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즈 라이트이어' 초간단 리뷰
1. 나는 동심의 영역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 어릴 때부터 일요일 아침 8시30분에 SBS에서 방송하는 '디즈니 만화동산'보다 동시간대 MBC에서 방송하는 드라마 '짝'을 좋아했고 성룡과 홍금보, 유덕화, 장학우 등이 내 동심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아마도 내 동심은 그보다 아주 어릴 적에 '우뢰매: 전격 쓰리 작전'에서 끝났을지도 모르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는 '토이스토리' 프렌차이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거 결국 애들영화 아니냐"라며 1편과 2편은 OCN에서 보다가 3편부터는 그나마 극장에서 봤다. 이 프렌차이즈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3편의 엔딩은 대단히 멋있다고 생각했다. 앞의 이야기가 뭐가 됐건 3편의 마무리는 훌륭했다. 그러다가 4편이 나온 걸 보고 조금 기겁했다. 4편을 보고 나서는 "뭔가 할 말이 더 있긴 있었구나"라며 그럭저럭 잘 봤다(이전에 쓴 리뷰에서 나는 '토이 스토리4'를 '전편을 부정하는 성숙한 영화'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절대 '토이 스토리5'는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 '토이 스토리4'가 나오고 3년이 지났지만, 다행히 '토이 스토리5'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대신 '토이 스토리' 프렌차이즈의 캐릭터를 활용한 '버즈 라이트이어'가 등장했다. 애초에 이 프렌차이즈에 별 애정이 없던 입장에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저 "남들 다 보니깐 나도 한 번 볼까?"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체 이걸 왜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토이 스토리5'가 분장하고 나타난 느낌이다. 이것은 세간에 언급되는 '정치적 올바름(PC)'의 문제가 아니다. 정작 PC는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대신 영화 스스로 타겟층을 상실한 채 허둥지둥하는 꼴을 보는 게 불편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버즈 라이트이어'는 애들 보라고 만든건지, 어른 보라고 만든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 영화다.
3. '버즈 라이트이어'는 시작과 동시에 자막이 등장한다.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진 않지만, 대충 '이 영화는 앤디가 버즈를 좋아하게 된 계기를 만든 작품'이라는 내용이다. 6살 앤디가 이 영화를 보고 버즈에 빠져서 장난감을 사게 됐다는 이야기다. 대충 '토이 스토리' 1편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앤디는 6살쯤에 이 영화를 보고 버즈에 빠졌다. ...6살 어린이가? 이걸? 우리의 6살을 떠올려보자. 앞서 말한대로 그때쯤에 내가 본 영화는 '우뢰매'나 '별똥왕자' 시리즈다. 백번 양보해봤자 '영구와 땡칠이'다. 현재의 6살들도 기껏 보는 게 '뽀로로' 시리즈 정도다. 미국의 어린이들이 뭘 좋아했을지 생각해봐도 '스펀지밥'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다(미국의 어린이들은 그렇게 숭악한 걸 보고 자랐단 말인가). 어쨌든 현실의 6살들이 좋아한 영화나 애니 시리즈를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들이 눈에 띈다. 우선 ①이야기가 단순하고 ②주인공이 멋있다. 여기에 ③웃기거나 ④귀엽다. 마지막으로 ⑤캐릭터성이 강하다. 이 5가지 항목 중 최소 4개 이상은 만족해야 어린이들이 좋아할 여지가 생긴다.
4. '버즈 라이트이어'는 복잡한 이야기다. '인터스텔라'에서나 봤을 상대성 이론이 등장하고 주인공 버즈 라이트이어(크리스 에반스)의 심리는 복잡하다. 그는 끝에 가서 멋있어지긴 했지만, 그 전까지는 약간 비호감일 때도 있었다. 생각보다 그리 유머러스하지도 않다. 귀여운 건 로봇 고양이가 다했다. 캐릭터성은...그건 만족했다. 정리하자면 '버즈 라이트이어'는 주인공의 내면과 이야기 배경이 복잡하고 쓸데 없이 진지하다. 고양이라도 없었으면 '그래비티'보다 어두운 영화가 될 뻔했고 그나마 캐릭터성은 강하다. 다만 미래의 버즈는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서 이해하기가 어렵다. 여기에 미래의 버즈와 현재를 동일시할 수 있다면 버즈 라이트이어는 상당한 비호감 캐릭터가 돼버린다. ...대체 앤디는 이런 게 어디가 좋았던 것일까?
5. '앤디가 좋아한 영화'라는 설정을 빼보자. 설정에 매몰돼서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 그리고 '토이 스토리'에 열광한 아이들은 이제 앤디 또래의 어른이 됐다. '버즈 라이트이어'를 보는 어른들은 '인터스텔라'를 보고 자란 세대들이다. 상대성 이론이 등장할 때 이미 "아 그렇구나"라고 이해했을 것이다. 상대성 이론이 개입한 만큼 '버즈 라이트이어'는 이야기가 무겁다. 임무에 실패한 버즈의 고뇌부터 그 외로움까지 영화는 적나라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묵직한 서사와 달리 디자인은 혼란스럽다. 미래의 버즈가 조종하는 로봇이나 버즈의 우주복, 그리고 우주선 디자인 등은 앤디가 좋아할만하다. 그러나 우주괴물이나 촉수는 애들 자는데 벽장 안에서 튀어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디자인이다. 나름 어둡고 무서운 디자인을 배치했지만, 거기에 버즈와 로봇의 유치한 디자인이 어우러지면서 "대체 이걸 누가 보라고 이렇게 디자인을 한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6. 혹자는 "'토이 스토리'를 보고 자란 어른들 보라고 만든 영화 아니냐"라고 답할 수 있다. '토이 스토리'를 보고 자란 어른들이 이런 이야기를 원했을까? 앤디와 동일시돼서 장난감들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어른들이? 이미 버즈 라이트이어 캐릭터를 만난 순간 직장생활에 스트레스받던 어른은 사라지고 앤디와 동시대를 산 동심만 남은 어른들이? 이걸 원했을까? 사내아이가 캐릭터 완구를 살 때 마음가짐은 간단하다. 멋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버즈 라이트이어'의 주인공 버즈도 멋있어야 한다. 확신할 수 있는 건 영화 내내 보여준 버즈의 고뇌와 좌절, 외로움, 갈등을 후반부의 '멋짐'으로 상쇄하기에는 그 '멋짐'이 부족하다. 적어도 각성한 마블 슈퍼히어로만큼은 멋있고 강하고 카타르시스를 줘야 하지 않겠는가? '버즈 라이트이어'는 그게 부족하다.
7. 결론: '버즈 라이트이어'는 마치 '토이 스토리5'처럼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할 영화다. 졸지에 앤디는 자신의 이상한 취향이 들켜버렸고 어른들은 버즈 캐릭터에 대한 매력을 잃어버렸다. 이 영화를 기획하고 만든 사람들도 이걸 누구 보라고 만든건지 잘 모르는 눈치다. 혹시 앤디 세대의 어린이들과 '토이 스토리'를 보고 자란 어른 모두를 만족시킬 생각이었다면,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추신1) 동성결혼 캐릭터에 대해 정말 불만은 없는데, 6살 앤디가 저 장면을 어떻게 이해했을지 궁금하다. ...역시...오은영 박사님 타임인가?
추신2) 앤디의 이상한 취향에 대해 존중해주고 싶기도 하다. 나도 어린 시절에 '천장지구'를 보고 유덕화가 그렇게 멋있어보였으니 말이다.
추천인 8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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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시는 분인가봐여 리뷰 처음 읽었는데 글을 잘쓰셔서 그런지 술술 잘 읽었습니다. 특히 이부분 ['버즈 라이트이어' 애들 보라고 만든건지, 어른 보라고 만든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 영화] 많이 공감합니다 몇번을 보았지만 차라리 포지셔닝을 완전히 애들을 위한 영화가 더 좋았지 않았을까하고 영화보고도 느꼈네요
앤디의 이상한 취향 (심연,해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