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cerer (1977) 스포일러 있음.
소서러는 마법사란 뜻이다. 그럼 이 영화 쟝르는 무엇일까? 마법사와는 상관 없는 스릴러물이다.
감독의 전작 엑소시스트를 인상적으로 보았던 관객들은, 이 영화를 무슨 엑소시스트 속편처럼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꿈도 희망도 없는 남자들이 목숨을 걸고 아마존 정글 속으로
니트로글리세린을 운반하는 내용이다. 거기다가 꿈도 희망도 없는 전개에 꿈도 희망도 없는 결말까지......
흥행에 실패한 것이 당연하다.
영화 자체는 걸작인데, 여러가지 부수적인 이유 때문에 억울하게 흥행에 실패한 것이다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실패할만해서 실패한 것 같다.
관객들이 엑소시스트 속편쯤으로 오해했다고 하는데, 감독 자신이 그런 오해를 조장한 거다. 소서러는 트럭 이름인데,
소서러가 출발할 때, 벽에 악마 조각이 새겨져 있다. 엑소시스트 처음에 나오는 그 악마조각이다. 물론 내용과는
무관하고 이 장면에서 몇초 나오고 다다. 아마 이 장면 몇초 넣어놓고, 엑소시스트와 관련 있는
영화처럼 선전했으리라. 안 그러면 뜬금없이 이 조각이 몇초 나올 리가.
이 영화는 배분의 실패가 돋보인다(?). 남미 아마존 정글 한복판에 모인 범죄자들 - 죽어도 싼 놈들이다. 테러리스트, 마피아 금고를 턴 강도, 범죄조직 회계사 등. 절대 들키지 않을 곳 찾다가, 절대 들키지 않을 곳에 온 거다.
와보니 꿈도 희망도 없는 곳이다. 돈도 다 떨어져서,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마존 정글에 들어가 막노동하는 거다.
그것도 언제까지 기한이 있어, 여기까지 하면 된다 이런 것도 아니다. 무기한으로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들에게 천금같은 기회(?)가 하늘에서 떨어진다. 몇백 킬로미터 떨어진 공장에 화재가 발생해서 도저히
불을 끌 수 없다. 유일한 방법은 니트로글리세린으로 화재현장을 폭파시켜 버리는 것.
그런데 아마존 정글 한복판으로 니트로글리세린을 운반해가야한다. 사람도 건너가기 힘든 연악한 줄다리를
대형트럭으로 건너가야 한다. 길 같지도 않은 벼랑길을 대형트럭으로 건너가야한다, 트럭이 흔들려서도 안된다.
그럼 엄청난 양의 니트로글리세린이 폭발할 거다. 아무도 안 가지만, 우리의 주인공들은 악과 깡이 대단하고, 또
꿈도 희망도 없는 사람들이기에 이 일을 맡는다. 그리고 장렬하......지는 않게 개처럼 비참하게 죽는다.
그냥 이 장면 보여주면 된다. 하지만 영화는, 처음에, 이 주인공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을 아주 길게 보여준다. 마피아 금고를 털고 기타등등......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남미 촌구석에 기어들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주인공들의 대사 몇마디면 다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사실들을, 왜 영화 몇분의 일을 소비해서 지루하게 보여주는가? 그나마, 이
에피소드들이 재밌다면 모른다. 그냥 마지 못해 보여준다는 듯 전형적이고 지루하다. 그리고 남미 정글 한복판 공장에 불이 나는 장면 - 이것은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공장에 화재가 나서 니트로글리세린이 필요하다는 대사 자체가
이미 상황을 다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 아닌가? 처음 에피소드 그리고 공장 화재 장면 다 합치면 영화 2/3쯤 지나가는 것 같다. 주인공 니트로글리세린 운반은 전체 1/3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영화 한편 볼 정도 길이를 선행학습을 하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막상 본편은 후다닥 지나가는 감이 있고.
이거, 배분이, 머리만 큰 기형아같은 영화다.
그렇다면 이 1/3밖에 안되는 액션장면이 재밌는가? 클루조 감독의 잘 알려진 걸작 공포의 보수를 리메이크한
것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scene by scene 으로 잘 아는 내용이다. 그나마 철저한 재창조로 오리지널에 없던
재미와 감동을 주었다면 모르겠는데, 오리지널만 못한 것 같다.
이 영화가 재평가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냥 시간이 지나면서 오리지널 공포의 보수가 잊혀지는 바람에, 이 영화의
단점이 잘 안보이게 된 것이 아닐까?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올드보이가 재밌고 충격적이고 새롭게 보일 것이나 마찬가지다.
로이 샤이더를 비롯 주연배우들은 프로페셔널이다. 모두 연기를 잘한다. 하지만 전율을 줄 정도는 아니다. 정글 속 마을의 비참한 상황, 니트로글리세린을 정글 속으로 운반한다는 상황은, 전율적인 데 말이다. 관객들이 한 발자국 물러서서 "와, 연기 잘 하네"해선 안된다. 프리드킨 감독의 연출도 크루조 감독만 못한 것 같다. 자유자재로 공포스런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장면들을 연출해 낸 크루조 감독과 달리, 프리드킨 감독 연출은 다큐멘터리같은
스타일이다. 좀 밋밋하다.
왜 이런 영화가 나와서, 프리드킨 감독의 커리어를 끝장냈을까? 영화가 이래서 프리드킨 감독 커리어가 끝장났다기보다, 그냥 프리드킨 감독이 창조력이 이 영화를 분기점으로 고갈되어, 이후 영화들은 범작이 되어버렸다가 더 맞는 말 아닐까? 이 영화는 턱 없이 거대하다. 니트로글리세린을 정글 한복판으로 운반하는 남자들 이야기를, 안 넣어도 될 곁가지까지 다 거대하게 묘사해서 백과사전식 영화를 만들었다. 이래야만 하는 내적인 이유가 있어 그런 게 아니라,
감독의 거대한 에고 때문인 것 같다. (이것은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도 마찬가지지만.) 헐리우드 스타처럼 살면서, 수백명과 섹X를 하였다던, 프리드킨 감독의 그 에고 말이다. 이 영화는, 지옥의 묵시록과 마찬가지로,
감독의 지나치게 거대한 비젼이 지나치게 거대한 스타일로 필름에 투영되고, 또 거대하게 실패한 영화다.
지옥의 묵시록의 경우, 코폴라 감독이 천재였기에, 이 거대한 파산이 영화의 걸작임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일 뿐이다. 프리드킨 감독의 경우 그정도 천재가 아니었던 것이고. 아니, 프리드킨 감독이 거대한 비젼도 없으면서, 거대한 비젼을
영화에 투영한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에 대형트럭이 줄다리를 건너가는 장면이 유명한데, 이거 공포의 보수에 나왔던 장면을 재현한 것이다.
이 장면에 한해서 오리지널보다 나은 것 같다. 하지만 이 장면 하나로 영화가 볼만해지는 것은 아니리라.
재해석의 여지가 있는, 깊이 있는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캐릭터 설명에 공을 들인 것과 달리,
로이 샤이더 = 강도 식의 평면적인 캐릭터 구축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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