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모란 시리즈 - 야쿠자물의 전설적 여배우 후지 준코의 대표작 시리즈. 스포일러 있음.

붉은 모란 시리즈는 8편이 나왔는데,
여도박사 야노 오류의 일생을 담은 것이다.
야쿠자 두목으로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도박사가 되었다가
아버지 조직을 이어받은 다음,
수행을 다니는 여도박사의 일대기다.
도박사이지만 검술도 뛰어나서,
수십 대 일로 해도 상대방을 모두 척살하는 능력을 가졌다.
당시 절세미녀로 인정받던 후지 준코가 오류 역을 맡았는데,
아주 잘 어울린다.

영화가 아주 감정적이다.
끈적끈적하다 못해 찐득찐득할 정도로 감정의 농도가 짙다.
애정, 처절과 비참, 정의감, 동지애같은 것들이 정말 찐득찐득하게
보여진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1970년대 영화처럼,
너무 센티멘털하고 감정과잉이라서
영화로서의 완성도나 구조조차 허물어져 버렸을까? 놀랍게도 아니다.
야쿠자영화라서 힘이 있고 속도감이 있다. 영화는 견고하다.



이 영화의 시대는 메이지시대다.
옛 사무라이시대 정신은 아직 살아있지만,
시대와 질서는 바뀌어가는 과도기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이미 시대에 뒤쳐져서 소멸해가고 있는 중이다.
아무리 뛰어난 야쿠자라고 해도 이미 시대의 패배자들이고, 패배를 향해 서서히 가고 있는
석양 낙조의 인물들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처절함을 기본 베이스로 깔고 간다.


붉은 모란 오류는
놀라운 무술과 신기에 가까운 도박실력으로 이름 높은 아쿠자다.
어디 한곳에 매이지 않고, 일본 곳곳을 돌아다닌다.
그녀는, 이 질풍노도같은 시대의 구석구석
비참과 타락, 폭력, 권력이 사회를 좀먹는 곳을 찾아다닌다.
가는 곳마다 학대당하고 짓밟히고 무시당하고 서러움 겪는 약자들이 즐비하다.
아무리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면 뭐하는가? 그녀가 약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칼을 휘둘러서 죽일 수 있는 야쿠자 몇명 - 그것으로 세상은 안 바뀐다.
붉은 모란 오류는, 그런 사회에 대항해서 사회를 바꾸려는 의식이나 혁신성까지는 없다.
그녀는, 자기 분수 안에서, 야쿠자들의 규칙에 충실하면서, 약자를 도우려고 한다.
현명하다면 현명하고, 어리석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수라유키히메의 수라유키는, 사회를 정면으로 바꾸고
개혁하려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절망, 슬픔, 처절함, 좌절같은 것들이 짙게 깔려있다.
오류가 야쿠자들을 모두 척살하고 멀어져가는 그 결말에서조차,
승리감보다는 좌절과 슬픔이 느껴진다.
내 생각에,
신기에 가까운 도박실력 그리고 수십명과 싸워 이기는 무술실력보다도
더 큰 오류의 능력은 공감능력이다.
그는 진심으로 약자의 편에 선다. 약자들의 서러움과 아픔을 진심으로 함께 느낄 줄 안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마를 날 없다.
보고 있자면,
눈물이 저절로 나는 그런 비참한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약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눈물 나는 사정이 있는 사람 곁에서는 함께 울고,
악인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이 잔인해지는 오류는,
당시 일본인들이 그리는 영웅의 모습이었던가?



내 생각에 이 영화는 모두 수작 이상들인데, 걸작인 영화도 몇 있다.
등장인물들도 많고 주제도 많고 사건들도 많은데,
이것을 하나의 영화 안에 모두 집어넣어 잘 구축해 놓고,
배우들의 명연기와 놀랍도록 정서적인 장면들,
훌륭한 액션장면들이 합쳐진 영화도 있다.
어떤 장면들은 걸작의 느낌을 주는데,
오류가 성병으로 죽어가는 어린 창녀를 방문하는 장면은 의심의 여지 없는 걸작이다.
아직 어린 여자가 성병에 걸려 푸르덩덩하게 변한 얼굴로 단칸방에 누워 죽을 날만 기다린다.
아직 어린 여자가 죽음을 각오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일 텐데,
부모에게 팔려서 매춘을 강요 당하다가 성병에 걸려서 단칸방에 혼자 쓸쓸히 누워 죽음을 기다려야 하다니.
마치 남의 일처럼 죽음을 이야기하는 표정에는 체념뿐이다.
오류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표정으로 여자를 본다.
오류는 가진 돈을 모두 털어서 그녀에게 주고,
고향에 돌아가 죽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가 고향에 돌아간다고 집에서 부모들이 받아주지도 않을 것이다.
사회도 야만적이고 부모도 야만적이다.
그녀는 이 돈을 자기 동생에게 주어,
그녀가 자기처럼 창녀촌으로 팔려오지 않게 하리라 말한다.
오류는 무력하다. 초인적인 검술을 가진 그녀이지만, 창녀를 뒤로 하고 무력하게 돌아올 수밖에.
이 정도로 감동적인 장면은 몇번 보지 못했다.




이 영화의 찐득찐득한 감정 및 현란한 화면과 비교하면,
타란티노감독의 킬 빌은 산뜻 무덤덤하다.
비유하자면, 끈적끈적한 막걸리와 산뜻한 탄산수 정도 차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비정상은 오류다.
악역 (?) 야쿠자들은 항상 말한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자본이 제일이고, 남들보다 앞서서 기회를 포착해서 기득권을 쟁취하는 것이 최고다.
오류는, 의리와 도덕 그리고 정같은 것에 집착한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하지만, 그것이 지고한 가치이던 시대는 이미 가고 있다.
영화 마지막에 오류는 악당들의 소굴에 뛰어들어가 이들을 모두
척살한다.
하지만, 그 다음 나오는 것이, 패배자로서 시대 착오적인 존재가 되어
비틀거리며 사라지는 처절한 뒷모습이다.
오류를 사랑하는 사람도 나오고, 오류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온다.
하지만, 그들 모두, 오류처럼, 지나가 버리고 있는 가치를 붙잡고 거기 충실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결국, 지는 낙엽처럼 죽고 만다.
어쩌면 오류도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이 밖에 다른 결말이 그들에게 있을 수 없다.
조만간, 꺾이기보다는 죽음을 선택할 사람들이기에.






붉은 모란 시리즈는 보다가 보면 중독성이 아주 크다.
후지 준코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모습도 그렇고, 곳곳에 보여지는 사회적 약자들의 안타까운 모습,
그리고 마지막 비장한 결투장면까지. 원색으로 가득한 그로테스크한 풍경 속에서
피와 휘둘리는 칼의 광채, 그리고 목이 갈라져 피를 내뿜는 모습 등이 어우러져
참으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
추천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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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3등 친구가 중고 책방에서 "후지 준코" 상에 관한 책을 사다줘서
가보처럼 모시고 있다는 ㅎㅎㅎㅎ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