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나는 교황이 아니다”..<미나리>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는 60년의 태도
카란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이 싱가포르국제영화제에서 열린 ‘인 컨버세이션’ 행사에서 약 60년에 걸친 자신의 연기 인생을 돌아보며 솔직한 이야기를 전했다. 올해 78세인 윤여정은 영화제의 ‘스크린 아이콘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돼 싱가포르 배우 레베카 림, 재니스 코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계획 없이 시작된 배우의 길
윤여정은 배우가 되겠다는 명확한 목표 없이 연기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1960년대 대학 입시에 실패한 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우연히 오디션 제안을 받았다는 것이다.
“배우가 될 계획은 없었어요. 방송국 견학을 갔다가 오디션을 보라고 하더군요. 카메라 앞에서 대사를 읽을 수 없다고 했지만, 해봤고 결국 합격했어요”
연기 교육이나 연극 전공도 없이 시작한 커리어는 오히려 그녀를 더 철저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저는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번 대사를 완벽히 외우고 여러 방식으로 연습했어요. 사람들은 제가 자연스럽게 연기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굉장히 많이 노력합니다”
<화녀>와 김기영 감독, 그리고 배우로서의 정체성
윤여정의 전환점은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1)였다. 20대 초반이었던 그녀는 당시 한국 영화계의 통념적 미인상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었고, 멜로드라마 중심이던 시대에 파격적인 역할을 맡았다.
“그 당시 한국 기준으로 배우는 가장 예뻐야 했어요. 저는 그 기준에 맞지 않았죠. 대부분 가난한 여자가 부잣집 남자를 만나 고난을 겪는 이야기였는데, <화녀>는 완전히 달랐어요”
데뷔작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과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했지만, 비판도 뒤따랐다. 한 평론가는 그녀의 목소리로는 배우로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이후 현재는 고인이 되었지만, 그 평론가는 자신의 평가가 잘못됐음을 인정하며 “내가 처음으로 잘못 판단했다”고 사과했다고 한다.
김기영 감독과의 관계 역시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촬영 전 반복적으로 이어진 미팅에 불편함을 느꼈던 윤여정에게 감독은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때 당신이 지었던 이상한 미소가 필요했습니다” 그는 배우를 ‘관찰’하는 사람이었다.
김기영 감독의 조언은 윤여정의 연기관을 오래도록 지배했다. “주연은 위험하다. 실패하면 모든 책임이 따른다. 조연은 안전하다” 이 말은 그녀가 역할을 선택하는 기준이 됐다.
<미나리>와 세계적 인지도, 그러나 변하지 않은 태도
윤여정이 <미나리>에 합류한 과정 역시 계획적이지 않았다. 감독 정이삭이 지인을 통해 시나리오를 전달했지만, 영어로 된 대본을 읽기 어려워 40페이지에서 멈췄다고 한다. 대신 실화 기반인지 여부만 확인했고, 그 순간 출연을 결정했다.
“실제 이야기보다 더 진실한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미나리>를 통해 아카데미, SAG, BAFTA를 모두 석권하며 전 세계적 주목을 받은 뒤에도 그녀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유 없이 당신을 치켜세웠다가, 또 이유 없이 끌어내립니다. 친절해서든, 악의로든. 저는 이미 충분히 경험했어요. 저는 그냥 제 자신입니다”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지금의 사치
윤여정은 현재 자신의 삶을 ‘사치’라고 표현했다. “진짜 사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겁니다. 감독을 선택하고, 시나리오를 선택하고,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것”
이 자유는 두 아들을 홀로 키우며 치열하게 일했던 시기를 지나 얻은 것이다. 자녀들의 유학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쉼 없이 일했고, 그 책임이 끝난 후에야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됐다.
“나는 교황이 아니다”
젊은 배우들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질문에 윤여정은 웃으며 선을 그었다.
“젊을 때 우리는 어른 말을 안 듣잖아요. 한국에서는 늘 ‘젊은 세대에 전할 메시지가 있느냐’고 묻는데, 저는 항상 말해요. 나는 교황이 아니다. 전할 메시지는 없다”
자서전 계획 역시 단호하게 부인했다. 사적인 삶을 공개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으며, 누군가가 쓰고 싶다면 “내가 죽은 뒤에 쓰라”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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