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헤어질 결심'과 지독한 붕괴
아까 헤어질 결심 리뷰를 쓰면서 빠뜨린 생각이 몇가지 있어서...
- 저는 적어도 어른이 됐으면, 구어체 회화에서 '존X' 또는 '씨X' 등의 흔하디 흔한 극단적 수사 없이도, 얼마든지 치명적이고 강렬한 표현을 할 수 있어야 '멋'이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찬욱은 그걸 해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여러 치명적인 사랑들의 강렬한 충동 투성이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슴슴하다고?" 하는 반응에 좀 갸우뚱 합니다. 우리가 너무 갖가지 핵불맛에 길들여져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네요. 영화의 키워드를 인용하자면, 우리는 그렇고 그런 '현대인' 입니다.
- 박해일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치명적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다들 사랑에 대한 모종의 중대 결심, 그리고 강렬한 욕구의 분출을 수행합니다. 탕웨이에게 사랑은 죽음과 곧바로 등가 교환되는 것입니다. 박정민에게 죽음은 사랑에 대한 인정욕구일 뿐입니다. 방사능이 생식세포를 공격하는 장소인 원전에서 근무하는 이정현은 지독히도 석류나 자라 등이 상징하는 생명력에 깊은 관심이 있습니다. 여기서 타나토스와 에로스가 완전히 교차합니다. 사랑을 죽음에 대한 의지, 즉 타나토스로써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으로써 사랑을 증명하려 하고, 사랑을 삶과 생에 대한 의지, 즉 에로스로써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욕으로서 사랑을 증명하려 합니다. 그래서 타나토스를 믿는 사람들은 다 죽고, 에로스를 믿는 사람들은 다 제 살 길을 찾아 갑니다. 그리고 벽에 피는 곰팡이가 번지 듯이, 치명적 사랑의 포자는 어느새 박해일에게도 깊이 묻어 있습니다.
- 이 영화는 '붕괴된 남자의 이야기'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용의자와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람의 범행을 은폐하려는 형사입니다. 수십개의 주머니 속에서, 온갖 청결한 물건들을 구비해 놓지만, 정작 범죄의 증거들은 지극히 오염시킵니다. 종국적으로는 자신의 가정까지도 붕괴됩니다. 형사로서도 붕괴되어 있고, 사랑의 실패자로서도 붕괴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영화가 끝난 이후로도 박해일은 지극히 붕괴된 채, 지독한 불면에 시달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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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영화를 이해하는 스펙트럼이 더 넓어졌네요:)
감사합니다 잘읽었어요ㅎㅎ
감사합니다. 사실 영화 본 뒤에 리뷰 글을 쓰면서 제 머릿속이 정리되었습니다! ㅋㅋ
>> 와 ,, 진짜 분석력 댑악 이마를 탁 치고 갑니다 ,,, 리스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