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초간단 리뷰
1. 구파도 감독을 스타덤으로 만든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아직도 보지 못했다. 대만 멜로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기 보다는 대만영화 자체를 조금 난해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허우샤오시엔과 에드워드 양으로 대표되는 대만 뉴웨이브 영화감독들의 작품을 보면서 예술적으로 이해하기 전에 "어우 지친다"라는 소리가 먼저 튀어나왔다. 나는 대만 멜로영화도 뉴웨이브 영화의 정서를 계승하고 있을 줄 알았다. 대만영화를 아주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국가의 영화에 비하면 적극적으로 소비하진 않았다. 대만 멜로 중에서는 그 흔한 '말할 수 없는 비밀'도 안봤고 '안녕 나의 소녀', '청설'도 안봤다. '나의 소녀시대'는 절반 보다 말았다. 대만영화에 조금 흥미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17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본 '몬몬몬 몬스터'였다. 공포를 베이스로 한 크로스오버 장르영화를 좋아해서 선택했고, 재밌게 봤다. 다른 것보다 구파도 감독의 연출이 참 트렌디했고 이야기 구조가 아주 튼튼했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연출이 그의 특징이었다.
2. '부천영화제'에서 본 '구파도 영화'에 대한 좋은 기억은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만년이')로 이어졌다. 한국 예고편에서는 대만 청춘멜로영화로 소개됐는데 대만 예고편에서는 '신과 함께'같은 저세상 판타지물로 소개됐다. 결과적으로는 후자에 더 가까운 영화다. 영화는 어느날 갑자기 벼락맞아 죽은 주인공 샤오룬(가진동)이 인간으로 환생하기 위해 월하노인 일을 하면서 시작된다. 그에게는 월하노인 동료 핑키(왕정)가 있다. 월하노인은 이승에서 인연을 찾아주는 일이다. 적절한 인연을 찾으면 업보가 씻겨나가 인간으로 환생할 요건을 충족하지만, 짝을 잘못 찾으면 업보가 쌓여 사람이 아닌 것으로 강제 환생당할 수 있다. 샤오룬은 번개를 맞았을 때 기억을 잃어버렸다. 핑키와 함께 기억을 찾아 돌아다니던 중 어릴 때 키우던 개를 만나게 되고 샤오룬의 기억도 돌아온다. 그리고 샤오룬의 연인이었던 샤오미(송운화)도 만나게 된다. 이때부터 일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3. '만년이'는 중화권의 월하노인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설화는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권에도 유사한 형태로 퍼져있다. '만년이'는 대만영화인 만큼 중국의 월하노인과 붉은 실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는 마치 '신과 함께'가 풀어낸 지옥의 이야기처럼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말 그대로 작가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작가는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맞게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 이는 이야기를 전하는 편리한 방법이지만 관객의 설득력을 얻어내는 일은 힘들 수 있다. 구파도 감독의 위력은 이걸 가지고 관객을 설득시킨다는 데 있다. '몬몬몬 몬스터'에서도 귀신이 일진들에게 납치되는 괴상한 상황을 만들어냈지만, 그 위에 이야기를 덧씌워서 세계관을 설득시킨다. '만년이'도 월하노인의 세계관 위에 업보와 윤회, 화엄사상을 덧씌워서 관객을 설득시킨다. '신과 함께' 못지 않게 인간사에 대해 생각하면서 즐길 수 있는 영화다.
4. 구파도 영화는 템포가 빠르다.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에서도 빠른 템포를 유지해 관객이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만년이'는 무려 이승과 저승이라는 거대한 세계관을 다루면서도 템포가 빨라서 지루할 틈이 없다. 이는 촘촘한 이야기와 감각적인 연출 덕분이다. 심지어 '만년이'는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가 신나기까지 하다(인도영화도 아닌데 마지막에 신나게 춤을 춘다). 게다가 한국 예고편에서 '만년이'를 풋풋한 대만 멜로영화처럼 포장했으니 대만 멜로의 느낌도 내야 한다(안 그러면 말 나온다). '만년이'의 러브라인은 샤오룬과 샤오미, 핑키의 삼각관계다. 통상 이런 경우라면 누구 하나는 시무룩해지기 마련인데 '만년이'는 놀라울 정도로 모두에게 최선의 길을 열어준다. 해피엔딩도 머리가 똑똑해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5. '만년이'는 사람들 사이의 로맨스(혹은 사람과 귀신 사이의 로맨스)지만, 의외로 감동을 주는 건 늙은 개 아루다. 영화의 엔딩크레딧에서도 배우들의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이 나온다. 이야기에서도 아루는 여느 캐릭터보다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클라이막스에 이르면 집에서 개를 키우거나 무지개다리 건너로 개를 떠나 보내 본 사람은 폭풍 오열하면서 볼 수 있다. 사람 사이의 멜로는 그렇다 쳐도 아루는 최근 몇 년간 본 영화 속 개 중에 단연 최고다. 환생 등급에서도 사람보다 한 단계 아래인 생물이 개다(고양이는 왜 사람보다 한 단계 윗등급인지 모르겠다. 이 영화에는 고양이의 수염도 안 보인다). 내 생각에는 개가 고양이보다 윗 등급이어도 될 것 같다.
6. 결론: '몬몬몬 몬스터'를 보고 '부천영화제+구파도=개꿀잼'이라는 공식을 세웠다. 이 공식은 '만년이'를 통해 증명됐다. 이 감독 영화 참 마음에 든다('몬몬몬 몬스터'에서 CHARA의 'My Way'가 등장했을 때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를 좋아한 나는 거의 울 뻔했을 정도로 좋았다). 그런데 내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보게 될 지는 모르겠다. ...'만년이'에서 송운화가 참 예쁘게 나오긴 했다만...
추신) 누군가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라는 제목을 듣자마자 "주성치?"라고 했다. ...나는 주성치 영화를 대부분 다 봤는데('귀경출사'도 봤는데) '서유기' 시리즈만 못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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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시절.. 도 장르 이전에 참 잘 만든 영화였죠.구파도 트리플 히트 믿고 보는 감독 등극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