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터 시리즈의 변화, 타자에서 주체로.
해리엔젤
프레데터 시리즈와 기타 다른 영화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어릴 적 벌벌 떨며 보았던 <프레데터(1987)>를 어른이 되어 다시 봤을 때, 이 영화 전체가 베트남전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은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남미로 변경되었지만, 시야를 차단하는 밀림 속에서 정체불명의 적에게 하나씩 제거되어가는 미군 특수부대의 모습은 베트남전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던 ‘보이지 않는 적’의 공포와 거의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습니다. 더구나 영화 속 인물들은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베테랑들임에도 불구하고 무력하게 붕괴되는데, 이는 미국의 군사적 우월감이 실제의 전장에서 맥없이 무너져내렸던 당시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1980년대의 많은 액션 영화들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권위에 금이 가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 정당성마저 의심받았던 베트남전의 상흔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참전 군인의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다룬 <람보>, 주인공, 악역 모두 베트남 참전 용사였던 <리썰 웨폰>, 베트남전의 트라우마를 차이나타운 갱단에게 투사하는 <이어 오브 드래곤>, 아무리 봐도 베트콩의 은유인 이워크를 등장시켜 제국군과 저항군의 구도를 전복시켰던 <스타워즈: 제다이의 귀환> 등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당시 미국 사회에는 베트남전이 애초에 불필요하고 부당한 전쟁이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고,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프레데터> 역시 이러한 정서를 어느 정도 공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프레데터>의 중요 소재 중 하나인 '보이지 않는 적 앞에서 느끼는 실존적 공포'라는 점은 우연히도 같은 해 개봉한 <풀 메탈 자켓>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다만 스탠리 큐브릭이 저격수의 정체를 어린 소녀로 설정함으로써 베트남전의 전쟁의 비인간성과 명분없음을 신랄하게 고발했다면, <프레데터>는 반대로 그 자리에 고도로 발달한 과학력을 지닌 외계 생명체를 위치시킵니다.
<프레데터>를 이해하기 위해 존 맥티어난의 데뷔작 <노매드>를 한번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평범한 주인공의 일상을 악몽으로 몰아넣는 것은 폭주족의 모습으로 변신한 에스키모 전설의 악령들입니다. 사회의 최하층과 하위문화를 상징하는 폭주족이라는 외피를 씌운 초현실적 존재가 무력한 중산층을 위협한다는 설정은 자극적이면서 동시에 전형적인 헐리우드식 타자화의 전형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특정 사회, 문화 집단의 맥락을 제거한 채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미국 사회의 내부적 불안과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방식이죠. 이런 타자화를 통한 악역의 창작 공식은 21세기가 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심지어 맥티어난은 이걸 정말 잘해냈습니다. 소통 자체가 불가능한 미지의 존재를 시각적으로 설득력 있게 구현하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그가 탁월한 액션 연출가로 평가받는 이유겠죠.
위에서 언급한 소통불가의 타자에 첨단 외계 기술과 베트남전의 트라우마를 영리하게 결합하면 바로 <프레데터>가 됩니다. 프레데터 특유의 드레드록 헤어스타일 역시 문화적 전유를 통한 타자화의 방식 중 하나이며, 이를 반영하듯 2편에서는 아예 콜롬비아와 자메이카 갱단이 LA를 백주대낮부터 전쟁터로 만들고 있죠.
우주를 가로질러 다른 행성들을 제집처럼 넘나드는 과학력과 사냥감의 척추를 잡아뽑고 포효하는 야만성이 이질적으로 공존하는, 압도적인 타자 프레데터의 위상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에일리언 시리즈와 크로스오버였던 <에이리언 대 프레데터(2004)>(이하 AVP)부터였습니다. 이 작품에서 프레데터는 처음으로 인간과의 협업을 시도합니다. 물론 2편에서 프레데터에게 명예라는 개념을 추가했고, <AVP>의 사냥꾼 스카가 아직 어리고 경험이 없는 생초짜라는 추가 설정이 붙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이런 프레데터의 노선 변경은 나름 신선한 것이었습니다.
<프레데터 죽음의 땅(2025)>(이하 죽음땅)에서는 <AVP>에서 보여줬던 인간과의 협력을 더욱 강조하면서 사실상 버디 무비로의 전환을 시도합니다. <AVP>의 스카가 전사로서의 자격을 판단하는 심판관이자 전투의 리더 포지션으로서 인간 주인공과 최소한의 상하관계를 유지했다면, <죽음땅>의 덴은 반토막나서 사실상 전투력 제로인 시아(엘 패닝)를 받아들임으로서 완전히 수평적 관계를 맺습니다. 또한 형제의 복수와 클랜의 보호라는 그의 목표는 쾌락 살인마에 가까운 다른 프레데터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죠. 이렇게 오랜 시간 완벽한 타자였던 프레데터는 속편과 파생작을 거치며 조금씩 진화하더니, 드디어 <죽음땅>에 와서는 관객의 감정이입 대상이자 주체로 완전히 전환되었습니다.
오리지널의 정글 헌터가 함의하던 베트남전의 트라우마와 인종적 타자화의 혐의를 모두 지우고 나타난 <죽음땅>의 덴은 일족에게 기형이라 불리며 배척당할 정도로 작은 체구에 전투력도 낮지만 대신 빠른 상황 판단력과 더불어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타종족도 동료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에 딱 어울리는 액션 히어로입니다. 문제는 덴이 '나는 차가운 야우차족의 남자, 하지만 내 클랜에겐 따뜻하겠지' 라는 밈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시리즈의 정체성을 뒤흔들만큼 쏘 스윗하다는 건데... 감독 댄 트랙턴버그가 이미 전작 <프레이>와 <킬러 오브 킬러스>에서 이미 완성형 슬래셔로서 고전적인 프레데터를 완벽하게 구현한 적이 있으니 이건 프랜차이즈 확장을 위한 일종의 포석 정도로 봐야겠죠. 분명 호불호가 갈릴 부분이고, 저 역시 그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덴과 시아의 다음 모험이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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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공포의 존재가 개그화되거나 주인공이 되거나 둘중 하나로군요(...)
호러 아이콘에서 주인공이 되기까지 거의 40년이 걸렸네요^^
터미네이터는 속편에서 바로 우리 편이 되기도 했는데 말이죠.
3등 둘의 케미가 정말 이 시리즈에 새로운 방향을 연 느낌이었어요😊
좋은글 잘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