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 스포일러 리뷰 – 같지만 다른 목표를 향하여
영화 [헌트]는 안기부의 요원인 박평호와 김정도가 중심이 되어 극을 이끌어가는 영화로써,
안기부 속 “동림”이라는 북 첩자를 찾기 위해 대결을 벌이는 내용이 중심이다.
하지만 후반부, 사실 두 인물의 진짜 목적인 대한민국 1호의 암살이 밝혀지며 영화는 대통령 테러 사건을 막으려는 자와 일으키려는 자의 갈등으로 변하게 된다.
영화를 다 본다면, 계속해서 변화하는 두 인물의 시점으로 다시 영화를 바라보고 싶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이번 리뷰에서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헌트]를 분석해보겠다.
박평호 - 감정을 쫓는 남자
박평호는, 말하자면 “감정”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작중에서 그의 모습에선 여러 차례 감정적인 면모가 보인다. 대표적으로 동림을 찾기 위해 끔찍한 고문이 가해지는 고문실에서 자신의 분노를 누르지 못하고 고문 기술자를 밟아버리는 장면 등, 보다 감정적인 사람인 것이다.
그의 정체는 북한에서 안기부에 보낸 첩자인 "동림" 이다. 냉철한 스파이이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감시하러 온 어린 소녀인 유정을 계속 돌봐주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맞는지 죄책감을 가진다. 그의 이런 죄책감이 가장 커졌을 때는 아마도 자신을 믿고 따르던 주경을 자기 손으로 살해해야 했을 때일 것이다. 대의를 가지고 안기부에 잠입했지만, 감정은 그를 항상 옥죄어왔기에 그는 주경을 살해하고 난 후 오열하고 절규한다.
그리고 후반부, 마침내 대통령을 암살하고자 하는 계획이 실행될때, 그는 본래 자신이 생각했던 평화 통일이 아니라 적화 통일이 이뤄질 것이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될 것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는 무고한 사람들을 고문하며 자신이 동림이라는 것을 숨기는 등 대의를 위해서 희생을 감수했던 그였지만 위 사건을 기점으로 그는 대의보다 감정의 편으로 완전히 돌아선다.
테러 당일, 그에게 적화 통일을 속삭이는 북한 측 요원을 망설임없이 쏴버리는 것도 감정적인 결정이였을 것이다.
이후, 그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자신의 최대 적이였던 대한민국 1호를 보호하게 되고 목표를 얻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죄책감을 씻지는 못한다. 대의를 포기해버린 그의 행적 때문에, 그리고 이미 안기부로써 저질러온 수많은 죄 때문에. 유정이 그를 비판하는 장면과 김정도의 "그렇게 살고 싶었냐"는 유언이 이를 더욱 부각시켜준다.
마지막에 결국 그는 유정에게 살해당하며, 80년대의 어두운 역사 속에서 타의적이든 자의적이든 폭력을 자행해온 인물은 결코 상처를 치유하고 나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엔딩크레딧의 총성이 더욱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김정도- 대의를 쫓는 남자
그렇다면, 그의 반대편에 서서 그와 끊임없는 대립하는 김정도는 어떨까?
김정도는 박평호와 잠시 협력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의 안티테제로 묘사된다.
초반부 인질을 잡은 용의자를 사살하고 이를 지적하는 박평호에게 "인질이 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도 목적을 위해서라면 다른 것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본연적으로는 그도 박평호와 비슷한 사람이다. 5.18 당시 무고한 시민들을 사살하며 그가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가지게 된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이후 그는 대한민국의 1호를 암살하고 나라에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대의를 가지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는 박평호와 같은 목표를 쫓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진짜 차이는 "대의를 위해 과연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 였다.
박평호는 대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순 없었지만, 김정도는 대의를 위해서 모든 것을,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희생시킬 수 있는 사람이였다. 그렇기에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자신의 대의를 향해 질주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마지막 테러 당일에도 대의를 위해서 경호원들을 제거하고 목표를 향해 쫓고, 결국은 죽음까지 맞이하게 된다.
이 영화는 이렇게 어두운 역사 속에서 사회를 바꾸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가졌지만 결국 다른 것을 쫓았던 두 남자가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리고 어떤 결말을 맺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동시에 어떤 것을 쫓든 결국 잔인한 선택을 내릴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어두운 시대를 그리기도 한다.
[헌트] 총정리 및 후기
영화 [헌트]는 여러가지 부분에서 꽤 신선하고 인상깊었는데, 첫 번째로 좋았던 포인트는 이 영화의 전개 이다.
전반부는 두 인물의 대립과 안기부 속 스파이를 찾는 스릴러물을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 후반부 두 인물의 대립은 견고한 국가와의 대립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전환은 억지스럽게 이어지지 않고, 두 인물의 정체가 밝혀지며 자연스러운 전환이 이뤄진다. 아웅산 테러 사건을 바탕으로 한 테러 사건 속 자연스럽게 두 인물의 대립을 그려낸 것도 훌륭했다.
또 다른 흥미로운 포인트는 이 영화가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방식인데, 이 영화는 역사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모두를 쥐고 흔든다.역사를 아는 관객들은 실제 역사 사건처럼 흘러가는 영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개를 예측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실제가 아니라 허구"임을 무엇보다 영리하게 이용해내는데, 두 안기부 차장이 모두 대통령을 노리고 있다는 설정이나 그 중 한명이 북한 간첩이였다는 반전 등을 사용해서 이러한 관객들의 허를 찔렀던 것이다. 역사를 모르는 관객들 역시 전개를 예측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이 영화의 서술 트릭 때문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박평호의 시점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러니 관객은 자연스럽게 박평호에 이입할 수밖에 없으며, 그와 대립하는 김정도에게 더 의심의 화살이 향할 수 밖에 없다. 정말 간첩이였던 유정을 무고한 학생으로 보이게 연출한 것이나, 너무나 동림으로밖에 보일 수 없는 증거들을 이용해 오히려 "절대 박평호가 동림은 아닐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연출한 것 등도 이와 비슷한 서술 트릭이다. 이렇게 반전과 서술 트릭, 서스펜스를 활용해서 관객들을 쥐고 흔드는 연출력은 신인 감독이 만든 영화임을 감안하고 봐도 무척 훌륭한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결말 역시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의 결말은 결국 대통령 테러 사건은 실패하며 두 인물은 살해당하는 결말이다. 이러한 결말은 어떻게 보면 매우 차갑고 어둡다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 줘서 오히려 더욱 여운이 남는 결말이 되기도 하였다. 결말이 좋았던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결말부에서 박평호를 사살한 유정은 박평호에게 새로 시작하라는 의미의 여권을 받고, 걸어나가며 총성이 울린다. 난 이 결말이 유정이 남아 있는 첩자들을 살해하고 "진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희망을 전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중에서 유정은 유일하게 희망을 상징한다. 비록 첩자이지만 박평호와 다르게 한국 사회의 저항 정신과 자유를 향한 노력을 만나며 점차 변해나가고, 심지어 그들에게 감화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새로운 삶을 얻게 되고 자신의 과거를 청산한( 그렇게 느껴지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서, 나는 감독이 차가운 결말 속 한 줄기의 희망을 그려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실제 있는 역사적 사건을 이정재 감독만의 방식으로 훌륭하게 이용하며 동시에 스파이물의 쾌감까지 놓치지 않은 수작이다.
작중 인물들이 끊임없이 배신하고 추적하며 동시에 추적당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이 영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동시에, 가벼운 시선이 아닌 무거운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본 이 영화는 끝난 이후에도 관객에게 여운과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 영화가 이정재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이기도 하다.
올 여름 개봉하는 빅4 중 가장 강력 추천하는 영화이니, 액션을 선호하는 관객과 스토리를 선호하는 관객 모두에게 이 영화를 꼭 권하고 싶다.
한줄 평: 자기만의 방식으로 어두운 역사를 재현한 훌륭한 데뷔작
추천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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