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데타> 후기 - 그 육신을 가득 채운 것은 어떤 성스러움인가

폴 버호벤 감독의 신작 <베네데타> 보고 왔습니다.

버호벤의 영화에서 섹스가 정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가스파 노에처럼 막 나가는 수위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이번 영화의 소재가 굉장히 파격적인데 과연 소재를 등에 업고 이전보다 더욱 파격적인 영화를 완성해낼지 궁금했어요.

막상 보니 성교 장면의 수위나 소재를 다루는 방식은 기대했던 것보다 맵지는 않았지만, 영화 전반적으로 굉장히 잘 만들어져서 기대 이상의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네요.

이번 영화에서 버호벤의 전반적인 연출 방향은 모호함이었던 것 같아요.

주요 인물(베네데타, 바르톨로메아, 원장수녀, 교황대사 등) 모두를, 양면적인 모습을 가진 입체적 인물로 설정하고

최대한 이 부분을 살리면서 극을 진행합니다.

그래서 저 사람이 정녕 어떤 사람인지 관객이 쉬이 판단을 내리기 어렵게 해요.

특히 이 영화의 주인공인 베네데타의 이중적인 모습은 내러티브의 핵심으로 작용하는데요.

과연 그 육신에 가득찬 것이 성(聖)스러움인지, 아니면 성(性)스러움인지 확신을 주지 않으면서 끝까지 모호하게 끌고 갑니다.

이를 통해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의 정체에 대한 열띤 토론을 이끌어내게 해요.

그리고 이렇게 극을 끌고 갈 수 있었던데에는 버호벤의 절륜한 연출력도 있지만

배우의 역할도 무척 컸다고 생각해요.

특히 타이틀 롤을 맡은 비르지니 에피라와 원장 수녀 역의 샬롯 램플링은 정말 올해의 연기 급이었습니다.

베네데타는 정말 버호벤과 에피라가 합작하여 만든 희대의 캐릭터인 것 같아요.

대사와 표정, 행동 등 모든 것이 서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도록 양가적인 느낌을 가득 담았어요.

이에 대응하는 원장 수녀 역의 연기도 무척 강렬한데요.

평면적으로 보일 수 있었던 이 캐릭터도 램플링의 명연기를 통해 무척 풍부하고 절절한 드라마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배우의 연기만 봐도 시간이 금방 흘러갈 거예요.

코로나 창궐 초기에 흑사병 이야기가 언론에 굉장히 많이 나왔었죠.

코로나만큼 인류를 괴롭힌 재난은 흑사병과 스페인 독감 정도 말고는 없다고요.

흑사병이 창궐한 <베네데타>의 세계를 보면서 지금 이 시기와 상당히 많이 닮아있어서 새삼 놀라웠고

과연 고난이 가득한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삶을 지탱해야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극 자체만으로도 읽어낼 텍스트도 풍부하거니와,

극장 밖의 세상과도 맞닿아 여러 시사점을 주는 좋은 영화입니다.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