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리아!] 처음 만나는 음악적 자유
청소, 빨래, 요리 등 여성의 노동 소음이 성가 연주와 어우러져 묘한 하모니를 자아내는 영화의 오프닝부터 인상적이다.
1800년 베니스 근교를 시공간적 배경으로 하는 이탈리아 영화 <글로리아!>는 수녀원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신부로부터 학대를 당하던 테레사가 우연히 창고에서 발견한 피아노를 연주하며 타고난 음악적 천재를 드러내고 수녀원 성가대 소녀들과 비밀스런 우정을 쌓아가며 음악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폐쇄된 공간에 갇힌 소녀들의 우정이란 주제는 안젤리나 졸리와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처음 만나는 자유'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지만 <글로리아!>는 그처럼 드라마틱한(극단적인) 서사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만의 비밀스런 공간에서 음악이란 예술을 향유하는 소녀들의 모습은 '죽은 시인의 사회' 속 역시 비밀스런 공간에서 시를 향유하던 소년들과 겹쳐 보인다.
<글로리아!> 속 종교가부장적 사회 안에서 억압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소녀 음악가들이 서로의 음악적 재능을 경쟁하며 아주 잠시 시기와 오해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이내 서로의 각기 다른 재능을 인정하고 음악을 통해 연대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감독 마르게리타 비카리오는 극적 재미를 위해 인물들간 인위적인 갈등을 조성하는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다(소녀들 중 고구마 빌런은 없다). 그저 예술적 창작의 기쁨에 빠져드는 소녀들의 환한 연대를 반갑게 지켜 볼 따름이다.
이전까지의 드라마 전개의 결을 깨는 예상 밖의 엔딩이 통쾌하다.
교황을 위한 새로운 연주곡을 작곡하지 못한 음악적 재능을 소진한 무능한 신부에게 루차의 작곡을 넘겨주는 딜로 피아노와 교황 앞 연주 기회를 얻어낸 소녀들은 신부를 감금하고 기존의 성가 문법을 깨는 그녀들만의 새로운 곡의 연주를 선보인다. 교황은 신성모독이라며 극대노하고, 청중들도 소녀들의 음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스런 패닉에 빠진다. 오로지 어린 청자들만이 이 새로운 음악의 환희에 동참할 뿐. 마치 MTV 클립처럼 연기, 촬영, 편집된 연주 장면에는 힘찬 전복의 자유로운 기운이 넘실넘실 춤을 춘다.
연주회 후 기분 좋은 후일담의 깔끔한 해피엔딩까지 <글로리아!>는 재미와 감동 모두 만족스런 멋진 대중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