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장문]헤어질 결심 익무시사gv+개봉후2회차 리뷰

[헤어질 결심]
산에서 물꼬를 튼 사랑은, ‘미결’인 상태로 바다로 던져진다.
그 사이의 청록과 빨강.
추측과 논리 비약으로 떡칠된 리뷰입니다.
혹시 읽으시다가 얘는 뭔 소리 하는거야 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정상입니다-
- 해준과 서래
해준은 어떤 사람일까요. 우리가 보아 왔던 형사 캐릭터와는 다르게 깔끔하고 젠틀하고, 누구 말마따나 품위있습니다. 시민에게 봉사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항상 뛰기 위해 운동화를 신고 주머니가 아주 많이 달린 옷을 특별히 주문해서 입죠. 최연소 타이틀을 달고 있고, 어딜 가나 직업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아내와의 사이 또한 매우 좋아 보이는 인물입니다.
서래는 어떤가요. 남편의 폭력과 낙인 속에 살면서 복수를 갈망합니다. 외국에서 와서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사랑도 어느 정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나쁜 남자들만 만나 관계에 있어 방어적인 동시에 꽤나 당돌하죠. 파랑인지 녹색일지 모를 사람입니다. 겉으로 보나 안으로 보나.
해준과 서래의 본질은 정 반대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첫눈에 알아차렸을거에요. 글 말고 사진으로 보여달라는 말에 쿵. 도시락을 다 먹고 치우는 리듬이 동일한 것을 느끼며 어느 정도의 확신으로. 아마 서로가 mbti를 물었다면, 겹치는 부분이 꽤나 있을 것 같아요. 같은 차를 타고, 같은 기종의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과 같이.
웬만큼 가까워지기 전까지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켜볼 뿐이죠. 그게 도덕적이든 그렇지 않든. 그들이 가까워지는 바탕은 수사와 취조입니다. 상대방의 정보를 얻고, 눈을 맞추며, 상대방이 무얼 하는지 궁금해하고, 늘 자기 영역 안에 두고 싶어 해요. 상대방의 사진을 찍고, 목소리를 녹음해 듣습니다. 항상 상대방을 생각해요. 이런 수사의 요소들은 연애를 시작하기 전의 ‘썸’의 상태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해준과 서래는 형사와 용의자라는 거대한 핑계 뒤에 숨어서 서로 사랑을 키워나갑니다.
수사 과정에서의 행동들은 굉장히 섹슈얼하게 다가옵니다. [아가씨]의 목욕씬이 생각나는 구강상피세포 채취부터 kds 문신의 확인, 할퀴어진 흔적 촬영까지. 어쩌면, 해준은 이 시기에 정안과의 관계에서 매너리즘을 느끼고 흔히 말하는 ‘의무방어전’만을 치르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후반부 석류와 자라로 확인되는 부부 사이에서의 기대 불충족과 욕구불만의 해소 방향이 때마침 나타난 서래에게로 향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서래가 해준에게 주는 것은 ‘잠’입니다. 잠의 사전적 의미와 더 아래의 의미를 생각하면, 정안과는 잘 자지 못했고,(잠이 안 오니까 잠복을 하는 거라는 해준의 말과 함께) 서래와는 잘 잤습니다.
해준은 산과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의지할 만 하고,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죠.
서래는 바다와 같습니다. 마음의 크기가 너무 커 채워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이에요.
이렇게 단단했던 해준은, 서래라는 파도에 흔들립니다.
서래의 영역 안에서 해준은 안정을 찾고 숙면을 취합니다. 침대에서도, 차 안에서도.
바다 속의 해파리처럼.
그리고 바다에 빠진 산은 결국 ‘붕괴’합니다.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 불분명함
이포는 안정과 위험이 혼재하는 공간입니다. 원자력 발전소라는 위험과 절도가 가장 큰 사건이 되는 안정. 이포에는 늘 안개가 끼어 있습니다. 숙면을 취하려면 낮에 햇빛을 보라는 의사의 말에 정안은 안개 때문에 햇빛이 들지 않으니 곰팡이와 함께 산다고 말하며 핀잔을 줍니다. 수면에 있어 서래는 햇빛과 동일시됩니다. 안개는 산과 햇빛을 만나지 못하게 막는 존재죠.
안개는 본질을 흐리게 만들고 형태를 뚜렷하지 않게 합니다. 그에 대응하듯 해준은 강박적으로 눈에 인공눈물을 넣으며 정확한 사실을 갈구해요. 해준에게 사실이란 무엇입니까. 자신이 언제 사랑했는지 말해보라는 인물에게 사실이란 실체가 있는 것입니다. 입밖으로 뱉었거나. 적혀 있거나, 녹음되어 있거나. 그런 해준은 무의식적으로 서래의 마음을 부정했는지도 모릅니다. 실체가 없으니까. 서래는 불분명한 사람이니까. 옷의 색깔 조차도 파랑인지 초록인지 청록인지 특정할 수 없으니까. [헤어질 결심]은 불분명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하게 이것은 이것이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박찬욱 감독님의 저서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상업영화의 90퍼센트는 대사량을 절반으로 줄여도 충분히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거니와, 오히려 그렇게 했을 때 예술적으로 훨씬 우수해지리라고 나는 믿는다. (중략) 극에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한다면 사랑에 빠진 사람 특유의 행동과 표정을 통해 그것을 보여주어야지,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식의 대사로 해결하려 들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나”
이번 영화 또한 이런 생각과 일치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한번도 뱉어지지 않지만, 둘의 행동과 표정은 그 이상을 말해주고 있죠. 번역기를 통해 걸러져서 전달되는 대사. 듣는 사람이 그 전의 표정과 행동을 끌어와 이어 붙여야 하는 번거로운 작업을 강제하는 이유 또한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요.
서래는 해준을 찾아 이포에 왔고, 그를 위해 피를 닦아냈으며, 외조부의 산을 함께 올랐으며, 유골을 뿌리는 행위 조차도 해준에게 위임합니다. 두사람은 안개 가운데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요. 안타깝게도, 사랑했던 둘이지만 그 속도는 달랐던 모양입니다
해준이 말하는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거야”
라는 말은 곧 서래가 말하는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 했을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다”
와 같은 말로 들리네요.
- 본심의 색깔
해준은 붉은 빛을 따라다닙니다. 호미산에서 앞서가는 서래의 뒤에는 붉은 led가 빛납니다. 철썩이가 심어 놓은 위치추적기는 붉은색으로 서래의 위치를 알려줍니다. 기도수의 유서는 붉은 봉투에 담겨져 있으며, 잠재적 위험이라고 묘사되는 이포 원자력발전소가 주 무대인 드라마의 이름은 붉은** 입니다. 여기서 확장하여, [헤어질 결심]에서 붉은색은 서래의 혼란과 불안, 나아가 죽음을 암시합니다. 이와 반대되는 색은 산의 녹색과 바다의 청색을 합친 청록색입니다. 청록색은 둘의 합일과 안정을 나타냅니다.
기도수는 붉은 옷을 입고 죽었습니다. 죽이는 서래도 붉은 옷을 입습니다. 철썩에게 폭력을 당해 얼굴이 말이 아닐 때도, 휴대폰을 깊은 바다에 던져버리라는 해준의 녹음된 음성을 들을 때도 붉은 옷을 입습니다.
평소에는 어떤가요. 청록 혹은 짙은 네이비색으로 보이는 코트를 자주 입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붉은 이너를 착용합니다.(이는 푸른 상의와 붉은 하의와 같은 구조입니다.) 제일 처음 해준을 만날 때도 푸른 아우터에 붉은 이너, 취조 받을 때에도 푸른 상의에 붉은 하의, 해준의 집에 방문하여 재워 줄 때에도 푸른 상의에 붉은 하의를 입었죠. 이 의상의 구조 자체가 서래의 내면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너(하의)는 ‘본심’을 나타내고, 아우터(상의)는 서래의 ‘보여지기 원하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속은 혼란스럽고 불안하지만, 겉으로는 안정적이고 차분한 상태인 것 처럼 보이고 싶어하죠.
서래의 휴대폰 또한 붉은색 아이폰이지만 청록색 케이스를 끼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청록 아우터에 붉은 이너를 입는 등장인물이 한명 더 나옵니다. 이주임.
끼워맞추자면, 겉으로는 불륜 상대방의 배우자에게 차분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만 그 속은 매우 불안한 상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해준과 정안 부부에게 각각의 불륜 상대가 대칭적으로 같은 의상을 입는 것이 흥미롭네요.
어머니와 외조부의 유골이 들어 있는 유골함은 빨간 보자기로 싸여져 있고, 그 안의 펜타닐은 청록색입니다. 가장 죽음에 가까운 펜타닐이 왜 청록색일까. 아마도 모녀 모두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더 편안해지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안정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청록 그 자체인 물체이죠.
이런 서래가 해준을 위해 두번째 남편의 피를 닦아내는 모습이 다르게 보입니다. 청록색의 수영장에 가득 찬 붉은 진심을 모두 빼버리고, 붉은 피에 물든 청록색 원피스를 태워버리는 행동이 영화의 결말을 암시하고 있다고 봐도 될까요?
해준의 상징색은 검은색입니다. 검은색 정장과 신발을 신고, 검은색 아웃도어 의류를 입고, 사랑한다는 말 조차 뱉지 못하는 극한으로 본심을 숨기려는 사람입니다. 속옷의 색들은 검지 않고 회색류였던 걸 생각하면 그 내면은 훨씬 여린 사람일거라고 봐요.
엔딩에서의 서래는 푸른 색인지 녹색인지 모를 코트를 입었습니다. 붉은 색인지 검은 색인지 모를 셔츠를 입었습니다.
겉으로는 차분하게 구덩이를 파고 있지만, 이미 너무 크게 스며들어버린 해준을 뒤로하고 떠나는 것은 많이 힘겨웠나봅니다.
- 영원한 사랑
서래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가. 서래는 왜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하였는가.
“미결사건이 되면 벽에 사진을 붙여놓고 바라봅니다. 계속 생각해요”
“내가 미결사건이 되면 당신이 나를 평생 바라볼 거라 생각했어요”
서래는 해준의 사랑을 평생토록 가져가기 위해 스스로가 미결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짧은 순간 어긋나버린 사랑의 타이밍은 점점 겉잡을 수 없이 커져 생과 사를 결정짓는 해변에서도 둘을 비켜가요. 영화가 끝나고 안개가 들려오는 와중에도 해준이 해변이 아니라 바위산을 먼저 들여다 봤다면 그 끝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나 빨리 와줘. 여기 해 지면 아무것도 안보인다고” 잠을 자는 데 필요했던 햇빛. 햇빛을 대신했던 서래가 태양과 함께 파도에 잠깁니다.
서래는 스스로 깊은 바다에 몸을 던졌습니다. 무너지고 깨어지는, ‘붕괴’하는 모래산에 폭 안기는 듯 하죠. 해준은 그런 서래를 찾기 위해 파도를 헤집습니다. 바다가 산에 안겼고, 산은 바다 품으로 걸어갔으며, 그렇게 둘은 사랑했어요.
박찬욱의 멜로, 그 안에서도 ‘영원한 사랑’을 말하는 방식에서 저는 심장을 부여잡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애초부터 성립되지 않는 관계였습니다. 이미 둘의 약지에는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고, 형사와 용의자라는 특수성, [아가씨]에서 보여주었던 하녀와 아가씨라는 비슷한 구조의 관계가 선행되었지만, 둘의 끝이 해피엔딩으로 끝났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헤어질 결심]의 결말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 것이 무리는 아니겠죠. 위에도 언급했듯, 수사와 사랑을 동일한 속성으로 묶어버리며 지금 해준이 하는 행동이 수사를 위한 것인지, 사랑을 위한 것인지 해준도 관객도 헷갈리게 만듭니다.
탕웨이라는 배우의 캐스팅은 정말 신의 한수를 넘어 이 영화의 존재 이유라고까지 말하고 싶습니다. 박해일 배우에게는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해준의 사랑은 서래를 더 빛나게 하기 위함라고까지 느껴졌으니까요. 해준이라는 캐릭터 뿐만 아니라, 모든 인물들이 서래를 위해 짜여져 있는 듯 합니다. 아, 캐스팅이라는 표현 보다는, 탕웨이와 작업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쓴 거면 헤어질 결심의 뮤즈, 모티프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초췌한 듯 하면서도 해준의 자켓에서 립밤을 꺼내 바르는 모습은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어요.
한참 칸이 진행중일 때 헤어질 결심의 엄청난 평점과 함께 탕웨이의 여우주연상 이야기가 들려올 때, 제 어린 생각은 ‘한국 영화에서 한국어 발음도 유창하지 못한 배우가 여우주연상?’이라는 망언을 뱉을 뻔,,, 하게 만들었습니다. 오히려 능숙하지 못한 발음. 그 이상의 효과를 보여주는 억양. 특수성이 가져오는 번역체의 간극까지. 탕웨이가 아닌 서래는 정말 상상이 안 됩니다. 지구상에서 한 명 밖에 할 수 없는 캐릭터인 듯 합니다.
영화는 해준과 서래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이는 비단 둘 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해준-서래의 구조는 산오-가인, 이주임-정안의 커플의 구조와도 유사합니다. 인물들은 모두 대칭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파트너 형사 둘도 말이죠. 이렇게 다양한 커플들을 노출시킴으로서 박찬욱 감독님은 이 영화가 매우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닐까요. 본인 필모그래피 중 가장 대중적인 영화라는 코멘트로 미루어 보았을 때, 표현의 수위나 주제에 관한 이야기도 물론 포함되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가장 대중적이라는 의미 또한 담겨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가장 보편적이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을 수 있으니까요.
산오와 해준이 옥상에서 나누는 대화들은 마치 거울을 보고 하는 말 같아서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사실상 산오는 또 다른 해준이고, 다른 버전의 결말을 미리 보여준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네요.
이렇게까지 여운이 깊게 남을 줄은 몰랐습니다. 해준과 서래의 눈빛, 표정, 얼굴 근육 하나와 손짓 하나에 집중하게 하기 위해 배제해버린, 폭력과 섹스로 대표되는 박찬욱의 자극이 매우 그리울 줄 알았지만, 오히려 담담한 맛이 훨씬 좋았네요.
더불어, 좋은 영화 일찍 볼 수 있게 해 준 익무에게도 항상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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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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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읽고 갑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