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해적 : 바다로 간 산적> 리뷰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은 영리한 전략으로 성공을 거둔 해상 어드벤처 영화였다. <캐리비안의 해적>의 레퍼토리를 그대로 답습하면 쉽게 상할 것을 알고있기에 영화는 빈틈마다 유머를 빼곡히 집어넣었다. 유머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고, 배우의 연기력이 이를 받쳐주었기 때문에 괜찮은 기억으로 남았던 코미디 영화였다.
<해적 : 도깨비 깃발>은 전편의 성공공식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지적받았던 비판점을 일부 개선한 후속작이다. 액션의 비중은 늘어났고 플롯은 단순해졌으며 모험의 농도는 높아졌다. 시종 잔재미를 투척하며 작게나마 꾸준히 웃음을 벌어오는 솜씨는 망가지지 않았다. 초반부터 단숨에 이야기의 본진에 당도하는 전개방식은 신속알뜰코미디를 표방하는 영화의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이디어를 흩뿌리기만 할 뿐 하나의 시퀀스로 연장할 줄 모르는 형편없는 코미디들과 달리, (아예 그런 장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해적 2>는 개그를 맛깔나게 살리는 방법을 숙지하고 있다. 유머의 신선도를 오래 유지하는 비결은 액션이 아니라 리액션이다. 영화는 주요인물들의 말과 행동에 따른 주변 선원들의 반응을 포착하여, 효과를 증폭시키거나 리듬을 조율한다. 칼을 뽑아들면 찾아서라도 무를 썰고야 말겠다는 책임의식이 만들어낸 성과다.
<해적 2>의 개연성을 엄밀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다. 고래에게 삼켜졌다가 숨구멍으로 빠져나오는 주인공과 과학법칙따위 무시한 기상현상과 섬을 보고 황당함에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거기에 유치하기 짝이 없는 설정과 만화적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며 견딜 수 없는 오글거림에 괴로움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해적 2>의 허무맹랑함을 용인할 수 있는 이유는 이 곳이 ‘어드벤처로 가득한 테마파크’임을 확실하게 어필하기 때문이다. 톤 앤 매너가 확실하게 잡힌 배우들의 활약이 이를 증명한다. 1편을 이끈 일등공신이 유해진이라면, 2편의 일등공신은 강하늘이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호탕한 웃음으로 허풍을 부리다가도 통증에 엄살을 피워대는 천방지축 캐릭터 우무치를 훌륭하게 연기했다. 그의 코미디 연기는 <청년경찰>이 아니라 <해적 2>로 기억되어야 한다.
성격파 다혈질 선장 해랑을 연기한 한효주는 이제껏 스크린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들을 이번 영화에서 보여준다. 막이와 부흥수를 연기한 이광수와 권상우는 본인들이 가장 자신있어 하는 분야의 캐릭터를 연기했으며, 채수빈과 김성오는 적은 비중에도 불구하고 본인들만의 킬링트랙을 살뜰하게 챙겨갔다.
후속작임을 강조하기 위함인지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조선 태조 초기이며 언급되는 역사적 사건(위화도 회군)마저 동일하다. 부흥수가 탐라국 독립을 보장받기 위해 이방원과 결탁하는 내용을 제외하면 불필요한 설정으로 보인다. 유독 튀는 해랑의 복장과, 현대어에 가까운 대사들은 본인이 세운 규칙을 어느 순간 망각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분위기에 과하게 심취하여 황당무계한 장면들을 여과없이 보여주기도 하는데, 금괴를 물고 있는 펭귄에게 보물이 어딨냐고 심문하는 장면은 웃기고 싶다는 과욕만 보여줄 뿐 실소를 자아내는 대목이다. 다른 장소에서 각개전투가 벌어지는 후반부의 액션들은 밀도높게 담겨있지 않다보니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상황에서 오는 긴박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저런 아쉬움들이 많은 영화지만, 즐거운 만족감을 선사하는 명절 코미디 영화를 기대하는 이들에게 <해적 2>는 나쁘지 않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특정 집단 비하나 부주의한 태도 없이 관객들을 웃기는 이 시리즈의 착한 코미디는 불쾌한 뒷맛을 남기지 않는다. 이 정도의 미덕이라도 지킬 수 있는 코미디 영화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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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잘 봤습니다. 한국영화로서 대담한 시도를 한 건 분명하고 볼거리 부분에서 크게 성공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