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건: 매버릭'- 우아하고 아름다운 추억의 완벽한 소환 (아이맥스 시사회 후기)
(딱히 구체적이진 않습니다만 미리니름이 들어가 있을 지도 모르니 유의해 주십시오)
<탑건> 개봉 시기가 중학생 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전 사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도 못했어요. 극장 나들이는 큰 맘 먹고 시도해야 가능했던 '행사'였던 시절이고, 그때 많이들 그랬듯이 저 또한 친구네 집에서 소위 'B자' 비디오로 봤습니다. 제 마음에 꽂힌 여느 영화들처럼 반복해서 본 영화는 아니었고 훗날 케이블 방영할 때 두어번 더 본게 전부일 뿐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탑건>은 굉장히 강하게 뇌리에 박혀있는 작품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의 광고부터 TV 프로그램 등 수많은 매체에서 그 감성을 복제해서 뿌려댔거든요. 당시의 국제정세에 기대어 '무책임한 영화'라는 혹평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Take my breath away'는 사방에서 흘러나오다 못해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고, 멋진 남성과 근사한 여성과 스피디하고 감각적인 영상은 트렌드의 일부가 되어 상당기간 주위를 장식했죠. 이것은 <아이언 이글>을 위시한 많은 아류들이 도달하지 못한 <탑건>만의 경지였습니다.
근 30여년을 넘어 다시 돌아온 <탑건: 매버릭>에는 놀랄 정도로 전작의 감흥이 투사되어 있습니다. 전작을 보며 인상적이었다 싶은 장면은 모조리 반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이걸 지겹게 또 반복하나?라는 느낌이 아니라 '아 맞아, 이게 이렇게 좋았지!'라는 그때 그 시절 감상에 아주 멋지게 다시 불을 붙이는 최고의 서비스랄까. 마치 '오마쥬라는 건 이렇게 하는 거다!'라고 선언하는 듯 합니다.
문화적 현상이었던 전작에서 딱히 '특별한 메시지'를 느낀 기억은 없습니다만, 이제 나이든 티가 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때 그 매력을 간직한 채 멋지게 늙어가고 있는 톰 크루즈의 현실 행보와 주인공 매버릭의 입장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보니 그것 자체로 메시지가 됩니다. 매버릭은 남다른 전과와 수많은 공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지껏 비행기를 모는 대령 신분에 머무르고 있지만, 그것은 그가 '생각하지 않고 일단 행하는 자유'에 뿌리를 둔 사람이며 그가 넘고자 하는 한계는 지위나 계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원전에서 품고 있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고, 오히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보니 그게 눈에 들어옵니다. 그 가치가 다소 가벼워 보일 만큼 젊디 젊었던 그리운 얼굴들이 원숙하고 중후한 모습으로 돌아온 덕분에 그 감흥은 사뭇 남다릅니다.
매버릭은 여전히 전투기를 나란히 두고 오토바이로 질주하지만 그 결은 조금 달라져 이제는 마치 다음 세대를 보며 '잘해봐!'를 외치는 듯 하고, 선남선녀의 열에 달뜬 베드신은 몸을 맞대고 차분하게 마음을 나누는 장면이 되었습니다. 전작에서 피트와 줄곧 대립각을 만들었던 라이벌 아이스맨은 이미 제독의 자리에까지 오른 뒤 노쇠하고 중병을 얻어 곧 죽을 날을 기다리는 사람이지만 자신의 위치와 힘을 이용해서 주인공을 백업하는 것을 넘어 결정적인 순간에 짧고 굵게 조언합니다. 배우의 현재 상태를 반영해서 캐릭터를 설정한 덕분에 안쓰러우면서도 애틋한 마음은 배가 되며, 이것은 절친한 동료이자 라이벌을 떠나보내는 장면에서 조용하지만 폭발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인상적이었던 바의 노래 장면이나 해변에서의 스포츠 씬은 '다음 세대를 통해 반복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듯한 관점으로 넘어왔습니다.
영화는 음악부터 미장센까지 두루 원전을 녹여내고 있는데 자칫 곰팡내가 나기 십상입니다만, <탑건: 매버릭>은 원전에 대한 최대한의 존중과 배려를 더해 이 추억팔이를 실로 멋지고도 아름답게 해냅니다. 과거 콘텐츠의 성공에 기대어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다시금 그 영광을 재현하려는 시도는 무수히 있어왔으나, <탑건: 매버릭>만한 결과물은 흔치 않습니다. (굳이 거론하자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정도가 생각나는군요) 삼십수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엄청나게 발전한 시각화의 기술에 힘입어 앞서 얘기했던 '멋진 남성과 근사한 여성과 스피디하고 감각적인 영상(적어놓고보니 세상에 이렇게 뻔할 수가)'을 다시금 펼쳐내는데 황홀경이 따로 없어요. <탑건: 매버릭>은 거기에 동중'정'이라는 시각적 화법을 하나 추가했는데, 영화 초반 속도의 한계를 넘어가는 장면의 멈춘 듯한 아름다움은 실로 놀랍습니다. 아이맥스에 굳이 연연하지 않는 저조차도 이 장면은 반드시 큰 화면으로 봐야만 한다고 권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탑건: 매버릭>은 리메이크니 리부트니 몇십년만의 속편이니 하는 기획이 난무하는 요즘같은 때에 가히 모범사례라고 해도 좋을 만한 근사한 작품입니다. 추억을 반추하되 추레하지 않고 세월이 품은 을씨년스러움마저 사랑스러운 이 영화의 매력은, 톰 크루즈의 얼굴에서 묻어나오는 세월의 흔적이 안쓰럽다기보다는 뿌듯한 관록으로 느껴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항공모함의 갑판에서 전투기가 뜨고 내리고 갑판요원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장면일 뿐인데도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로 멋있었던 원전의 오프닝을 음악까지 그대로 오마쥬한 시퀀스가 나오다가 'Danger Zone'이 터져나올 지점부터 전 완전히 함락되어 버렸습니다. (사족입니다만 이 노래는 바퀴달린 걸 운용할 때는 절대 가까이 해선 안되는 곡입니다) 오늘은 아무래도 오래 묻어놨던 <탑건>의 사운드트랙을 꺼내들어야 하는 날인 모양입니다.
좋은 자리에 초대해 주신 익스트림무비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영화를 만나는 것은 늘 즐겁지만, 빛이 바래지 않은 추억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은 흔한 경험이 아니거든요. 정말 기쁜 시간이었어요.
- EST였어요.
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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