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ig heat (1953) 프리츠 랑의 느와르. 스포일러 있음.
느와르 쟝르 영화들 중, 이중배상, 선셋대로, 성공의 달콤한 향기, 말타의 매, 상하이에서 온 여인 등 넘사벽 걸작들을 제외하면, 약간 쌈마이틱한 재밌는 영화들이 많다.
걸작다운 완벽성과 균형감에 대한 생각을 버리면, 다양한 방식으로 폭주하는 영화들이 나온다.
이 영화 빅 히트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잔인한 장면들이 나오는 것 같다.
가령 남편이 자기 아내 얼굴에 끓는 커피를 들이부어 괴물같은 얼굴로 만든다든지, 폭발하여 불이 솟구치는 자동차 안에서 죽은 아내 시체를 끄집어내는 장면 등은, 필름 느와르가 가지는 암흑, 비정성, 잔인함 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아마 느와르 쟝르 영화들 중 가장 생생하게, 날것 그대로의 암흑을 드러내는 영화로
받아들여졌으리라.
이 영화의 셋팅은 별로 특이하지 않다. 범죄조직의 두목이 지배하는 도시가 무대다.
그는 도시를 바라보는 언덕에 대저택을 짓고 군림하며 산다. 이 두목에게 매수당한 경찰 간부들은 그를
돕는다. 그런데 어느날, 이 경찰간부들 중 하나가 자살한다.
원리원칙을 따지는 형사 데이브는 이 자살사건을 수사하도록 명령 받는다.
그는 집에서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다. 아이가 이제 곧 유치원에 들어가면 학비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평범한 가장이다.
데이브는 경찰간부, 의문의 사나이 등으로부터 수사를 중단하라는 협박을 받는다. 하지만 원리원칙을 지키는 형사가
거기 넘어갈 리 없다. 결국 그의 자동차에 누군가 폭탄을 설치한다. 하지만 그 폭탄에 죽은 것은 데이브가 아니라, 그의 아내다.
데이브 자동차에 장치된 폭탄이 터지는 것은 명장면이다. 그냥 자동차를 터뜨리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데이브가 아이 방에서 아이와 자상하게 놀아주고 있는데, 갑자기 창밖에서 굉장한 불이 번쩍 한다. 그리고 유리창이 흔들리는 굉음이 들려온다. 진짜 폭탄을 창밖에서 터뜨리는 것 같은 박력 있는 장면이다. 이게 뭔가 하고 관객들도 어리둥절하다. 무언가 퍼뜩 깨달은 데이브는,
지체없이 방 밖으로 달려간다. 아내가 방금 자동차를 타고 어딘가 다녀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데이브는 불타는 자동차 안에서 뻣뻣해진 아내를 끄집어낸다.
자동차가 터지는 장면을 직접 보여주지 않지만, 직접 보는 것보다도 더 충격적이고 생생한 느낌을 준다.
자, 지금까지 원리원칙 형사였다면, 이제 데이브는 필름 느와르의 전형적인 탐정이 된다.
차갑고 냉소적인 행동에 칼로 후벼파는 듯한 대사. 주먹 한번이면 될 것을 두대 때리고, 주먹 두번이면 될 것을
총을 한번 쏘는 탐정이 된다. 아내 원수를 갚는 것이 지상 최대 목적이 된다.
그는 비상한 머리로 사건의 핵심에 곧장 뛰어든다. 추리, 사건 조사 같은 거 필요 없다.
"부패한 경찰간부 -> 범죄조직 중간 보스 -> 범죄조직 두목" 이렇게 연결이 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뻔히 알 수 있다. 이 견고한 결합을 깨고 그들을 체포할 것이다.
하지만 일개 형사가 한 도시의 재력과 권력이 집중된 이 카르텔을 어떻게 깰 것인가? 다른 형사들이 그를 돕기는 커녕
방해만 하는데?
그는 암흑가 뒷골목을 늑대처럼 어슬렁거리며, 범죄조직 두목 중간보스들에게 어떤 균열이 생기기만을 기다린다.
여기저기 막 쑤시면서 끈질기게 기다리다가 보면, 무언가 그들을 흔드는 사건이 터질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작은
사건일지라도, 데이브는 그들을 파멸시킬 기회를 잡게 될 수도 있다.
10% 부족한 마릴린 먼로였던 글로리아 그레이엄이 팜므 파탈로 등장한다.
매혹적인 섹시미도 부족하고, 그렇다고 지성미 우아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필름 느와르의 여주인공으로
이름을 알린 사람이다. 글로리아 그레이엄은 범죄조직 중간보스 리 마빈의 아내다.
늘 냉혹하고 빈 틈 없는 조직 중간보스 리 마빈의 약점이 바로 이 바람기 많고 허영심 넘치는 아내다.
글로리아 그레이엄이 바람을 피우고 돈을 펑펑 써대는 것까지는 리 마빈이 참을 수 있었다.
원래 그런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글로리아 그레이엄이 자기를 파멸시키려는 형사 데이브를 유혹한 것만은
도저히 참지 못한다. 그래서 글로리아 그레이엄 아름다운 얼굴에 끓는 커피를 들이부어
추한 괴물같은 얼굴을 만들어 버린다.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나 보다. 리 마빈이 글로리아 그레이엄 얼굴에 끓는 커피를 들이부어 버리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하느님, 맙소사"하면서 경악하며 달려온다.
주인공 데이브의 입장에서 영화가 전개되지만, 사실 데이브는 이 영화 사건 해결에 기여하는 것이 생각 외로 작다.
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리 마빈과 글로리아 그레이엄 간의 애증 관계다. 글로리아 그레이엄은
얼굴 반쪽이 추하게 주름진 얼굴이 되어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숨어산다. 리 마빈을 파멸시키는 것은
데이브가 아니라, 아내 글로리아 그레이엄의 복수다.
글로리아 그레이엄은 리 마빈의 얼굴에 끓는 커피를 부음으로써 복수를 하고, 리 마빈은 고통 속에서
글로리아 그레이엄의 가슴에 총알을 박아넣는다.
데이브는 목표대로 사건을 해결했지만, 상황이 이런 식으로 종결된 것이 개운할 리 없다.
그는 글로리아 그레이엄이 괴물같은 얼굴로 헐떡거리며 서서히 죽어가는 그 곁을 지킨다.
결국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불행해진 영화다. 이 영화의 가장 충격적이고 유니크한 점은,
바람기 많고 허영심 많은 글로리아 그레이엄이
남편에 의해 한순간에 괴물이 되어 "아무도 자길 보아주지 않길 기원하면서 암흑 속에서 살"게 되는 장면이다.
그녀는 암흑 속에서 숨어살면서 남편에게 복수할 것만 꿈꾼다. 냉혹하고 뼛속까지 악한 남편 리 마빈도
속으로는 죄책감에 시달렸나 보다. 그토록 차갑고 냉정하던 그가, 눈앞에 괴물로 변해버린 아내가 나타나자,
바르르 떨며 무너진다.
리 마빈은 이 영화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의 존재감은 주연 글렌 포드를 넘어선다. 얼굴에 비정한 표정 한번만 지어도, 관객들의 등골이 서늘해지는 존재감을 과시한다. 리 마빈의 존재가 이 영화 성공에 기여한 바는 아주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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