우리나라 영화계가 죽느니 어쩌니 하는데, 이런 대배우조차 기억하지 않고 조롱하는 마당에, 무슨 남들이 존중해 주길 바라는가? 미국같은 경우에는, 헐리우드 스튜디오 황금기 스타들을 지금도 떠받들고 기억하고 연구한다. 그러니까, 미국 영화사가 걸작들을 남긴 역사 깊은 예술작품 역사가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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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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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스타이시자 대배우셨지요. 명복을 빕니다.
그런데 왕우 영어 이름 관련된 루머는 저도 읽은 적이 있습니다만
김지미와 왕우가 무슨 썸씽이 있었던 것은 사실 같다니 근거가 있으신가요? 처음 듣는 얘긴데요.
이렇게 인터넷에 한 줄 올라온 글이 퍼지고 퍼져서 팩트처럼 되어 버리는 걸 경험상 너무 많이 봤습니다.
아, 썸씽이 그 썸씽이 아니라, 무슨 사업상 미팅이나 뭐 그런 건덕지가 있었지 않았겠느냐 하는 뜻이었습니다. 서로 얼굴조차 본 적 없는데, 그런 소리가 나오지는 않을 테니까요. 당연히 사귀거나 한 것은 없죠. 그냥 그런 뜻으로 가볍게 적은 글인데, 님의 지적이 맞습니다. 조심해야겠네요. 말씀하신 글은 지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