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처절한 패배의 기록, <남한산성>
5년 전에 나온 영화를 이제야 봤습니다. 학교 한국사 시간에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김상헌과 최명길의 대담 장면으로 볼 때마다 언젠간 꼭 봐야지 마음먹었던 영화인데, 오늘 큰맘먹고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걸작이더군요. 왓챠피디아나 네이버 평점이나 평론가 평점도 그렇게 막 높은 편은 아니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역시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가봅니다. 올해 처음 본 영화 중에선 <헤어질 결심>이후로 가장 좋았던 영화인 것 같네요.
<남한산성>은 1637년 조선과 청 사이에 있었던, 국민 대부분이 알고 있을 패전의 역사를 다룹니다. 스포일러가 있다고 미리 달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오징어 게임>으로 전 세계에서 연출력을 인정받은 황동혁 감독의 2017년작입니다.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이 원작입니다. 개인적으로 황동혁 감독 필모그래피의 정점은 오징어 게임이 아니라 남한산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자호란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1636년 12월, 인조박해일를 둘러싼 대신들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고, 최명길이병헌은 전세가 불리하니 항복하고 적과 화친을 맺자는 의견을 꺼내고, 김상헌김윤석은 죽기를 각오하고 맞서 싸우자는 의견을 꺼내게 됩니다.
이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는 아주 많지만, 일단 연기부터 말씀드리자면 완벽합니다. 주연인 이병헌과 김윤석은 그들이 평생동안 보여준 멋진 연기들을 선보이고, 인조 역의 박해일은 그의 필모그래피 최고의 연기를 선보입니다. 맞서야 한다와 항복해야 한다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조를 현실적으로 표현해냅니다. 전장에서 적들을 이끄는 이시백 역 박희순과 발버둥을 치는 서날쇠 역의 고수 역시 믿고 보는 배우들답게 안정된 연기를 합니다. 또한 송영창, 진선규, 김법래 등등 유명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고 실제 캐릭터처럼 느껴집니다.
두 번째는 음악입니다. 영화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 류이치 사카모토는 전작인 <레버넌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웅장한 현악 사운드로 관객을 압도합니다. 영화의 가장 강렬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북문전투 장면에서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이 장면을 빚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감정을 폭발시키는 음악을 보여줍니다. 이 장면에서 김류와 이시백이 벌이는 언쟁 또한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https://youtu.be/sLz9q-nRAHc
그 이외에도 마지막 삼전도의 굴욕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 또한 관객의 비통함을 한층 끌어올립니다.
https://youtu.be/wqR4PYWa6OY
이번에 <헤어질 결심>촬영감독을 맡으셔서 최고의 촬영을 선보이신 김지용 감독은 남한산성에서도 영화를 아름답게 담습니다.
남한산성은 강렬한 전투씬들도 좋지만 최명길과 김상헌이 펼치는 압도적인 대담 장면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영화는 그런 방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장면에서 관객은 내가 인조였다면 어떻게 했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인조가 짓는 곤란한 표정이 어느 순간 나의 표정이 됩니다. 세 배우의 빛나는 연기가 완성시킨 장면이죠.
원작과의 몇몇 차이점은 있지만, 원작의 대사들을 거의 그대로 차용했다 보니 대사가 주는 무게감이 엄청납니다.
익무분들께서 이 영화를 보셨을진 모르겠지만, 아마 많은 분들이 보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안 보신 분들께 말씀드리자면, 이 영화 너무 좋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저평가받는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사의 무게와 영화의 무게를 짊어지는 기분이 제법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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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이죠. 청나라 벼슬아치 된 조우진이, "조선에서 노비는 사람이 아니오."라고 했던 대사가 인상적이었어요.
마지막 그 삼전도 장면에서 울컥하면서 눈물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ㅠㅠ
와 이 영화 완전 명작이죠 😭 왜 잘 안 됐나 했더니 범죄도시랑 붙었었군요........ 에구...
명작이죠
서늘한 건조함이 깊이있게 묻어있죠
오징어게임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증거
기존 사극영화들과는 다르게 묵직하면서도 정공법을 사용한 연출이 진짜 좋았죠 정말 간만에 만난 엄청난 사극물이였는데 손익 못넘어서 아쉬운..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