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아무도 없어요?_영화 <엘리오>(약스포)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가입해서 처음 글 써봅니다.
개인 블로그에 가끔 영화 관련한 글을 쓰는데, 엘리오 감상문을 공유하고 싶어 가입했습니다.
영화 이야기 많이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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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 명 이상의 사람이 사는 지구가 우주를 향해 외친다, 거기 아무도 없냐고.
1977년, NASA는 무인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와 2호를 우주에 보낸다. 보이저호 안에는 보이저 골든 레코드라는 LP판이 있는데, 외계 생명체에게 인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만든 물건이다. 골든 레코드 겉에는 친절하게도 사용 설명서가 그려져 있고, 안에는 55개국의 언어로 담은 인사말(한국어도 포함되어 있다)과 지구의 사진, 지구의 음악 등이 담겨있다. 47년 넘게 항해를 중인 보이저는 현재 지구로부터 200억 km 넘게 떨어진 아득한 곳(그래도 여전히 태양계를 벗어나진 못했다)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외계인이 보이저의 골든 레코드를 획득해서, 지구의 메시지를 들었다면? 그리고 메시지에 대한 대답을 지구에 보냈다면? 영화 <엘리오>은 아마 이런 상상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영화 <엘리오>는 주인공 엘리오가 외계인과 교신에 성공하면서 펼쳐지는 모험 이야기다. 부모님 없이 고모와 살고 있는 엘리오는 친구가 없다. 엘리오는 고모와 함께 간 박물관에서 우연히 보이저와 골든 레코드에 관련된 내용을 접하고, 그때부터 외계인과의 교신을 시도한다. 무작정 해변에 가서, 모레 위에 '나를 데려가줘'라는 글을 쓰고 하루 종일 누워있는가 하면, 무전기와 안테나를 사용해 끊임없이 외계인과의 교신을 시도한다. 그러다 정말 우연한 계기로 외계인과 교신에 성공하고, 지구 대표로서 커뮤니버스라는 우주 사회에 초대를 받는다. 과연 지구에서 친구가 없던 엘리오는 우주에서 친구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외로움'이다. 영화 초반부에 한 번, 후반부에 한 번, 똑같은 내레이션(아마 라디오 방송)이 나온다. 보이저와 골든 디스크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며, 인류는 보이저와 골든 디스크를 통해 우주에게 '우리가 혼자인가'라고 묻는다는 내용이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지구에 7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굳이 우주에 있을지도 모르는 '누구'를 찾는 걸까. 영화 초반 엘리오의 고모는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는 엘리오에게 '너의 친구는 우주가 아니라 지구에 있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엘리오는 지구가 아니라 우주에서 친구를 찾는 걸까?
놀랍게도(?) 엘리오는 우주에서 글로든이라는 외계인 친구를 만든다. 우주의 정복자 글라이곤의 아들인 왕자 글로든은, 이름이 뭐냐고 묻는 엘리오에게 "그 누구도 내 이름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없었어"라며 신나한다. 아마 두 사람(?) 모두 외로운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둘은 또 '아웃사이더'라는 공통점이 있다. 엘리오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다른 친구들끼리 그들만의 특별한 하이파이브를 하는 걸 보며, 본인도 특별한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어 하지만 쉽사리 끼지 못한다. 글로든이 속한 사회는 굉장히 호전적이다. 글로든 종족(?)은 전투갑옷을 입는 성인식을 진행하는데, 글로든은 성인식 때 입을 전투갑옷을 엘리오에게 자랑하듯 소개하지만, 사실 글로든은 전투와 폭력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영화 후반부에 드러난다. 엘리오가 지구가 아닌 우주에서 친구를 찾는 이유, 엘리오와 글로든이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둘은 외로운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인류는 지구를 너머 우주에 있을지도 모르는 외계인과 연결되고 싶어 보이저를 보냈고, 외계인과 친해지고 싶어 골든 디스크에 친절한 인사말을 담았다. 왜 인류는 잘 알지 못하는, 위험한 우주에 손을 뻗는 걸까. 만화 <진격의 거인>의 주인공 에렌이 벽 너머의 세상으로 가고 싶어하는 이유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게 인간이니까. 인간의 탐구심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닿지 못하는 바깥과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류는 이미 많이 연결됐다. 와이파이만 있으면 전 세계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연결됐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인류는 사회에 속하고, 사회에는 규칙과 문화가 있다. 규칙을 잘 지키고, 문화에 잘 어울리면 대부분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엘리오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엘리오의 고모는 엘리오를 기숙 캠프에 보내는데, 미식축구 등 단체활동에 잘 어울리지 못하고, 하필이면 예전에 한 번 싸웠던 아이가 캠프에 있어서 더더욱 적응하기 어려웠다. 글로든은 호전적 종족의 왕자다. 우주의 정복자인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본성 때문에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묘사되진 않지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엘리오는 지구가 아닌 우주에서 친구를 찾아야 했고, 비슷한 처지의 친구 글로든을 만나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영화 <엘리오>는 연결되고 싶은, 사랑받고 싶은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선물 같은 영화 같다. 아이디어 넘치는 픽사 답게, 기발하고 재치 넘치는 장면도 많다. 다만 이야기의 규모가 너무 커서 그런지, 장면과 장면이 매끄럽게 넘어가진 않는다. 픽사 영화 치고는 살짝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고 감동적이다. 후속편이 분명히 나올 것 같다. 엔딩크레딧 중간에 짧은 쿠키 영상이 있는데, 딱 보자마자 후속편을 이미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영화 내용을 곱씹다 보니, 두 노래가 생각났다. 하나는 개똥벌레, 다른 하나는 Lost Stars다. 개똥벌레의 '외로운 밤 쓰라린 가슴 안고, 오늘 밤도 그렇게 울다 잠이 든다'라는 가사가, 해변에 누워 외계인을 기다리는 엘리오의 모습에 어울리는 것 같다. Lost Stars의 'We are seaching for the meaning but are we all lost stars, trying to light up the dark'의 가사에서는 연결되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발버둥 치는, 우주의 먼지조차 되지 못하는, 외로운 우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세상 모든 외로운 사람들이 "거기 누구 없어요"라는 외침에 메아리가 아닌, "여기 있어요"라는 대답을 받을 수 있길 바라며 영화 <엘리오>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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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추천인 5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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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영화 콘택트 보고 엄청 감동 받았는데.. 그와 비슷한 정서가 담겨서 좋았어요.
칼 세이건의 목소리도 나오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