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헤어질 결심 익무 단관 시사회 리뷰 : 눈빛으로서 해결하고자하는 사랑
1. 박찬욱 감독님의 16년만의 청불이 아닌, 6년만의 신작 <헤어질 결심>을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작품은 이동진 평론가의 파이아키아에서 감독님이 말씀하셨던 '예술영화같은 상업영화'보다는 '상업영화같은 예술영화'에 가깝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론 좋은 의미입니다. 이전작들과는 다른 다소 절제된 스타일, 가벼운 유머, 고전적인 서사로 진입 장벽을 낮춘 건 맞습니다만, 다층적인 플롯과 밀도 높은 상징들을 생각하면 이야말로 아트 영화가 아닐 수 있나 싶습니다.
2. 반복해서 헤어짐을 자처해야 살 수 있던 여자와 살아오면서 헤어질 결심따위는 해볼 생각조차 못 하는 남자의 안개같은 사랑 이야기라고 하면 너무 상투적일까요. 사실 흔히 아는 이야기이긴 합니다. 팜므파탈 여자에 휘둘리는 정직하고 순한 남자, 그리고 어떤 파국. 하지만 이 고전적인 이야기를 재건하는 박찬욱 감독님의 터치는 굉장합니다. 손을 대면 분자단위가 되어 흐트러져버릴 것만 같은 사랑을 안개로 감싸고, 관객을 안개 속으로 잡아 당깁니다. 눈 앞의 안개는 헤집어져도 시야는 확보되지 않습니다. 청록빛을 따라 안개 중심으로 겨우내 들어가면, 미결된 채 남은 포말만이 관객의 눈과 코와 귀를 채우죠. 저는 아가씨에서 후지와라 백작이 뱉은 푸른 연기를 마신 기분이었달까요. 죽지는 않았습니다만! 막막하고 먹먹한데, 아프기까지 하네요.
3. 산과 바다, 물과 안개, 해파리와 청록, 미결과 해결 등 여러 상징들이 극에 나오지만, 저는 눈빛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하고 싶어요. 결과적으로는 같은 부류임을 그들도 관객도 알아채지만, 애초에 서래와 해준은 결이 굉장히 다르죠. 어디에서 기인한 불면증인지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동태눈깔(해준의 성격 상 그렇게나 관리해도)스러운 해준의 눈빛은 서래를 만나고 변해갑니다. 서래의 눈빛은 어딘가 의뭉스럽지만 빛이 탁하지는 않아요. 인식과 인식당함, 형사와 피의자라는 관계 속에서 멜로는 피어납니다. 이런 얼굴들이 창에 비치거나 카메라에 담기거나 모니터 화면으로 송출되거나하는 방식으로 영화는 눈빛을 변주합니다.
4. 눈빛의 변주 속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는 호미산 씬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엔딩보다 더 애정하는 씬입니다. 서래는 제 3의 눈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강렬한 빛, 헤드 랜턴을 쓰고 해준을 바라봅니다. 자라 도난 현장에서 경광등 하나에도 예민하던 해준은 눈 깜빡하지 않고 서래의 눈빛을 쬡니다. 미결로 남고 싶어 이포에 왔다고,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라고, 고백을 다시 돌려주고 들려주는 그 눈빛. 이전에는 서래의 입술이 닿은 립밤을 피하는 시늉을 하지만, 이번에는 받아냅니다. 하지만 해준에게는 미결이란 없습니다. 결단을 하고 해결을 해야죠. 그런 해결할 결심으로서 이 관계의 끝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았나 합니다. 그렇죠, 안개는 들추면 사라져요. 많은 분들이 얘기해주시는 절벽으로 밀지는 않을까, 키스로 독살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저도 했답니다. 이런 농밀한 서스펜스 너무 좋아요. 토드 헤인즈 감독의 캐롤에 견줄만한 눈빛의 또 다른 대명사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호미산 씬 때문이라도 저는 이 작품을 몇번 더 볼 것 같습니다.
5. 각종 전자기기를 활용한 점은 좀 놀라웠습니다. 고전적인 이야기, 우아한 인물들과 대비되는 현대적인 매체를 형식적인 측면에서만 내세우는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 나아가 요즘 영화같은 것(?)을 만들고자 하는 도전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감독님이 관객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할까 고민하는 게 영화 내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저는 애플을 쓰지 않지만, 주변 다른 관객들의 시리가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경험은 또 신선했네요. 또 인식하려고 바라보는 사물과 그 사물의 시점숏도 연출을 다채롭게 하는 굉장히 재밌는 요소가 아닐까 합니다. 전자기기가 아닌 다른 사물(시체, 생선 등)에서도 인식이라는 관념에 결을 같이하고 있지요. 작년 cjenm 제작의 연애 빠진 로맨스에서 데이트 어플을 형식적으로 잘 활용한 게 떠올랐고, cj 트렌드인가?하면서 혼자 조금 웃었습니다.
6. 이번 단관 시사로 2회차를 했는데, 1회차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사실 이건 장점보다는 단점에 가까운 표현이에요. 서래의 한국어 대사가 다소 잘 안 들렸던 점, 발음의 문제를 떠나 생소한 단어가 종종 나왔던 점에서 더 그랬었고, 스토리 라인은 평범한데 플롯이 저에게는 약간 버거웠던 점, 그래서 인물의 감정선을 잘 못 따라갔다는 점에서 1회차 때는 이거 뭐야, 좀 아리송한데? 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연극톤의 극보다는 리얼리즘을 취하는 극이 더 취향에 맞는 것도 있었고요. 하지만 박찬욱 감독님의 팬은 포기하지 않죠. 그냥 아리송하기만 했다면 금세 풀이 죽어 다회차는 꿈도 안 꿨을텐데, 감독님 특유의 유머, 음악, 미쟝센, 연출은 힘을 빼도 박찬욱이었으니까요. 근데 언제나 대중성을 고려하시는 감독님이지만, 대중에게 이 작품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올드보이의 에너지, 박쥐의 관능, 스토커의 드라마, 아가씨의 멜로가 절제라는 덕목으로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어우러진 이번 <헤어질 결심>, 저부터 입소문 내야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관람 기회 주신 익무와 다크맨님에게도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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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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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가 안 들리는 부분들이...처음 들었을 때 뭐지? 싶은 생소한 표현, 단어들이 나와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2회차하면 그 부분이 커버 될 것 같더라고요. 좋은 후기 잘 봤습니다.
극장따라 차이가 있나봐요
대사가 잘들린다는 글도 있으니 ㅎㅎ
글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