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키 카료(1953~2025)를 추모하며.(feat. 니키타, 도베르만)
해리엔젤
그가 출연한 작품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비록 그가 나온 모든 영화를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단 한 편만으로 그 인상이 강렬하게 각인되어 팬을 자처하게 만드는 그런 배우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뜬 프랑스 배우 체키 카료도 저에게 있어 그런 배우들 중 하나였죠.

아마도 그가 우리나라 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계기는 뤽 베송의 누벨 이마쥬 느와르 <니키타(1990)>일것입니다. 냉혹하게, 하지만 가끔은 부드럽게, 당근과 채찍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인간말종 주인공 니키타(안느 빠릴로)를 정부의 암살자로 길들이는 특수요원 '밥'은 여지껏 본 적이 없는 캐릭터였습니다. 니키타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지에 내몰지만, 동시에 그녀의 갑작스런 키스에 당혹해하는 남자. 그녀의 정체를 숨겨주기 위해 의뭉스럽게 과거사를 즉석에서 꾸며내지만, 다음 순간 또다시 치명적인 함정으로 내모는 남자. 하지만 마지막 순간, 니키타의 탈주를 눈감아주며 지긋하게 웃음을 흘리는 남자. 그러면서 남겨진 그녀의 연인에게 던지는 한마디. "우린 그녀가 그리울거야."
옙, 그 순간 저 돌아버린 상남자 포스를 보여준 저 배우, 체키 카료는 제 뇌리에 영원히 각인되었습니다. 크흑, 주모! 여기 불란서뽕 한 사발 추가요!
<니키타>의 성공 이후 헐리우드의 부름을 받아 고만고만한 악역을 거쳐가던 그를 다시 불러세운 건 누벨 이마쥬 세대의 마지막 주자 얀 쿠넹이었습니다. 그는 살짝 SF가 섞인 하드보일드 범죄 느와르 <도베르만(1997)>에 그를 캐스팅했습니다. 그리고 체키 카료는 다시 한번 그의 진가를 발휘합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범죄자 도베르만(뱅상 카셀)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범죄자보다 몇 배는 더 악랄한 악질경찰 '크리스티니' 역을 맡아서 말이죠.
크리스티니는 경찰로서의 사명감과 명예는 애저녁에 엿바꿔 먹은 인간입니다. 협박, 폭행, 고문은 기본장착 스킬이고 치열한 총격전 와중에 동료, 시민들이 픽픽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빡 않고 오로지 목표의 목덜미만 노리는 저돌성에, 체포한 범인을 그 자리에서 처형해버리는 잔혹함까지 두루 갖춘, 그야말로 '보법이 다른' 사이코패스죠. 파르라니 깍은 머리, 각진 턱에 테스토스테론 고이 접어 나빌대는 이 악마적 기가채드는 도베르만의 부하의 집에 다짜고짜 찾아가 온가족이 보는 앞에서 '니네 아들놈 게이고 남창짓으로 먹고 사는데 여지껏 몰랐냐?'라며 수치스럽게 아웃팅을 시키더니, 심지어 그 가족들을 인질로 삼아 도베르만을 꾀어내려고 합니다. 이렇듯 만화스럽게 과장된 캐릭터들로 가득했던 이 작품에서 그의 캐릭터는 단연 군계일학이었습니다.
하지만 체키 카료가 항상 이렇게 센 역만을 연기한 건 아닙니다. BBC 드라마 <미씽(2014)>에서는 온화하고 사려깊지만, 하나뿐인 딸을 마약의 수렁에서 건져내지 못한 것에 깊은 회한을 가진 베테랑 형사를 연기했었죠. <코어(2003)>에서는 지구 내핵을 파고드는 위험한 임무를 받았음에도 끝까지 유들유들한 태도를 잃지않는 팀내 분위기 메이커 역이었고요.
체키 카료는 주연이든 조연이든, 배역이 크던 작던 간에, 그가 영화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 자체만으로 묘한 기대감을 주는 그런 배우였습니다. R.I.P 체키 카료. 당신이 나온 영화를 볼 때마다 정말 행복했어요.
추천인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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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우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했습니다. 니키타가 인생작품이기도 하고요. 그외에 여러 작품에서 빌런들도 많이 하셨죠.
특히 전 악역인데 너무 주연보다 더 존재감있어서 그게 좋더군요.
니키타 그분이셨네요 ㅠㅠ
삼가 고인의 명복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