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스포]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1~3화 초간단 리뷰
1. 좀비영화에 진심인 나는 작금의 좀비 콘텐츠에 대해 중대장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실망이 크다는 얘기다. 좀비의 본질은 인간성을 상실하고 오직 식욕만 남은 '걸어다니는 시체'를 말한다. 애시당초 "걸어다니는 좀비가 정파다"라고 주장할 정도로 '좀비 보수주의자'인 나는 뛰어다니고 굴러다니는 좀비에 대해 "저것은 사파다"라고 말한다(오직 조지 로메로만이 좀비의 근본이신). 어떤 좀비영화(혹은 드라마)는 참 잘만들었지만, 그것이 좀비의 근본정신을 온전히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그것은 좀비가 아닌 새로운 크리쳐를 활용한 대재앙 블록버스터일뿐. '지금 우리 학교는'에 대한 첫인상도 그랬다. 이 좀비들은 달리기도 빠르고 감염속도도 빠르다. 드라마 속 설명대로라면 물리고 좀비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5분이다. 이 엄청나게 빠른 K-좀비 콘텐츠에 대해 나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가질 수 밖에 없었다.
2. '지금 우리 학교는'을 3화까지 본 감상에 대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 좀비 콘텐츠 중에서는 '좀비의 근본정신'에 가장 근접한 작품이다. 여전히 빠르고 옵션이 많이 추가됐지만, 원초적인 의지만 남았다는 설정은 배고픔만 남은 태초의 좀비와 닮아있다. 게다가 '지금 우리 학교는'은 최근 나온 좀비 콘텐츠 중 거의 유일하게 생곱창 씹는 장면이 나온다. 무릇 좀비영화라면 산 사람 배를 갈라서 곱창 정도는 꺼내 먹어줘야 한다(좀비 콘텐츠는 고어해야 한다는 의미). '지금 우리 학교는'은 '킹덤'이나 '부산행', '살아있다' 등 그동안 공개된 K-좀비 콘텐츠 중 상당한 고어 난이도를 자랑한다. 좀비로 변하면서 얼굴이 뒤틀리는 거야 그렇다 쳐도 물어뜯는 장면을 꽤 자세하게 찍어서 "이런 게 정통 좀비물이지"라며 보게 만든다.
3. '지금 우리 학교는'의 장점은 고어하다는 것 외에도 '잘 찍었다'는데 있다. 몇 개의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지만, 1화 마지막에서 2화 첫 장면으로 이어지는 학생식당(급식실) 장면은 근래 본 어떤 한국좀비물보다 명장면이다. 학생들이 많은 식당에 도망치던 무리들이 숨어들고 그 뒤를 좀비 무리가 쫓아온다. 당연히 평화롭던 식당은 난장판이 돼버린다. 동선이 복잡한 이 씬을 감독은 한 테이크에 찍어버린다. 카메라는 현란하게 움직이면서 좀비와 학생들의 아수라장이 된 동선을 찍어낸다. 그 가운데 식당에 있던 인물들 각자의 사정도 담아낸다. 액션 연출이나 배우들 감정연기에서 난이도가 높은 장면이라는 인상을 곧장 받으면서도 몰입하면서 보게 만든 장면이다. 특히 이 장면은 좀비 대환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장면으로 다소 늘어지던 이전 전개에서 시청자를 확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장면 만큼은 극장에서 보고 싶어질 정도다.
4. 다만 '지금 우리 학교는'은 템포가 길다. 이재규 감독이나 천성일 작가 모두 지상파 드라마를 하던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지금 우리 학교는'의 리듬은 넷플릭스 드라마라기 보다 지상파 드라마에 가깝다(1시즌 12회, 회당 러닝타임 60분 내외). 인물이 많은 만큼 인물의 관계를 설명하는 장면이 1화 중반까지 나온다. 이야기에 핵심이 되는 이청산(윤찬영)과 남온조(박지후), 이수혁(로몬), 최남라(조이현)를 중심으로 2학년 5반 친구들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약 30분 정도를 소요한다. 12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에 비하면 인물 설명은 최대한 짧게 한 편이다. 다만 인물 설명에서 큰 비중이 없던 장하리(하승리)나 윤귀남(유인수)의 서사가 초반에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이들의 이야기는 4화 이후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5. '지금 우리 학교는'의 웹툰을 보지 않은 입장에서는 1화의 30분 가량이 당황스럽다. 대뜸 이성에게 관심을 갖고 명찰을 주며 고백하는 장면이 지나가자 "누가 한국드라마 아니랄까봐 좀비물에서도 연애를 하나"라고 생각했다(웹툰에서도 애정관계가 주요하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좀비가 나타나고 생존을 위해 도망치는 와중에도 이 애정관계는 이야기에 영향을 준다. 이것이 후반부에 감정적 클라이막스를 이끌어내기 위한 역할을 하겠지만, 당장 생존을 위해 도망치는 와중에 연애감정이 불쑥 나오는 걸 보니 조금 당황스럽다. 3화까지 본 '지금 우리 학교는'의 단점은 너무 한국드라마같다는 점이다. 이게 해외팬들에게는 먹힐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 한국드라마라고 느낀 지점은 3화에서 또 등장한다. 이나연(이유미)이 청산의 절친 한경수(함성민)를 좀비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청산은 화를 낸다. 그런데 청산은 화를 내도 참 젠틀하게 낸다. 벌컥 나연에게 달려들다가 친구들이 말리자 멈춘다. 그리고 엄한 캐비넷을 주먹으로 치면서 고함친다. 넷플릭스 드라마에 누가 욕으로 심의하는 것도 청산은 지나치게 신사적이다. 그 장면에서는 누가 봐도 '가장 친한 친구가 타인에 의해 좀비로 변해버려서 화나는 모습'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3화까지 보면서 가장 공감이 되지 않는 장면이었다.
6. 조연 배우들의 연기가 압권이다. 이나연을 연기한 이유미는 내내 재수가 없어서 "쟤 좀 빨리 죽여어"라고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봤는데 최후에는 조금 불쌍해보이기도 했다. 경수를 연기한 함성민의 연기도 좋았고 양대수를 연기한 임재혁도 매력있다. 3화까지 큰 존재감을 보여주지 않은 오준영(안승균)이나 윤귀남, 장하리, 장민재, 박미진 등은 웹툰에서 비중이 컸다고 하니 4화 이후에 존재감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선생님 역할을 한 김병철, 이상희는 말할 것도 없고 이규형, 배해선, 조달환, 전배수 등 어른들의 조연 연기도 좋다. 많은 배우들이 등장하는 만큼 연기 구멍이 있을 수도 있지만, 재능있는 다른 많은 배우들이 그 구멍을 메워버린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배우들의 앙상블을 보는 재미도 좋다.
7.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은 웹툰이 만들어진 2009년에는 당연히 없었을 감정 하나가 훅 들어온다. 세월호에 관한 얘기다. 2화에서는 청산과 온조가 각각 휴대폰 긴급전화를 이용해 119에 신고한다. 그러나 구조대는 도착하지 않고 아이들은 초조해한다. 구조대를 기다리던 아이들 중 청산은 밧줄을 만들어 아랫층으로 내려가자는 제안을 하며 "구하러 오지 않을거야"라는 말을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갇혀서 위험에 처했다. 119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소방대원인 온조의 아버지는 국회의원 구조에 발이 묶여있다. 이 드라마에서 세월호를 떠올리는 것이 작가의 의도인지 세월호 사건을 목격한 세대의 트라우마인지 모르겠다. 드라마가 이후에 어떻게 전개될지, 세월호에 대한 트라우마를 다른 시청자들도 느끼는지 궁금해진다.
8. 결론: 인물들이 많아서 집중이 어렵고 연애관계가 불쑥불쑥 끼어들어 긴장감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역대급 명장면도 있고 최근 나온 K-좀비물 중 상당히 잔인하다. 후자에 언급한 두 이유 때문에 나는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볼 계획이다.
추신) 28일 공개 후 자세한 리뷰를 올릴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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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잔인해서 좋았어요
볼만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