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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 파워 오브 도그] 간략후기

jimmani
1757 9 6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넷플릭스 영화 <파워 오브 도그>를 보았습니다.

지난 베니스 영화제에서 첫 공개되어 감독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 감독이 12년만에 내놓은 장편 영화로,

공개된 후에는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 다수 부문 후보작으로 예상되고 있고 특히 남우주연상, 감독상 부문 강력 후보로 꼽히고 있습니다.

역시 여성 감독인 켈리 라이카트의 <퍼스트 카우>에 이어서 서부극을 새롭게 정의하는 또 다른 작품으로 등장한 이 영화는,

일상이 지배하는 서부 시대를 배경으로 처음 느끼는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서부극을 휘두르던 남성성의 신화를 철저히 깨부숩니다.

 

1925년 미국 몬태나에는 목장 경영으로 성공한 두 형제 필(베네딕트 컴버배치)과 조지(제시 플레먼스)가 있습니다.

형 필은 권위적인 카리스마로 휘하의 카우보이들을 이끄는 군기대장 스타일이라면, 동생은 서글서글한 비즈니스맨 스타일이죠.

어느날 소떼 몰이를 하다 찾은 식당에서 형제는 식당 주인 로즈(키얼스틴 던스트)와 아들 피터(코디 스밋-맥피)를 만납니다.

필은 예쁘장한 피터의 서빙에 훈계질을 하고 테이블에 장식된 종이꽃으로 담뱃불을 붙이며 모욕을 주고,

피터의 엄마인 로즈는 이에 눈물을 흘리는데 조지가 이를 대신 사과하며 위로해주고 그 과정에서 로즈와 사랑에 빠집니다.

조지는 형이 모르는 사이에 로즈와 혼인을 하고, 필과 살고 있는 목장 집에 로즈와 피터를 데려 옵니다.

눈엣가시였던 로즈와 피터가 집으로 들어오자 필은 본격적으로 두 사람을 괴롭히기 시작하는데,

그 교묘한 괴롭힘으로 인해 로즈와 피터는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는 듯 하지만 상황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파워 오브 도그>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미국 서부시대는 '힘'이라는 화두가 늘 중심에 있는 곳입니다.

정복과 개척의 연속이었던 이 시대에서 힘은 비단 카우보이들만이 아니라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갈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굳이 숱한 서부극처럼 이름 모를 총잡이가 나타나지 않아도, 일상에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힘을 준비하며

타인을 공격하거나 자신들을 지키려 했을 것입니다. 영화에는 이런 서부 시대의 고유한 특성이 전제로 깔려 있습니다.

몇 개의 챕터로 나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처음에는 우리가 좇는 것이 인물의 감정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고집세고 강압적인 주인공으로 인해 연출되는 불편한 상황이 한두번이 아닌데, 저 사람은 왜 저러는 건지,

상대방을 향해 무슨 감정을 갖고 있기에 저런 태도를 보이는 건지 추측하게 되고 그 감정이 형성하는 관계를 그려보게 되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건 감정이 아니라 힘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그러므로 우리가 좇는 건 힘의 대결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여기에 무슨 황량한 서부 위에 싹트는 인간의 감정이 그려질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낭만 따위는 접어두어야 한다는 걸 느낍니다.

 

영화는 소떼를 몰거나, 요리를 하거나, 노끈을 엮는 등의 일상으로 채워질 뿐 총성 한 번 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차원적인 폭력도 거둬들인 채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날카로운 감정을 일으키는 신경전이 이어집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한 지배권을 자기 손 안에 두어야만 하는 필은 서부극 하면 떠오르는 남성성의 표본입니다.

카리스마라는 이름으로 안하무인적인 성격을 포장한 듯한 그의 고약한 지배 심리는 그의 세계를 오랫동안 장악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로즈와 피터는 그가 추구하는 위압적인 남성성과 완전히 배치되는 성격의 인물들이라 증오 혹은 혐오했겠죠.

그러나 획일적인 힘의 잣대 아래 놓인 필은 자신 앞에 단지 혐오스런 인물들이 아닌, 처음 만나는 형태의 힘이 있다는 걸 놓치고 맙니다. 

어느덧 필의 세계관이 학습되어 있던 관객마저 생각지 못한 형태로 그 힘은 팽팽하게 필과 대립 관계를 형성합니다.

일방적인 강자와 약자의 구도는 오리무중에 빠지며 서늘함을 안기고, 힘을 둘러싼 인간의 유약한 내면이 나타나며 당혹감을 줍니다.

어떤 게임이나 대결의 공간으로 세팅해 두지 않고 끊임없이 일상이 굴러가는 공간의 특성을 잃지 않는 가운데,

영화는 세세한 단서들을 뿌려놓은 후 그것들을 살뜰히 회수해 가며, 아찔한 감정의 진폭을 잡아내 가며

정복이 일상이 되고 힘이 제1의 가치가 된 세상에서의 권력 대결이라는 게 무엇인지 전에 없던 방식으로 그려냅니다.

 

그러니 배우들의 연기 또한 극을 섬세하게 주무르면서 옴짝달싹못하게 지배하고 마는 카리스마가 필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필 역의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내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의 강력한 후보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비열하고 치졸하기 짝이 없는 과시욕을 자랑스런 힘인 양 휘두르는 한편 그렇게 손에 쥔 힘에 대한 불안감 또한 드러내는

필의 내면을 완고함과 유약함, 그 사이를 종이 한 장 차이로 오가는 정교한 연기로 관객에게 설득해내고 맙니다.

비단 그만이 아니라 키얼스틴 던스트, 제시 플레먼스, 코디 스밋-맥피 등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빛납니다.

겉모습만 보면 연약한 모자 관계이지만 험한 서부 시대를 둘이서 살아남았다면 분명 약하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게 하는,

조용한 면모 뒤의 강인한 내면을 키얼스틴 던스트와 코디 스밋-맥피는 섬세하고 명료한 연기로 그려냅니다.

형과 전혀 다른, 부드럽되 일관된 성미로 대립각을 형성하는 동생 조지 역의 제시 플레먼스 또한 연기의 개성이 살아있습니다.

영화가 감정의 흐름에서 힘의 대결로 변화하는 데 있어서, 이들의 연기는 필치를 바꾸며 그 그림을 완성해 가는 훌륭한 붓이 됩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봐도 매우 손색이 없었겠다 생각이 들었던 부분이 시시각각 등장하는 대자연의 풍광이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의 거대한 자연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거기에 숨어 있는 어떤 그림을 잡아내기도 합니다.

정복과 개척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며 질주하던 서부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영화는 그런 대자연의 너른 품과

그 아래에서 전개되는 인간들의 보이지 않는 대결을 병치시키며 결국 정복의 야망을 품는 인간들조차도

자연의 거대하고 예외없는 섭리 아래에서 힘의 대결을 펼칠 수 밖에 없는 피조물임을 이야기하는 듯 했습니다.

이렇게 <파워 오브 도그>는 환상에 가려져 있던 서부 시대를 채우고 있던 욕망의 속살을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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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제인 캠피언 감독 내공이 여전하네요
08:21
21.12.09.
jimmani 작성자
golgo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복귀해서인지 내공을 더욱 응축한 느낌이었달까요 ㅎㅎ
08:52
21.12.09.
2등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까지 너무 좋아서 기회되면 극장에서 다시 한 번 보고싶은 작품입니다ㅎㅎ
08:33
21.12.09.
jimmani 작성자
ddggff
마음을 간지럽히는 기타 소리가 예술이었죠.^^
08:52
21.12.09.
profile image 3등
내연적으로 이렇게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 영화는 킬링디어 이후로 오랜만에 봤습니다.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까지 더해지니깐.. 꼭 영화관에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jimmani님 후기 글 잘봤습니다~
10:15
21.12.09.
jimmani 작성자
영죽아
감사합니다! 아카데미 시즌에 극장에서 볼 기회갸 또 생기기를 바라봅니다 ㅎㅎ
11:49
21.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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