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 (2022) 몇 년에 한번 나올까 한 영화.
이 영화는 정말 대단하다.
노스 캐롤라이라 습지가 무대인데, 썩은 물이 고여있고 나무와 숲이 울창해서 오지 중의 오지라고 한다. 아마존 밀림이
미국 내륙에 들어와 앉아있는 느낌이다.
여기는 빚을 갚지 못해 숨어든 사람이나 범죄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그냥 늪이 아니다. 살아 숨쉬는 벌레, 새, 식물들로 가득한 곳이다."하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가 대단한 점은, 마치 진짜 이 습지에 사는 사람처럼, 아주 생생하게 습지를 그리고 있다. 관객들이 습지를 감각하고 보고 감탄하고
그 아름다움에 젖어들 수 있도록 말이다. 습지를 엄청나게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만든 영화다. 머릿속으로 생각해서는
이런 영화가 안 나온다. 황동규시인이 시는 발바닥으로 쓰는 것이다 하고 이야기했을 때 이런 뜻을 의도했으리라.
알고 보니, 원작자가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동료와 함께 둘이서 수십년을 연구에 바친 동물학자라고 한다. 그러니 이런 영화가 자주 만들어질 리 없다. 누군가의 평생의 경험이 (그것도 지성과 감성이 탁월한 누군가다) 녹아들어 있는 영화이니 그럴 수밖에.
이런 영화는 관람하면 무조건 감동을 준다.
감독은 비록 오지에서 수십년 살면서 습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감동적인 원작에 대한 애정과 존경은 분명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원작의 이미지와 감정들을 묘사해나가다니. 습지에 나도는 썩은 식물의 향긋한 냄새, 출렁거리는 물, 진흙 위에 기어다니는 조개와 달팽이들, 물 위로 불쑥 숫은 나뭇가지 위에 앉아 눈을 껌뻑거리는 물새들을 아주 세밀하고 아름답게 묘사한다.
여기서 살아가는 야생에 가까운 주인공은 이런 습지의 생물들처럼 아름답게 거기 존재한다.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존재하는 습지의 아름다움에 비해 주인공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존재다. 하지만 죽은 다음에도 주인공은 이 습지의 한부분으로 존재할 것이다. 반딧불이 되어 희미한 빛을 비추며 찰랑거리는 수면 위를 날아다닐 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주인공같은 삶을 살 수는 없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그녀의 삶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소녀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이어지는 그 관계를 기적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영화의 그 세밀한 서정성은 바로 소녀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인간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사실 이것이 이 영화의 주제가 아닐까?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저 아름다운 습지에 대한 공감 이외의 심오한 요소들이 있다. 생각해 보자. 아름다운 자연에서 그 자연의 일부분으로 존재하는 순수한 소녀에게 외부사회의 불순한 동기와 욕정이 흘러들어온다. 이 소녀는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까? 이 영화는 이 소녀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녀의 용기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고. 자연에 대한 묘사와 이야기 못지 않게, 이 영화는 이 소녀의 선택이 그녀의 일생을 어떻게 바꾸어나가는가 하는 데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이기도 하다. 원작자가 소녀적인 감성이 있는지 좀 순정만화풍으로 그려졌기는 하지만, 소녀는 자신 못지 않게 습지와 자연을 사랑하고 그 일부가 되는 남자를 만나 사랑한다.
분위기를 말하자면 황순원의 소나기를 노스캐롤라이나의 습지에 옮겨놓은 듯한 이야기다.
추천인 6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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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사랑이란 이야기만 놓고보면 꽤 통속적인 이야기인건 어쩔 수 없는듯. ㅎ
영화도 잘 그려냈다고 하니 더 보고 싶네요(상영시간이 많지 않아서 아쉬워요ㅠ)
후기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