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1981) 스포일러 있음.
이 영화가 히트친 것은 뭔가 암시하는 듯한(?) 제목과 정윤희가 뭔가(?) 보여준다는 소문 그리고 포스터 때문이었던 듯하다. 1980년대 우리나라 영화산업 암흑기였을지라도 걸작들은 다수 나왔는데, 이 영화는 안타깝게도 그 리스트에 끼지 못한다. 내용은 막장드라마 그리고 별 거 아닌 이야기를 끌고 또 끌며 시간을 채워나가는 것이 소프오페라를 닮았다.
영화는 기차가 지나다니는 어느 산골에서 혼자 집을 지키며 사는 고집만 남은 최영감을 보여주는 데서 시작한다. 그는 젊었을 적 자기 잘못으로 인해 자식들을 잃고 집은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리고 사람들은 더 떠나버리고 만 사람이다. 혼자 사는 것도 당연하고 늘 후회하며 자책하는 것도 당연하고 아무것도 없는 집안에서 고집만 남아 죽는 것만 못하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 이야기는 플래쉬백으로 과거로 돌아가 그의 잘못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시작이 아니다.
이 영화의 주연은 대배우 황해다. 체구는 작지만 조 페시 스타일 배우다. 작고 다부진 몸에 다이너마이트같은 폭발력으로 꽝하고 터뜨리는 에너지로 액션스타로 군림했다. 말년의 그는 독짓는 늙은이, 심봤다 등 문예영화에 출연했는데, 본인은 액션스타가 자기 몸에 맞지 않는 옷과 같았다고 회고하고 문예영화에서 연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황해 정도 대배우라면 이 영화를 탄탄하게 떠받치는 기둥같은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사실 스토리와 주제가 약한 이 영화가,
무너지지 않고 하나의 구성물을 유지한 것은 황해의 역할이 컸다.
최영감은 아내가 없다. 최영감은 광산에서 일하는 광산노동자이기에 산속 오막살이에 문영, 수련과 함께 산다. 사실 이들은 양자 양녀다. 문영이 대학에 가고 난 후, 최영감이 광산에 일하러 가면 수련은 빈 집에 혼자 남아서 하염없이 동산이며 멀리 지나가는 기차며 바라본다. 이제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같은 수련에게, 이렇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고립된 산속 생활을 지옥같다.
최영감이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고아들을 데려다가 아들, 딸로 정성껏 키웠을 뿐인데.
사실은 이렇다. 그는 전쟁에서 입은 상처로 성불구가 되고 아내마저 이를 알고 떠난다.
그는 고아들을 거둬 아들 딸로 키우며 자기 가정을 만들려고 한다. 말하자면 최영감의 양자 양녀는
최영감이 억지로 이룬 가정이라고 하는 환상의 일원인 셈이다. 나는 이 부분이 이 영화에서 가장 좋을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그냥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가정이라는 것이 환상이고 그 환상 안에서 일원으로 살아가는
최윤석과 정윤희의 이야기다. 최영감은 이 사실을 자기 혼자 아는 비밀이라고 생각하지만,
최윤석이나 정윤희나 다 알고 있다. 최윤석은 이 가정에서 뛰쳐나오려 하지만, 정윤희는 최영감의 키워준
은혜를 생각해 가정 내에 남는 것을 선택한다. 최윤석와 정윤희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최영감 입장에서는, 자기의 꿈인 가정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충격적 사건이다.
정윤희가 최윤석을 사랑하면서도 최영감을 위해 가정에 남길 고집하면서 최윤석에게는 시련이 닥친다. 그는 집을 뛰쳐나갔다가 다시 정윤희에게 돌아오고 하길 반복한다. 이 영화는 최영감, 최윤석, 정윤희의 선택에 대한 영화다.
이것이 그저 남매 간 사랑을 소재로 하는 막장드라마인지, 아니면 그 안에 어떤 해석의 여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특히 최영감이 불구가 된 이유가, 월남전 참전이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가정은 환상이고 가부장 황해가 가지는 집착이다 - 가정을 신성시하고 가부장을 신성시했던 당시 영화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 것일까? 어쨌든 최영감이 허상에 대해 가지는 이런 집착은 정윤희를 죽게 만든다.
아들 최윤석은 최영감의 이런 위선을 비판하며 정윤희의 시체를 들도 사라진다. 최영감은 정윤희가 죽은 다음에야, 아들 딸이 최영감의 환상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들의 사랑을 포기해왔음을 알게 되고 통곡한다. 최영감이 아들 딸을 사랑했던 것 또한 사실인지라, 그는 남은 삶을 아들 딸과 살던 오두막집에서 혼자 회한 속에 산다.
이들과 대비되는 인물이 김형자다. 섬에 살다가 지겨워서 섬을 뛰쳐나온 인물이다. 정윤희가 최영감을 버리고 나온다면
김형자가 된다. 그녀는 자기 욕망에 따라 사는 사람이다.
김형자는 계속 자살에의 충동에 시달린다. 김형자의 삶은, 자살에의 충동에서 계속적으로 이겨나가는 데 달려있다. 그녀는 정윤희를 도발하기 위해 그녀 앞에서 최윤석과 섹X할 것을 요구한다. 그녀는 정윤희의 또다른 자아일까?
최영감-최윤석-정윤희-김형자 간 이런 갈등과 관계는 정윤희가 강간당해 자살하면서 비극적으로 그리고 갑작스럽게 끝나게 된다. 정윤희가 가장 아름답게 나온 영화들 중 하나다.
정윤희의 서비스씬이 몇개 나오는데, 오늘날 수준으로 보면 미성년자 관람가가 될 정도다.
영화 맥락상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수준이기 때문에, 영화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그래도 잘 보면, 보여서는 안될 것이 보이기는 하기 때문에, 관객들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영화다.
최윤석은, 김기영 감독 이어도로 데뷔한 카리스마 대단한 배우인데, 이 영화에서는
약한 시나리오로 말미암아 설득력 약한 청년이 되고 말았다. 정윤희가 자기 설득을 들어야 하는데, 정윤희가
최영감의 환상의 일원이 되길 고집하는 바람에, 사랑을 잃고 마는 비극적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캐릭터가 설득력 있게 구축된 인물은 최영감 하나다. 황해의 대가급 연기 때문이다.
너무나 착하고 최영감을 사랑하기에, 그의 꿈을 보호해주려다 죽음에 이르고 마는 정윤희의
순결한 소녀를 보고 싶은 관객은 만족할 것이다.
P.S. 혹시 모른다. 정진우는 더글라그 서크같은 대가이고, 이 영화는 더글라스 서크의 걸작과 비슷한 평가를 받게 될 지. 그냥 평범한 멜로드라마 이상임은 분명하다.
추천인 7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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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순가련 연기의 최고봉들 중 하나입니다. 막 보호해주고 싶어집니다.
스토리가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악이랑 흡사하네요.최윤석은 짝코에서
끝내줬죠.유럽 배우같은 흥취를 풍겼는데,울나라에서 너무 일찍 나온 배우.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영화 개봉 당시 기준으로 보아서도, 황해 가정에 정윤희 최윤석 남매간 사랑 설정은 좀 구닥다리같았죠. 하지만 그 제목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가 너무 걸작이라서 흥행에 성공했죠. 그런데 영화를 보면, 앵무새 몸으로 운 사람은 정윤희가 아니라 김형자입니다. / 제 관점, 최윤석 최고연기는 이어도입니다. 정말 광기에 찬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가 끝내줬습니다.
지금봐도 우리나라 최고 미녀
논란을 크게 일으킨 사건 이후 작품 없는게 너무 아쉽더군요.
정윤희 배우는 정말 너무 일찍 태어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