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 하트 (1987) 스포일러 있음.
엔젤 하트를 꽤 오래 전에 보았다.
당시 엔젤 하트는 여러 면에서 충격이었고 화제였는데, 지금 보아도 나이를 잘 먹은 것 같다.
엔젤이라는 뒷골목 탐정이, 척 보기에도 악마인 어느 신사의 방문을 받아
사라진 록가수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수행한다. 하드 보일드한 세계를 넘어서서 오컬트와 인신공양 그리고 악마 숭배가 만연한
미국 남부 흑인사회로 가서 록가수를 찾는다. 그런데 자신이 그동안 맡았던 비정하고 잔인한 업무 수준을 넘어서는
초현실적이고 악마적인 것들이 튀어나온다. 그는 이 속에서 절망적으로 허우적거린다. 더 절망적인 것은,
그가 이런 악마적인 것들과 부닥칠수록 과거 기억이 돌아온다. 그는 깨닫는다. 여기가 바로 그가 살아왔던 곳이라는 것을.
그는 이 속에서 영원히 살아야 한다. 절망 또 절망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악마는 엔젤로 하여금 자기 딸과 섹X하고 자기 딸을 살해하도록 만든다. 악마적인 곳에서 허우적거리는 것도 모자라
자기 혐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완전 파괴, 자기 포기까지 갖게 만든다. 배드 엔딩의 극단이다.
엔젤 하트의 가장 큰 셀링 포인트는 당시 일세를 풍미하던 섹시 가이 미키 루크였다. 미키 루크는 손 대는 것마다 성공하던
말하자면 절정을 향해 올라가던 무서운 기세의 배우였다. 미키 루크는 그때, 웅얼웅얼하는 발음과 어딘지 건성건성하는 듯한 연기,
권투를 한다는 둥 배우 이외 다른 일에 기웃거리는 탓에 게으른 천재같은 식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지금 보면 기름기를 쫙 빼고 스마트하게 연기하는 것이 오히려 더 현대적으로 보인다. 미키 루크는 뭐니 뭐니 해도 나인 하프 위크나 와일드 오키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을 유혹해 쾌락과 섹스의 세계로 인도하는 신비스런 섹시가이가 본령이었다. 그런 그가 하드 보일드 오컬트 무비에 등장해서
피웅덩이 속을 헤메는 역할을 하다니! 그것이 가장 큰 셀링 포인트였다고 할 수 있겠다.
미키 루크가 얼마나 대스타였는지는 저 로버트 드니로가 조연으로 등장한 데서 알 수 있다. 지금 와서는 나이 든 노배우이지만, 당시로서는 영화계의 지존이었던 로버트 드니로가 조연을 맡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로버트 드니로는 악마로 나온다. 악마의 저 소름끼치는 카리스마를 어떻게 살려내냐에 따라 영화 성공이 좌우된다. 엄청난 공포의 상징으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악마가 어딘지 허술해 보인다면 영화 전체가 무너진다. 로버트 드니로는 그런 점에서 이 영화 성공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영화 내내 축적되는 악마적인 것에 대한 공포 - 관객들은 악마에 대해 엄청난 상상을 하며 기대를 증폭시킨다. 영화 마지막에 악마가 턱하니 나타나서 사람들의 이 엄청난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 이거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로버트 드니로는 이 기대를 충족시키며 소름끼치는 경험을 선사한다. 로버트 드니로라는 대배우 조연 출연도 당시 큰 셀링 포인트였던 것 같다.
그리고 윌리엄 요르츠버그의 원작 소설 폴링 엔젤을 영화화했다는 것도 셀링 포인트였다. 이 원작 소설은 굉장한 걸작으로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영화화하려 했으나 실패했던 것을 감독 앨런 파커가 성공시켰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영화 성공은 미키 루크와 로버트 드니로였다. 이 영화는 아다시피 부두교에 대한 이야기다.
부두교니 좀비니 하는 것이 때때로 나와 히트 치는 소재이기는 했지만, 주류 영화 소재는 아니었던 때다. 메이져 스튜디오에서
대규모 예산을 들여 대스타들이 부두교 영화에 출연한 예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이 영화가 소재로 삼고 있는
저 미국 남부의 흑인 폐쇄적인 문화가 살아남은 지역, 인신공양과 부두교와 악마 숭배가 일상이 된 지역, 그 속에 들어가 악마적이고 초현실적인 악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탐정 - 이것은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미국 남부가 진짜 그런 곳일까?)
아다시피, 탐정은 원래 미스테리와 폭력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법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탐정영화라면, 탐정은 서서히 실마리를 잡아가며 이 미스테리를 풀고 안정적인 사회로 복귀한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악마의 손아귀에서 허우적거린다면? 냉철하고 사회에 닳고 닳은 탐정이라도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다.
이 언밸런스함이 이 영화의 생명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악마가 인신공양을 바치고 자기 손아귀에서 벗어난 엔젤을 찾아와 그에게 벌을 내린다는 장면은 그다지 충격은 아니었다. 당시 더 막나가는 일본영화들이 음성적으로 유통되고 있었으니까. 그 벌이라는 것이 자기 딸과 근친상X을 하도록 만들고 자기 딸을 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는 설정도 그다지 충격이랄 것 없었다. 그런 영화 이미 있으니까. 충격적인 소설이 너무 늦게 영화화되었다고 할까. 이 영화가 엄청난 흥행을 하지 못한 것은 그 이유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영화 만듦새는 당시로서도 탑으로 느껴졌다. 두 대스타가 함께 공연하는 영화에 대규모 예산과 이정도 만듦새는 당연했다. 오히려
너무 짜임새 있게 만들어져서 거칠고 난폭한 힘과 생생함이 좀 떨어지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 영화를 본다면 전성기 미키 루크가 얼마나 그 매력으로 헐리우드를 사로잡았는지 이해할 수 있으리라. 연기력, 성실성, 인간관계를 잘 유지해 나가는 능력도 없었던 배우가
(퇴폐적인) 매력만으로 헐리우드를 휘어잡았던 예가 얼마나 될까?
추천인 5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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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라도 한번더 보고 싶네요..^^
얼마 전 시사회로 봤는데 뉴올리언즈 할렘가, 남부 부두교 집단 분위기 묘사가 제 기억보다 대단했어요.
과거에 보셨던 분들이라도 재개봉 볼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