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최대의 도박 (1969) 야쿠자영화 수작. 스포일러 있음.

상당한 수작이다. 스토리가 어쩐지 한국영화 "뜨거운 피"를 많이 닮았다.
야쿠자영화라기보다, 정치 스릴러나 심리드라마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사실 폭력장면도 얼마 되지 않는다.
간사이지방을 아우르는 야쿠자 대조직의 수장이 죽고, 그의 후계자가 결정되려 한다.
죽은 수장은 자기 후계자로 혼조라는 젊은 간부를 지목했다.
하지만, 혼조가 순조롭게 수장으로 등극하려는 순간, 이와사라는 늙은 간부가 반대한다.
자기가 조직 내 위치는 더 높다. 조직 내에서 헌신도 더 많이 해왔다. 어느 모로 보나, 자기가 더 자격이 있어 보인다.
이와사도 조직 내에서 권력이 막강한 지라, 많은 간부들이 이와사의 편을 들며, 혼조에게 반대한다.
혼조와 이와사 - 둘 간 권력투쟁이 벌어진다.


야쿠자영화라기보다 정치 스릴러에 더 가깝다.
이와사는 자기가 아무래도 정당성 면에서는 처지기에,
가급적 많은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이에 비하면 혼조는 아직 젊고 원리원칙에 충실하려는 남자다.
정치적 권모술수같은 것은 경멸한다.
하지만 저 위에서,
정치가와 야쿠자 조직 간부들이 결탁해서 음모를 꾸미는 것이야 그가 어쩌겠는가?
너무 순수한 혼조는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주인공은 이츠키라는 간부다. (츠루타 코지라는 당대 최고스타였다고 하는 배우가 이 역을 맡았다. 보다시피, 얼굴이 아주 인자하면서도 카리스마가 있어, 야쿠자영화에 아주 자주 나온다.)
명망 있고 인격 훌륭하고 두뇌 회전도 빠르다.
그는 이와사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람이다. 하지만, 동시에, 혼조와는 의형제 관계를 맺은 사람이다.
이츠키는 중간에 낀다.
이와사는 그의 충성의 대상이다. 하지만, 혼조와는 형제처럼 지내왔다.
양쪽에서 동시에 불어오는 격렬한 폭풍을 한 몸에 맞고 있는 상황이다.
이츠키는 공평무사한 중립을 지키려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중립이라고 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츠키는 여기저기에서 많이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쿠자 룰에 충실한, 중립을 지키려 노력한다.



다른 영화같았으면 이츠키가 존경할 만한 주인공으로 그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츠키의 이런 태도는, 모두를 멸망시키는 최악의 선택이었다.
여기에 이 영화의 훌륭한 점이 있다.
이츠키는, 혼조가 물 아래로 가라앉으며 파멸해 가는 것을 그냥 괴로워하며 지켜본다.
하지만 그에게는,
형제의 몰락에 대한 인간적인 괴로움보다도 더 앞서는 것이 바로
야쿠자의 룰이다.
자기 친척도 살해당하고, 혼조도 살해당하고, 모두가 다 파멸해 버릴 때까지도
이츠키는 그저 괴로워할 뿐 어쩌지 못한다.
이와사의 부하이기에, 이츠키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손금 보듯 훤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혼조에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혼조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이와사의 음모에 당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말이다.
(혼조가 살해당하자, 이츠키는 '나때문에 죽었을 지도 모른다' 하고 의심한다.
이렇게 괴로와할 거면, 왜 그를 구해주지 않았나?)



혼조가 살해당하자, 이츠키는 칼을 들고 뛰어 들어가
이와사를 죽인다.
그리고, 자신도 살해 당한다.
영화가 끝나자 자막으로,
이츠키가 이와사를 죽인 사건을 계기로
경찰이 습격하여 이 조직을 일망타진했다고 나온다.
이츠키는 옳은 선택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립이라고 하는 것은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친척도 죽이고, 친구도 죽이고, 오야붕도 죽이고, 자기도 죽고,
조직은 멸망해 버렸다.
이츠키가 먼저 손을 내밀어 혼조를 도왔다면,
권모술수를 모르는 혼조가 야쿠자조직을 온건하게 꾸려서
무리한 욕심 부리지 않고 야쿠자조직이 본업인 도박에나 충실하도록 했을 것이다.
그러면 조직은 무사했을 것이다.





원리원칙을 항상 지킨다고 하는 것이 늘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까?
이 영화에서는 아니다.
자기 친척이 살해 당하고, 형제같던 혼자가 살해 당하고,
자기가 충성을 바쳐오던 조직이 부패하고 무너져가는데,
이츠키는 끝까지 이 조직을 지키는 방법이 야쿠자 룰에 충실하는 것이라 믿는다.
야쿠자영화이지만, 사실은 정치 스릴러에 더 가깝고,
심오한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무언가 가르치려 들지 않고, 줄거리와 캐릭터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주제를 부각시켜 나가는
그 방법이 마음에 들었다.
상당히 타이트한 정치 드라마다. 속도감 있고,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일급배우들이 펼치는 섬세하면서도 강렬하고 에너제틱한 연기가 인상적이다.
60년대 일본영화답게 아주 중후하고 장엄하다. 영화가 묵직하다.
마지막에 이츠키가 칼을 들고 혼자서
엄청 많은 야쿠자들이 득시글거리는 그 한가운데에서
야쿠자 회장을 죽이는 장면은 강렬함과 충격 그 자체다.
이런 강렬한 장면 - 다른 영화에서는 못 본다.
어디 구멍 하나 없다. 걸작에 한 끝 못 미치는 수작이다.
추천인 6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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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2등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여기도 후지 준코 상이 나오시는군요 ^^
3등 소개 감사합니다


















<대부>가 나오기 전에 또... 일본에서 <의리 없는 전쟁>이 나오기 전에 이런 작품이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