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색 연작(1993~1994)>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주는 역설
해리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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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가 프랑스에서 찍은 <세가지 색 연작(1993~1994)>은 많은 명작들이 그러하듯 제작 당시의 분위기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영화입니다. 당시 유럽은 눈앞으로 다가온 EU통합이라는 거대한 사건에 직면해 미래에 대한 거대한 희망과 막연한 불안이 교차하던 때였죠. 당장 이 연작이 나오기 1년전인 1992년에 체결된 마스트리흐트 조약은, 기존의 유럽공동체(EC)을 넘어 “유럽연합(EU)”이라는 명칭 아래 경제통합. 정치통합을 본격화하는 첫걸음이었습니다. 이 조약은 유럽 시민권, 단일통화 도입, 외교·안보·사법·이민 분야에서의 협력 확대를 규정하며 유럽 통합의 새로운 국면을 예고했죠. 이런 식으로 하나의 정치 경제 문화로 묶이게 될 유럽에게 키에슬로프스키는 하나의 강령, 또는 도덕률을 영상화하여 제시하고자 합니다. 바로 프랑스 혁명의 피바람 속에서 태어났으나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된 세가지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죠.
감독은 이데올로기를 다루면서 흔히 빠지기 쉬운 프로파간다의 함정을 멜로라는 형식으로 빠져나갑니다. <세가지 색 연작>은 모두 고풍스럽고 서정적인 멜로물의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당연히 주인공들도 멜로물에 적합한 당대 프랑스 최고의 여배우들이고요. 실제로 의식하지 않으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삼색 연작의 주인공들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각 주제의 화신들입니다. 잘 나가는 남편의 그늘 아래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다가 그의 죽음 이후 주체적인 삶을 선택하는 블루의 주인공(줄리엣 비노쉬), 사랑하는 아내(줄리 델피)가 야박하게 자신을 내치자 경제적으로 성공하여 그녀와 평등한 지위를 찾고자하는 화이트의 주인공(즈비그니에프 자마호프스키), 무한한 애정으로 인간 불신에 빠진 괴팍한 노인(쟝 루이 트랭티냥)과 아름다운 우정을 이어가는 레드의 주인공(이렌느 야곱). 자칫 이념의 얄팍한 편린이나 스케치에 불과할 수도 있었던 캐릭터들에게 피와 살을 덧입혀 생명력을 불어넣은 건 역시나 줄리엣 비노쉬, 줄리 델피, 이렌느 야곱이라는 당시 최절정기를 구가하던 세 여배우의 열연 덕분이겠죠.
그 밖에 제목이 내포하는 주제에 따라 변화하는 각 영화의 색조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OST들 모두 <세가지 색 연작>을 걸작의 반열에 올리기에 모자람이 없지만, 3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점은 바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윤리적 상상력입니다. 유럽은 이후 당시의 희망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정치는 극우화되었고, 경제는 나락에 쳐박혔죠. 이민자 문제에 대한 첨예한 대립으로 자유, 평등, 박애를 통한 인간과 인간의 유대는 사실상 허물어졌고, 브렉시트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통합의 실패는 점점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이건 무슨 영화판 펠레의 저주가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만, 그렇다고 이 영화들이 보여준 비전과 이상이 지금에 와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저 나이브하던 시대가 만들어낸 시대착오적인 유물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요?
<세가지 색 연작>의 마지막 작품 <레드>의 말미에서는 도버해협을 왕복하던 유람선이 침몰해 극소수의 생존자만을 제외하고 모두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죠. 현재의 유럽연합의 침몰을 예언이라도 하는 듯한 이 장면을 통해 감독은 유럽통합이 절대로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 얼마나 많은 풍파를 겪게 될지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가지 색 연작>의 주인공들을 유일한 생존자로 묘사함으로서 마지막 희망의 불씨만은 남겨놓습니다. 영화 내내 만난 적이 없거나 슬쩍 스쳐지나가던 그들이 공통으로 맞닥뜨린 시련 앞에서 겨우 한자리에 서게 되는 것이죠.
새로운 시대에 대한 비전과 이상을 제안하던 영화는 30년이 지난 지금, 실패하고 망가진 현실에서 당시에 가졌던 비전과 이상을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가에 대한 힘겨운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영화가 보여준 윤리적 상상력과 오늘날의 파국적 현실 사이에서 발생한 메우기 힘든 간극이 도리어 이 작품들의 생명력을 연장시켰다는 점은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PS.
<세가지 색 연작>에서 제일 섬찟했던 장면인 줄리엣 비노쉬가 돌벽에 주먹을 긁으며 자해하는 장면은 원래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촬영하려했는데, 막상 착용해보니 너무 티가 나더랍니다. 그러자 한참 연기에 몰입중이던 비노쉬는 보호장구없이(!!!) 그 장면을 연기했다고 합니다.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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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감독이 영화에서 제시한 고결한 비전이 현실에선 모조리 시궁창에 처박히는 형국이라는게...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