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무 시사) 기도의 숨결 감상문(영화 내용 있음)
프로방스의 따뜻한 햇살과 고요한 풍경이 주는 여유와 편안함
수녀님들의 기도와 노동이 주는 충만함이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영화입니다.
1. 폴 세잔이 사랑한 알프스 남프랑스
‘폴 세잔이 사랑한 알프스 남프랑스’라는 영화 소개에 꽂혀서,
그리고 영화 속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대체 여기는 어딘가 하고 지도를 찾아봤습니다.
주끄(Jouques)라고 표시된 저 곳인데 정말 남쪽입니다.
영화 중간 중간, 수도원 바깥의 밭이나 하늘, 저 멀리 산들이 보이는데 경치가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미술에 문외한이긴 하지만 화가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풍경이고, 심지어 달밤의 풍경마저도 예사롭지 않네요.
2. 종신서원식을 시작으로 수도원의 일상으로 들어가기
영화의 첫 장면은 베네딕트 수녀님의 종신서원식으로 시작됩니다.
수도회에 들어가고자 결심을 하고 수련기를 거쳐야 해서
종신서원까지는 7년에서 10년 정도 긴 준비 기간이 필요합니다.
가족과 친지들이 와서 함께 서원식 미사에 참례하고 마지막으로 인사도 나누는 장면이
영화 제일 처음에 나오는데 괜히 코끝이 찡했습니다.
수련 기간 혹은 그 이전부터 마음을 정하고 긴 수련 기간을 거쳐 이제 세속의 삶을 끊고
저렇게 자신을 내어놓고 신 앞에 엎드릴 수 있는 그 무게와 깊이를 감히 헤아릴 수 없지만 그래서 감동적이었어요.
3. 노동이 주는 건강함과 활력
트랙터를 몰고 밭으로 가고, 밭에 모종을 심고, 색칠공예나 목공예 등 다양한 노동을 매일매일 소화합니다.
저렇게 키운 농작물이 식탁에 오르고 직접 만든 공예품들이 수도원의 살림에 쓰이는 수입원이 됩니다.
각자의 재능과 수도원의 필요에 따라 충실히 일하시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4. 두 시간을 가득 채우는 기도의 선율과 침묵
반주 없이 부르는 기도의 노래 소리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그냥 기도문으로 중얼중얼 암송할 때와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네요.
예전에 음악하시는 분이 여러 악기를 돌고 돌아 자신은
결국 인간의 목소리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오늘 이 영화를 통해 어렴풋이 그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 소리 외에는 대사가 거의 없습니다.
일 관련해서 나누는 대화 외에 개인적인 혹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거의 나누지 않습니다.
손님 수녀님이 오셨을 때 반갑게 인사 나누던 장면, 야유회에서 피구를 하며 왁자지껄 신나던 장면 정도가 예외적이고 수도원의 생활은 불필요한 말은 삼가는 게 기본이라 그렇습니다.
일과에 맞추어 종을 울리는 것도 말을 대신하기 위함이겠지요. 그 침묵이 오히려 저를 고요히 가라앉혀 주었습니다.
5. 공동체 생활이 주는 건강함과 활력
무슨 일을 도모할 때 남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골몰하면 결국 사이비가 되어 버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공부와 관련한 이야기였는데요 공부만이 아니고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종교도 자기 혼자 몰두하고 남이나 세상을 살피지 않으면 이상한 길로 빠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조금 더 남에게 배우고자 노력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6. 종소리의 여운
뎅뎅뎅 울리는 종소리가 오랜만이라 그 경쾌한 울림이 아직도 귓가에 맴돕니다.
일상에서 자주 들을 수 없어서 그런가 봅니다.
우리나라 종은 땅에 가깝고 밖에서 치는데 서양의 종은 공중에 높이 떠 있고 안에서 치죠. 소리의 울림도 다르고요.
우리나라 종소리가 진중하고 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중후함을 갖고 있다면
서양의 종소리는 가볍다 할 수 있는데 그 나름의 맛이 있어서 이건 이거대로 좋아합니다.
오랜만에 종소리 실컷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7. 이 영화가 마음에 드신다면
가톨릭 신자든 아니든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여유와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영화입니다.
신자분이시면 짧은 피정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으실 수도 있어요.
이 영화가 좋으셨다면 2009년에 개봉했던 <위대한 침묵>을 추천합니다.
봉쇄수도원인 카르투시오 수도원에 대한 다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카르투지오 수도회가 있어요.
KBS 다큐 인사이트에서 3부작으로 <세상 끝의 집-카르투시오 봉쇄수도회>를 방영하기도 했습니다.
아래는 수도회 누리집(https://www.abbayedejouques.org/)에 멋진 사진들이 있어 공유해 봅니다.
다양한 영화들로 세상의 여러 모습에 눈 뜨게 해 주는 익무입니다.
추천인 6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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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랑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있었던 몇 분 중 하나셨군요.
2. 따로 설명 없이 자막에선 '수도서원'이라고만 표현해서 지레 짐작만 했는데 역시 종신서원이었나보군요. 베네딕다라는 이름에 기대서 말씀드리면 천주교 세례명 중에 남성형/여성형으로 구분되는 이름들이 꽤 있는데요, 보통 남자가 ㅗ 여자가 ㅏ가 되는 식인 경우가 많아요. 예컨대 베네딕도/베네딕다, 비오/비아, 프란치스코/프란치스카, 율리아노/율리아나 같은^^
3. 수녀님들 일 하는 모습 보면서 트랙터 돌리고 전기톱 켜고 직소 쓰고 하는 데 괜히 조마조마하더라구요. 분명히 수도원에서 쓰는 모든 공구/도구들을 다 수녀들이 운용할텐데 저러다 크게 다치는 경우도 있겠지? 싶어서.
4. 천주교 기도문들이 특유의 가락이나 성조 같은 게 있어서 살짝 타령(ㅋㅋ)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수녀들의 경우 기본음이랄까 하는 게 좀 높게 잡히는 것 같아요. 이게 톤만 높으면 좀 부담스러운 음색이 됩니다만 목소리들이 청아하셔서 오히려 한층 아름답고 경건한 '음악'이 되는 게 놀라워요.
6. 우리나라 성당의 경우 건물에 종을 따로 설치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게 되었는데, 영화 장면과 가장 비슷한 경험이라면 역시 삼종기도 시간(새벽 6시, 정오, 오후 6시)에 맞춰 울리는 명동성당 종소리가 아닐까 해요. 지금도 유효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명동성당에서 종을 치면 그 앞 거리를 걷던 사람들 중에서도 신자들은 걸음을 멈추고 일제히 삼종기도를 바치곤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