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어> 후기 – 올드하지 않으면서도 묘한 세련됨으로 다가오는
5월 초에 <큐어> GV가 있었죠. 영화 그리고 감독님과의 대화, 잘 보고 왔습니다. 나눔 해주신 서울우유님께 감사드립니다.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에게 소구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번에 극장에서 본 <큐어>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올드하지 않고 묘한 세련됨으로 다가왔습니다. 무려 25년여 전 영화가 마음에 잘 안착했다는 것만으로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한 부류는 건조하고 잔잔한데 자꾸 생각이 나는 영화입니다. <큐어>가 그렇습니다. 호러, 오컬트와 스릴러가 접합된 장르임에도 특유의 건조함과 일상적인 느낌이 영화적 재미를 배가합니다.
어떤 영화는 슬래셔 무비가 아님에도 살인 방법의 구체성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큐어>는 영화 전반적으로 살인의 과정은 짧게 그리고, 그 이후 결과를 바로 보여줍니다. 즉, 살인 그 자체에 대한 상세한 묘사로 공포감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좋았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일상의 공포감입니다. 일상의 질감과 살인의 질감을 동일하게 만들어서 언제나, 일상 도처에서 살인이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감을 부각합니다. 그러다보니 기존의 호러, 공포, 스릴러 영화와 다르게 느껴졌고, 더 좋았습니다.
<큐어>는 살인과정을 추적해 가는 과정 그 자체만을 그리고 있지 않습니다. 즉, 단순 추리형 영화가 아닙니다. 살인의 주체와 살인을 사주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눕니다. 질문하고 대답하고, 또 묻고 답하는 과정 속에서 은근한 긴장과 매력을 보여줍니다. 그 대화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에 있는 분노의 감정 혹은 모멸감 등등의 감정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보편적인 감정들의 반복적 노출을 통해 서사의 타당성을 점차 높여갑니다.
제가 주목한 부분은 공허감과 여백입니다. 꽉꽉 채워져 있지 않아서 은근한 맛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존재하는 공간은 일상적인 공간이며, 동시에 텅 비어있는 공간입니다. 마치 우리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간헐적으로 비어있는 공간 속에서의 대화와 행위들이 영화적 매력을 한껏 상승시킵니다. 그 비어있음을 관람객 각자의 생각과 추측으로 채울 수 있고, 캐릭터성을 이해할 수 있는 힌트로 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부분을, 어떤 하나의 방식으로 보지 말고 각자 나름대로 자유롭게 보라는, 감독님 나름의 의도이자 배려로 읽었습니다.
이외에도 묘한 날씨의 변화로 인한 색감의 변화 등등은 우연히 얻어 걸린 숏이라고 하셨는데요. 저는 의도하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구요, 오히려 촬영에서의 이런 우연과 변화로 영화가 영화적으로 더 풍성해진 느낌이라, 더 좋았습니다.
일상의 질감을 통한 은근한 공포감을 제대로 느끼고 왔습니다. <큐어>가 여름에 개봉한다고 하니, 극장에서 함께 즐겨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추천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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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인터뷰 들었는데, 촬영할 때 그때그때의 날씨가 상당히 중요했나 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