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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라운드] 간략후기

jimmani
2065 17 6

 

영화 <어나더 라운드>를 작년 씨네큐브 예술영화 프리미어 페스티벌을 통해 개봉 전 미리 보았습니다.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과 매즈 미켈슨이 <더 헌트> 이후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 이 영화는,

전작과 상반된 코미디 톤의 이야기이면서도 인물들을 위험한 실험에 몰아 넣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녔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겠거니 하는 어른들이 상식적으로 외면하겠거니 하는 가설에 빠져드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처음엔 피식거리며 웃다가도, 그 과정 끝에 마주하는 우리의 민낯은 당혹스럽다가도 은은한 여운을 남깁니다.

 

마르틴(매즈 미켈슨), 톰뮈(토마스 보 라센), 니콜라이(마그누스 밀랑), 페테르(라르스 란데)는 직장 동료이자 절친 사이입니다.

같은 학교 교사인 그들은 가르치는 데 갈피를 못잡고, 배우는 아이들은 의욕도 없으며, 집안에서는 겉도는 남편이자 아빠입니다.

그렇게 지지부진한 일상을 보내던 그들은 어느날 모임에서 술에 관한 한 학자의 흥미로운 가설을 공유합니다.

그 가설인즉슨, 혈중 알코올 농도를 0.05%로 유지하면 인간의 창의성과 대담성, 활력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창의력은 바닥났고 대담성은 쪼그라들었으며 활력은 식어버린 그들은 그 가설에 선뜻 진심으로 다가가고,

먼저 실험에 임한 마르틴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수업 분위기와 태도, 회복된 가족과의 관계에 효과를 실감합니다.

이에 네 친구들은 '항상 혈중 알코올 농도 최소 0.05%를 유지하되, 밤 8시 이후 금주할 것'이라는 조건을 걸고 실험에 뛰어듭니다.

가설이 주장하는 성과를 하나둘씩 보기 시작하는 친구들은 점차 혈중 알코올 농도를 높여가는 데 도전하는데,

그렇게 술을 한잔 두잔 더 마실수록 정말 활력과 생기와 창의력이 극대화될지 그 답은 사실 우리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매즈 미켈슨과 호흡을 맞췄던 <더 헌트>에서 한 인간을 가혹한 믿음의 실험 한 가운데에 던져 넣었던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은,

이번 <어나더 라운드>에서는 클 만큼 다 큰 어른들을 데리고는 우스꽝스런 음주 실험에 들게 합니다.

하지만 <더 헌트>의 좌절감과 답답함을 떠올린다면 <어나더 라운드>는 그 톤이 한결 경쾌합니다.

마르틴을 비롯한 네 친구들이 실험에 진심으로 뛰어들면서 환경과 상황에 맞지 않게 취기를 드러내는 장면에서는 웃음을 자아내다가,

그렇게 섭취한 술이 발휘하는 뜻밖의 효과로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볼 때에는 대리만족의 느낌도 줍니다.

'술이 우리를 발전시킨다'는 가설이 터무니 없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닌데도, 취기에 들뜨자 담대해지는 네 친구들의 모습은

술에 대해 우리들이 익히 겪고 느낀 바와 오버랩되며 진짜 가설이 유효한 것인가 솔깃해지기도 합니다.

영화는 마치 실험 보고서를 쓰듯 챕터를 나누어 네 친구들의 실험 진전 상황을 관객에게 보고(?)하는데,

섭취하는 술의 양이 늘어나면서 기분 좋은 에피소드, 가벼운 해프닝은 잦아들고 초라한 낯이 점점 드러납니다.

우리를 꿈결로 보내던 술을 다 비우고 난 뒤 목격하는 것은, 외면하고 싶어도 술보다 더 독하게 바닥에 달라붙은 현실입니다.

 

네 친구들이 알코올의 힘을 믿었던 것은 현실을 돌파하기 위함이 아니라 현실을 도피하기 위함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술은 네 친구들에게 잠들어 있었던 용기를 깨우며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지키는 힘을 부여한 것 같았지만,

사실 술은 결핍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잠시 잊게 해줄 뿐, 망각 끝에 돌아오는 결핍의 구덩이는 더욱 아득하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온 국민이 술을 퍼마시는' 덴마크의 자유분방한 술 문화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영화는,

술을 마시지 않기보다 술을 잘 마시자고 합니다. 우리 삶의 그늘을 가리기 위함이 아닌 우리 삶의 빛을 펼치기 위해 술을 마시자는 거죠.

술은 우리의 삶에 더하고 곁들이는 것일 뿐, 우리의 삶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고통과 부끄러움 끝에 깨달아가는 이들을 통해,

영화는 잊으려 술독에 빠지지 말고 기억하려 축배를 들 것을 우리에게 제안합니다.

술은 나를 잠시 변하게 하지만, 결국 맨 정신일 때에만 나는 앞으로도 계속 달라진 나일 수 있을테니까요.

 

<어나더 라운드>는 보고 있으면 정말 술기운이 오르는 건가 싶을 정도로 배우들의 메소드 주정 연기가 인상적입니다.

마르틴 역의 매즈 미켈슨은 여러 영화들에서 보여준 무게감과 카리스마 대신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에서 두루두루 눈치를 보는

중년 남성의 모습을 섬세한 일상 연기로 보여주고, 술을 마신 후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는 능청스런 코믹 연기까지 선보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가벼운 코미디에만 머무르지 않고 술과 인생에 대한 경쾌하고도 깊은 드라마로 남게 하는 내공을 자랑하기도 하죠.

포스터 등 각종 홍보 수단에는 매즈 미켈슨이 원톱처럼 등장하지만 의외로 이 영화는 네 친구들의 이야기를 골고루 담는데,

특히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출세작인 <셀레브레이션>을 비롯해 히트작인 <더 헌트> 등 여러 영화에서 감독과 호흡을 맞춰 온

토마스 보 라센은 괴짜스러우면서도 안타까운 구석이 있는 네 친구의 일원 톰뮈를 연기하며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술에 관한 나름의 도발적인 실험을 감행하지만 <어나더 라운드>는 기대보다 유쾌하고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아마도 영화가 술에 대해 갖고 있는 태도도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술과 함께 하는 삶을 축복하되 술로 대신 하는 삶을 지양하는,

술이 깼을 때 마주하는 것이 외면하려 했던 현실의 시궁창이 아니라 여전히 곁에 함께 하고 있는 행복한 순간이기를 바라는,

그렇게 인생을 축복하는 팡파레처럼 술을 즐길 수 있기 바라는 덴마크 주당들의 술 마시는 지혜가 영화에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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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기생충처럼 대중성 작품성 동시에 잡은 듯해서 기대가 크네요.^^
09:03
22.01.18.
jimmani 작성자
golgo
생각보다 대중성이 높아서 만족했습니다.^^
09:43
22.01.18.
jimmani 작성자
구름문곰
즐겁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10:39
22.01.18.
profile image 3등

역시 짐마니님 영화글은 읽는 맛이 특별해요 ㅎㅎ

마지막 문장이 너무 좋네요 +_+

 

10:06
22.01.18.
jimmani 작성자
다크맨
맛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0:40
2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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