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뒤늦은 리뷰

스포와 뇌피셜이 작열하는 글입니다. 감안하시길.
작년 익무 게시판을 뜨겁게 달군 외계+인은 최동훈 감독을 좋게 보는 관객들에게조차 어느 정도 실망감을 안겨주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당시 영화를 보지않은 저 역시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평가에 관람을 포기했고 OTT에 풀리기만을 기다렸죠.
그리고 뒤늦게 본 외계+인은 ....
근사한 작품이었습니다. 적어도 저한테는요.
물론 제 경우 비평의 근거인 영화 전체의 완성도를 파악하는데 있어 미숙한데다 쓸데없이 사소한데 잘꽂히는 스타일이라 다른 분들의 의견과 많이 다를수 있음을 밝혀둡니다만, 그래도 외계+인은 최근 본 작품 중에서 가장 즐겁게 몰두하면서 볼수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제가 파악하기에 이 영화는 SF의 하위장르라 할수 있는 특촬물의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습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특촬물(일본어: 特撮物, とくさつもの 도쿠사츠모노[*])은 특수촬영물(特殊撮影物)의 준말로서, 말 그대로 특수촬영한 매체를 통칭하며, 일본어 特撮(とくさつ 도쿠사츠[*])에서 온 말이다."라고 정의하고 있군요. 유명한 특촬물로는 현재까지도 꾸준히 제작되고 있는 가면라이더나 파워레인저 시리즈 등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가장 유명한 특촬물은? 아마도 외계에서 온 우뢰매 시리즈(1986~)일 것입니다.
특촬물의 성격을 보면 일단 주 관객층인 아동을 타겟으로 하기에 아동지향적입니다.
아동들이 파악하기 쉽도록 플롯은 단순하고 직관적입니다. 캐릭터들은 전형적이며, 선악관계는 뚜렷합니다. 스토리는 뚜렷한 기승전결을 가지며 대부분 교훈적인 주제의식으로 마무리 됩니다. 아동들의 몰입을 위해 다소 오버스러운 슬랩스틱 코미디스런 연기도 많은 편이죠.(물론 원폭의 공포를 상징화한 초기 고지라 같은 예외도 있습니다만.)
외계+인의 대부분의 설정과 전개는 이런 특촬스러운 테이스트가 강하게 풍깁니다.
지구인의 몸에 외계인 범죄자를 감금한다던지, 주인공과 마스코트 격인 A.I를 2인 1조로 묶는다던지 촉수가 난무하는 슈트 디자인등등의 설정들은 SF의 본가 미국쪽 보다는 일본 특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설정들입니다. 물론 현란한 쫄쫄이는 나풀거리는 고려시대 복식과 깔끔한 셔츠로 바뀌었고, 손에서 빔! 대신 도술이, 과거에는 슈트액터들이 탈바가지를 뒤집어 쓰고 땀 뻘뻘 흘리며 찍어야 했던 액션장면에는 대규모의 CG가 들어갔지만, 그럼에도 특촬물 특유의 테이스트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무륵의 첫 전투 장면을 볼까요.
도대체 아무런 조명도 필요없을 것같은 내려쬐는 자연광, 탁트인 허허벌판에, 시대 배경을 짐작케하는 거 말고는 아무 의미없어 보이는 심심한 구조물들. 거기에 거의 한 프레임안에 수평으로 잡히는 인물들의 대치 구도, 묘하게 촌스런 와이어액션과 심심하면 터지는 연기... 뭔가 쓰고나서도 허접한데, 사실 이 장면은 주인공 무륵의 능력을 처음으로 관객에게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심심하고 허전하다? 이건 감독이 의도해서 대놓고 이렇게 찍은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런 구도는 과거 특촬물의 잔형적인 구도거든요.
외계+인과 우뢰매의 화면입니다.
일대일 비교는 힘들 수도 있지만...뭔가 느낌이 오지 않으시나요?^^
인물의 설정마저 묘하게 외계에서 온 우뢰매를 연상시킵니다.
바보같지만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주인공(에스퍼맨-무륵), 외계에서 온 악당을 잡으러 온 또다른 외계인 형사와 그의 지구 출신 수양딸.(씨맨, 데일리-가드, 이안)...뭔가 우연의 일치치고는 묘하게 딱 들어맞지 않습니까?
무륵과 이안, 가드가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는 와중에 흑설과 청운이 슬랩스틱 코미디 파트를 담당합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대로 이런 슬랩스틱 코미디는 특촬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요소입니다. 단지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80년대에는 당대 최고의 코미디언 심형래와 일용엄니 김수미가 본업 그대로 연기했다면, 이번엔 충무로의 1급 배우들(특히나 염정아의 몸을 사리지않고 망가지는 연기는 그저 최고...ㅠㅠb)이 연기하고 있다는 그 차이뿐입니다.
이렇게 특촬물 특유의 전통에 도입해보면 외계+인은 의외로 잘 만든 장르물입니다.
보기전에 우려했던 것과 달리 감독은 SF, 특히 특촬에 대한 이해가 상당합니다. 의도적으로 쌈마이하게 찍은 장면을 포함해서 액션도 전작에 비해 여전히 나쁘지 않고, 타임슬립을 통한 두 시간대를 오가는 구성도 SF팬이나 판타지 장르의 팬이라면 흔히 봐왔던 것이라 크게 혼란스럽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개인차는 분명히 존재할만한 부분이긴합니다.)
최동훈 감독이 71년생임을 감안하면 우뢰매나 바이오맨 같은 다양한 특촬물들을 보고 자란 세대일테고, 특촬 특유의 쌈마이한 테이스트를 좋은 추억으로 가지고 있을 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외계+인에서 어느 정도 반영한 것 아닐까하고... 뇌피셜을 막 질러봅니다.^^ 마치 델 토로 감독이 어릴 적 재밌게 본 괴수물과 거대로봇물에 오마쥬를 바치기 위해 퍼시픽 림을 만들어 냈듯이, 최동훈 감독은 자신이 어릴적 본 우뢰매나 바이오맨에게 오마쥬를 바치려고 외계+인을 만들었을지는...그 누구도 모르는 일일테니까요^^.
물론 아이언맨과 다크나이트 등 2000년대의 깔끔하고 세련된 히어로물를 보고 자란 세대에게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감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엉성한 특촬물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는 저같은 사람에게 있어 외계+인은 정말 독특한 경험이었습니다. 누군가 이 영화를 우뢰매같다고 평했다는데, 이것이 칭찬의 의미로 한말이던 비난의 의미로 한 말이던, 매우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명맥이 거의 끊기다시피한 한국 특촬물의 부활이라는 느낌으로 외계+인을 보았고, 보는 동안 어릴 적 에스퍼맨과 우뢰매를 보고 흥분했던 당시의 심정을 다시 불러낼 수 있었습니다. 분명 단점도 유치한 점도, 미흡한 점이 있는 영화임에도 저는 이 영화가 분명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라 생각합니다.
예, 이 영화는 우뢰매 같은 영화입니다. 단지 원조 우뢰매보다는 몇 배는 잘 만든, 정말 제대로 된 우뢰매입니다.
너무나 취향 저격이었기에 비록 1편은 극장에서 놓쳤지만, 2편은 꼭 극장에서 보려고 합니다.
PS.
익스트림무비 - 외계+인 개봉기념으로 풀어보는 외계에서 온 우뢰매 이야기 (extmovie.com)
외계인을 보기전 작년에 쓴 외계에서 온 우뢰매(1986)에 대한 글입니다.
함께 읽으신다면 좀더 재미있을지도...?^^
추천인 5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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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다수 성인 관객들에게 전혀 안 통하는 특촬물 느낌을 대작 영화에 꽂아넣은 이유가 뭘까요? 잘 될거라고 생각했다면 잘못 판단한거고, 망할 각오하고 지른거라면, 좀 더 저렴한 제작비로 진행했어야 했습니다.

저 휑한 벌판 싸움이 특촬물스럽긴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