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뉴욕 다이어리] 사회초년생의 1년
'마이 샐린저 이어'라는 작가 자신의 회고록에 기초한 영화는 작가 지망생과 작가 에이전시 사장의 이야기라는 소개문만 보고 추측한 것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이런 대비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아니면 인턴 같은 류 아니겠습니까)
실화라는 것도 샐린저 이야기가 나올 때서야 의심하고, 크레딧에 책 이름이 나와서야 알았습니다. 책이 베스트셀러여서 다들 아는 거라 생각한건지 실화 배경이라는 자막도 없었네요.
작가 지망생인(일단 잡지에 기고하며 등단도 한) 조안나는 고향을 떠나 도시에 정착하면 영감을 줄만한 자극도 많이 받고 작가로서 이름을 알릴 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친구 집에 눌러앉고, 돌아가지 않기 위해, 이 도시에 정착하기 위해 글과 관련된 회사를 알아보다 작가 에이전시에 취직합니다.
아마도 대학을 갓 졸업했을 그는 등단한 작가라는 자부심, 유명 작가를 만나고 통화할 수 있는 기회, 고전도 많이 읽었고 글 보는 눈도 좋고 출판사 특성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걸 자랑하며 성공한 에이전트인 사장으로부터 인정받으며 샐린저에게 보내진 팬레터에 답장을 쓰는 (주제넘는다란 말 밖에 할 수 없는) 짓을 범할 정도로 차츰 우월감에 젖어갑니다.
동시에 작가라면서 글 한 줄 쓰지 못 하고, 작가를 못 알아보고 작품의 메시지를 과해석한 거 같다는 식의 말을 하고, 전세계 많은 이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본인의 담당인 작가의 책 한 권 읽어보지 않은채 자신의 소설을 완성한 애인을 질투하고 작가가 되고 싶은게 아니라는 친구를 힐난하며 열등감을 터트립니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 꿈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가까운 곳에서 일해보고자 시작한 일은 의외로 성미에 맞고 재능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너무 가까운 곳에 있는 나머지 운 좋게 작가로 성공한 이들이 자꾸 눈에 보이고 내가 지금 일이 재밌긴한데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던 일인가 의문이 듭니다. 난 이렇게 일상에 매몰되어가는가? 내 글 쓰기를 포기해가며?
운이 좋았다 생각했던 이들이 사실은 매일 매일 시간을 들이고, 스스로가 보일 정도로 쏟아부어 타인이 그를 위해 헌신하고 독자를 뒤흔들게 만드는 글도 있음을 깨달았을 때에야 조안나는 선택을 합니다.
조안나 래코프가 실제로 에이전시에서 보낸 1년에 바탕한 영화는 익숙치 않은 일에 실수하고, 자신감에 찼다가 스스로의 부족함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일을 만들어 해보고, 프로젝트를 완수하며 우월감과 열등감이 뒤섞인 미성숙한 어른의 성장을 보여줍니다. 딱 이 나이대의 관객이라면 극히 공감하며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더 많은 픽션을 담을 수록 조안나의 글에 담긴 본질에 더 가까워졌다"는 말처럼 원작이나 실화보다는 픽션이 상당수일 거 같은데, 아마 남아있지 않을 팬레터 부분들이 창작이라는 이야기 아닐까 합니다. (영화에서처럼 조안나가 빼돌려 보관한 게 있을지도 모르지만) 원작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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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가끔 창작물에서 특정 캐릭터가 그 책을 좋아하며 주인공의 영향력을 받았다는 묘사로 그의 아웃사이더 경향, 외로움 같은 것들을 표현하는 경우를 보는데
그 캐릭터를 창작해 낸 작가 본인이 그와 비슷한 성격이라면, 그 캐릭터에 너무 공감한 나머지 '늘 이해받지 못 하고 남도 날 이해 못 했는데 난 홀튼을 이해해! 샐린저 작가님도 날 이해하시죠? 그 캐릭터를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하셨던거죠?'라며 본인은 한 통 보내겠지만 30년 넘게 전 세계에서 그런 편지가 쏟아지면 정말 괴로울 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종의 홍대병같은 거 아닐까 하는 너무 내밀하게 자기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자의식과잉의 팬레터들)
이 정도로 영향력을 가진 작품이 있을까 싶은데 작품 자체가 성공하고 그 세대를 상징하는 작품들은 여럿있지만 이렇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어떤 전형을 만든 작품은 지금에선 거의 없을 거 같네요.
[마이 샐린저 이어]라는 원제만큼 잘 어울릴 이름이 없는데 한국에서 샐린저가 다른 나라만큼 인지도가 있는 편이 아니어선지 [마이 뉴욕 다이어리]라는 제목이 되었습니다. 출근 기록이라서 쓴 거 같은 다이어리보다는 팬레터가 영화의 중심 소재이고 연출에 있어서도 상당히 공을 들인 만큼 레터라는 단어를 가져오지 않은 이유도 궁금하네요.
제목에 뉴욕이 들어간 것도 의아할만큼 도시를 중요하게 조명하진 않는데 개인적으로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되게 신비하게 느껴졌습니다.
95년의 이야기, 세기가 달라지고 30년에 가까운 시간 차이가 있는데도 도시의 모습도, 사람들의 모습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가 않아요. 고풍스러운 동시에 첨단을 달리면서 외양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이 대도시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무색해 보입니다.
전자기기만 구식일 뿐 요즘 배경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스타일도 우아합니다. 역시 뉴욕 배경이었던 [타인의 친절]보다 더 최신이라 해도 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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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안내문을 달 수가 없어서인지 오늘 줄이 둘이었다 하나였다 도로 둘이 됐다 하면서 새치기도 있었는데 (제 뒤에 있다가 앞으로 이동한 분이 제 선호석에 앉아계셔서 보는 눈은 다 똑같구나 싶어서 화나기보다는 웃음이 나왔지만)
오늘처럼 매체별로 따로 좌석을 줄거라면 안내종이를 가운데 말고 양끝에 붙이거나 스탠딩 pop를 쓰면 좋겠어요. 티켓받으시는 분들이 딱 가릴만한 위치에 붙여놓았는데 안내는 없으니 새로 오는 분들마다 줄을 어디에 서야 하는건지 헤매더라고요.
그리고 매번 줄 서 계신 분은 안심콜 먼저 해달라고 하시는데 항상 안내판을 책상 한 가운데 두니 줄 서 있으면 번호도 안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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