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호러 No.103] 고딕 호러의 부활 - 프랑켄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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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 Frankenstein (2025)
고딕 호러의 부활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은 감독이 평생 쌓아온 영화 세계와 오래전부터 품어온 이야기에 대한 신념의 결정체처럼 다가옵니다. 그의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어요. 델 토로가 언젠가 반드시 <프랑켄슈타인>을 만들 거라는 걸요. 수십 년간 괴물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해온 그가 마침내 그 결정판으로 돌아온 겁니다. 이 이야기를 연출하기에 델 토로만큼 적합한 감독은 없을 거예요.
빅터 프랑켄슈타인(오스카 아이작)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무관심한 아버지 아래에서 외로움에 잠식당한 인물입니다. 죽음 너머의 생명을 향한 광적인 집착은 결국 '사랑받지 못한 자의 복수'로 변질되죠. 전쟁터에서 수집한 시체 조각으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고, 그렇게 태어난 피조물은 아기처럼 순수합니다. 하지만 빅터는 두려움에 자신의 피조물을 버리고, 사람들은 공포심으로 폭력을 휘두르며 그를 내몰죠.

델 토로와 특수분장 디자이너 마이크 힐이 창조한 이 괴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입니다. 제이콥 엘로디의 약 1.96미터에 달하는 신장은 압도적이고, 괴물의 몸은 서로 다른 피부색과 질감의 근육 조각들이 정교하게 이어 붙여진 형태로 디자인됐어요. 창백한 피부와 어두운 낭만주의가 괴물의 외형에 반영되어, 보리스 칼로프의 고전적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존재로 탄생했습니다. 엘로디의 눈빛과 몸짓은 새로 태어난 영혼의 순수함과 상처를 동시에 담아내고 있죠.
영화는 도입부부터 괴물의 압도적인 힘을 보여줍니다. 북극의 선박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이 인상적이에요. 선원들이 총을 쏘고 무기로 공격해도 그는 자기방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리력만 사용하죠. 빅터를 넘겨달라고 요구하면서 덤벼드는 선원들의 몸을 꺾어버리고 멀리 던져버리며 제압해나갑니다. 특히 거대한 배를 밀어서 기우뚱하게 만드는 힘은 많은 <프랑켄슈타인>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물리적 스케일이에요. 이 장면에서 우리는 그가 엄청난 힘을 지녔음에도 마구잡이로 살인을 하지 않는 인간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음을 엿보게 됩니다.
괴물은 언어를 익히고 세상을 이해하며, 결국 자신이 괴물임을 깨닫죠. 그때부터 그는 단순한 복수자가 아니라 세상과 창조자를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델 토로의 세계에서 괴물은 언제나 상처받은 영혼입니다. <헬보이>의 헬보이와 에이브 사피엔, <셰이프 오브 워터>의 물고기 남자, 그리고 이번 <프랑켄슈타인>까지 같은 정서를 공유합니다.

메리 셸리의 원작은 철학적이면서도 차가운 작품이었습니다. '신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의 오만'이 핵심 주제였죠. 그러나 델 토로는 그 냉기를 열정으로 녹여냅니다. 철학 대신 뜨거운 감정을 선택하는 거죠. 그의 영화에서 빅터는 신에 대한 도전이라기보다 어머니를 잃은 아이의 절규처럼 보입니다. 괴물은 단순한 실험체가 아니라 외로움의 산물입니다. 원작이 인간의 죄를 묻는다면, 이 영화는 인간의 무관심을 파고듭니다. 델 토로는 "괴물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존재다"라는 진실을 잔인할 만큼 정직하게 그려냅니다. 그의 영화에서 괴물은 인간적 감정을 지니고, 그 누구보다 외로움으로 인한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로 그려지죠.
델 토로는 호러 장르에 능숙한 감독입니다. 그는 이야기 속 공포를 관객의 마음속에서 요동치게 만들죠. 싸구려 점프 스퀘어 따위는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느리고 조용하게 공포가 스며들도록 우직하게 연출합니다. CG를 최소화하고 실제 세트와 전기 장치, 수작업 특수 분장으로 자신의 비전을 구현해냅니다.

영화의 미장센은 시적입니다. 고딕풍 실험실, 금속과 증기, 차가운 푸른 조명 아래 살아 움직이는 시체의 질감은 마치 숨을 쉬는 것 같아요. 특히 괴물의 탄생 시퀀스는 영화 전체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번개가 실험실을 가르고, 전기가 시체를 관통하며, 생명이 깃드는 그 순간의 긴장감은 숨이 멎을 듯합니다. 델 토로는 이 장면을 위해 배우의 몸에 실제 전기 장치와 기계 장비를 연결했고, 그것들이 작동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죠. 물질의 무게와 생명의 경외감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영원한 고독의 세계
(다음 두 문단에는 결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작 소설에서 괴물과 빅터는 모두 파멸로 치닫지만, 델 토로는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설원 위, 죽어가는 빅터 앞에 괴물이 앉습니다. 둘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괴물은 마지막 순간 빅터에게 "용서한다"고 말하죠. 이것은 화해가 아닌, 아버지에게 학대받은 빅터가 자신의 피조물에게 똑같은 상처를 물려준 트라우마의 순환을 끊는 순간입니다. 그 모든 고통을 견디고 용서를 선택한 괴물이야말로 빅터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로 다가옵니다.
델 토로는 이 작품을 통해 "괴물을 만드는 건 창조 행위가 아니라 사랑 없이 버린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불멸의 존재로 영원히 살아가야 할 괴물은 증오 대신 용서를 선택함으로써 복수심의 사슬에서 벗어납니다. 괴물은 자신을 공격했던 선원들의 배를 얼음에서 풀어주고, 북극의 태양 아래 얼굴을 드러내고 섭니다. 빅터의 시신을 싣고 떠나는 배를 바라보며 괴물이 흘리는 눈물은 어둠에서 비로소 빛으로 나아가는 순간의 눈물입니다. 동시에 혼자 짊어지고 나가야 할 깊은 고독도 함께 담겨 있죠. 이제 자신을 알아보고 이해할 유일한 존재를 잃었으니까요. 창조자와 피조물이 서로의 상처를 마주하는 이 장면은 델 토로 세계관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스포일러 끝)

<프랑켄슈타인>은 오랜 기다림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안겨줍니다. 중반부 전개가 다소 늘어지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마저도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맞닿아있어요. 영화 속 괴물은 불완전하고, 빅터 역시 불안정한 인간이죠.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델 토로가 전하려는 진짜 이야기, 인간 존재의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델 토로의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로 느껴집니다. 그는 늘 영화를 통해 자신이 창조한 괴물과 인간을 이해하려 했고, <프랑켄슈타인>에서도 같은 메시지를 전해요. 사랑과 외로움, 창조와 죄,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이죠. 그래서 영화가 끝나도 마음 한구석의 뜨거운 열기가 쉽게 식지 않습니다. 빅터가 괴물의 얼굴을 바라보는 그 순간, 영화를 보는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괴물을 응시하고 있는 걸까요? 또 괴물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걸까요?
덧붙임...
1. 델 토로 감독은 7살 때 제임스 웨일의 1931년 <프랑켄슈타인>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11살 때 메리 셸리의 원작 소설을 읽으며 영화화의 꿈을 키웠습니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50년간 제 마음속에 있었고, 20~25년간 만들려고 시도했다”고 밝혔습니다. 고딕 호러가 그의 교회가 되었고, 보리스 칼로프가 그의 메시아가 된 순간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2007년부터 여러 스튜디오에 제안했지만 계속 거절당했던 프로젝트라고 하는군요.

결국 넷플릭스에서 제작 결정이 되면서 이 영화에 1억 2천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됩니다. 이는 장르 영화로는 이례적인 규모였고, 넷플릭스가 델 토로의 비전을 완전히 실현하도록 지원한 것을 보여줍니다. 델 토로가 2023년 넷플릭스와 다년간 계약한 이후, <피노키오>가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직후 프로젝트가 공식화되었습니다.
2. 원래 괴물 역은 앤드류 가필드로 캐스팅되어 9개월간 디자인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2024년 1월, 촬영 시작 9주 전에 SAG-AFTRA 파업으로 인한 스케줄 충돌로 가필드가 하차했습니다. 델 토로 감독은 가필드를 위해 제작한 모든 디자인을 폐기하고, 키가 2미터에 육박하는 제이콥 엘로디를 위해 단 9주 만에 전체 디자인을 다시 제작해야 했습니다. 이는 제작팀에게 엄청난 도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엘로디의 캐스팅은 완벽한 선택이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3. 엘로디는 매일 최대 10시간 동안 분장 의자에 앉아야 했고, 때로는 오후 10시에 분장실에 도착해 밤새 깨어있어야 했습니다. 델 토로 감독은 그가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며 감탄했습니다. 엘로디 본인은 “분장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괴물이 되어야 했고, 그 과정 자체가 창의적으로 매우 해방감을 주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이 역할을 영혼을 파헤치는 경험이자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힘든 역할이었다고 밝혔습니다.

4. 델 토로 감독은 “실제 세트를 원한다. 디지털도, AI도, 시뮬레이션도 원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장인정신을 원한다. 사람들이 페인팅하고, 만들고, 망치질하고, 회반죽을 바르는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의 실험실과 앤더슨 선장의 배는 모두 완전히 건설된 실제 세트였습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타마라 데버렐과 촬영감독 댄 라우스텐이 이끄는 팀은 세밀한 디테일에 집착했고, 심지어 이끼 전문팀까지 동원되어 세트에 이끼를 심었습니다. 델 토로는 실제 세트가 배우들의 연기와 영화의 분위기에 필수적이라고 믿었습니다.
5. 델 토로 감독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과학자보다는 록스타처럼 보이게 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데이빗 보위, 믹 재거, 프린스를 오스카 아이작의 연기에 대한 영감으로 제시했습니다. 의상 디자이너 케이트 호리는 빅터의 의상에 이러한 록스타적 요소를 반영했고, 아이작은 “매우 유럽적인 이야기를 라틴 아메리카, 멕시코, 가톨릭적 관점으로 풀어냈다. 항상 고조된 열정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접근은 전통적인 과학자 이미지를 벗어나 빅터의 자아도취적이고 예술가적인 면모를 강조했습니다.
6. 제작팀은 ‘공포 초콜릿 전문가(horror chocolatier)’인 사라 하디를 고용했습니다. 그녀는 완전히 식용 가능한 초콜릿으로 만든 초현실적인 해부학적 모형들을 제작했습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심장과 두개골 등이 포함되었으며, 모두 식용 초콜릿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델 토로 감독이 디테일에 얼마나 집착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며, 세트의 모든 요소가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는 그의 철학을 반영합니다.

7. 영화의 오프닝 북극 선박 장면을 위해 약 40미터 길이의 완전한 19세기 범선이 토론토의 주차장에 건설되었습니다. 이 배는 100명 이상의 선원과 크루를 수용할 수 있었고, 실제로 작동하는 돛대 장치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프로듀서 J. 마일스 데일은 “배는 거대한 짐벌 위에 있었고, 괴물이 배를 밀어내는 장면은 실제였다. 엄청난 엔지니어링 프로젝트였고,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고 회상했습니다. 인공 눈과 얼음도 배 주변에 설치되었고, 눈보라는 거대한 폭스바겐 엔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8. 괴물의 머리 디자인은 1800년대 골상학 매뉴얼의 패턴을 따랐습니다. 델 토로는 “우아하고 거의 공기역학적인 선을 원했습니다. 설화석고나 대리석 조각상 같은 느낌, 새로 주조된 인간의 느낌을 추구했습니다. 마이크 힐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전쟁터에서 수집한 다양한 신체 부위로 괴물을 꿰맨 것처럼 보이도록 기하학적이고 색상으로 구분된 패턴을 고안했습니다. 또한 어린 시절 교회에서 본 실물 크기의 예수 이미지를 참고했다”고 밝혔습니다.

9. 제작팀은 촬영지를 찾기 위해 유럽 전역을 탐색했고, 처음에는 체코와 헝가리를 고려했습니다(메리 셸리가 여행했던 곳). 최종적으로 스코틀랜드의 풍경과 역사적 건축물이 선택되었습니다. 에든버러의 로열 마일, 시클리프 비치, 고스포드 하우스, 버글리 하우스(잉글랜드), 호스피탈필드 하우스 등이 주요 촬영지였습니다. 프랑켄슈타인 가문의 저택은 여러 역사적 건물을 합성해서 만들어졌다는군요.
10. 엘로디는 괴물의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일본의 부토(暗黑舞踏) 춤을 공부했습니다. 부토는 죽음과 어두운 주제를 다루는 일본의 전위 무용입니다. 또한 엘로디는 몽골 목소리 노래도 훈련했는데, 이는 괴물의 특유한 목소리와 매너리즘을 만들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의치를 끼우는 순간 괴물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왔”으며, 준비 과정이 캐릭터 창조에 필수적이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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