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탄> 개인감상평 및 해석 (장문, 스포있음)
"금속에 납치되었던 자가 다시 살의 세계로 돌아오기까지.
살에 대한 집착을 가진 이가 이를 인정하고 앞을 마주하기까지."
살과 금속, 점화와 소화, 자기파괴와 재생.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기이한 스토리텔링을 택하면서도 감각적으로 뚜렷히 대조되는 심상들을 배치함으로써 강렬한 메시지를 건져올리는, 튼튼한 고마력엔진과도 같은 영화.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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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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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본성이 어땠는지는 벌써 요원해져버린 문제이다. 이미 그녀는 금속의 세계에 포합되어버린지 오래였으니. 살갗이 닿으면 구역질을 하며, 온기를 안겨줄 광활한 육체가 있어도 한 톨의 차가운 철조각만을 탐닉하는, 이미 그녀는 그런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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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불시착한 외계인처럼 그녀는 피와 살덩이가 창궐하는 이 행성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몸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몸에 뿌리내린 핏덩이마저 부정하려 들지 않았는가. 그런 그녀가 택할 수 있었던 최선은 자신의 외형을 주조틀에 우겨넣어 태우고 부수며 붕괴시켜, 본질을 숨기고 살의 세계에서 조용히 숨어사는 생존법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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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그녀는 자신과 정반대편에 서있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혈육을 잃은 상실감에 살갗의 온기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 갈구하던 남자 뱅상. 그의 집착은 살과 금속을 녹이는 그 어떠한 화염도 소화시켜버릴 정도로 강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혈육마저 태워버릴 정도로 강했던 알렉시의 폭력적인 불꽃마저도 그를 이길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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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그녀에게 있어선 일생일대의 천적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가르쳐주는 교사이기도 했다. 가는 금속 막대기를 매개로 삼아야지만 타인의 육체를 견딜 수 있었던 그녀의 두 손은, 어느새 뱅상으로 인해 타인의 손, 타인의 목, 타인의 심장을 향할 수 있게 되었다. 멀리서 관망하기만 했던 살덩이들의 춤사위에도 자연스레 어깨를 부딪히며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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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또한 그녀를 만난 이후로 변화를 맞이했다. 돌아온 아들이 낯선 이일지도 모른다는 의혹들을 모른체하며 손에 닿는 모든 온기에 아들의 망령을 덧씌우던 남자는, 이제는 자신의 집착을 인정하고 눈앞에 있는 이를 분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어쩌면 알렉시를 처음 본 순간부터 자기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허기진 고독을 달래려 이내 모른체하다가 이제서야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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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가져다주는 환희는 알렉시의 모험심으로 인해 깨지고야 만다. 살덩이들 사이에서 조용히 부대끼며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답답한 거푸집을 벗어던지고 처음으로 자신의 본성대로 춤을 추기로 선택한다. 뱅상이라면 그런 모습마저도 사랑해주리라 확신했던 까닭이었을까? 허나 기대와도 다르게 뱅상은 자신의 실낱같은 환상을 깨뜨리는 알렉시의 춤사위에 화답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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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다시 세계로부터 거부당하는 아픔을, 남자는 아들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현실에서 비롯되는 환상통을 제각기 느끼지만, 이들이 개별적으로 경험하는 고유한 아픔의 순간들은 영화적으로는 묘하게 포개어지며 복통의 형태로 유사하게 표현된다. 이후 알렉시가 출산을 강행하는 모습과, 뱅상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이는 모습에서 나타나는 자기파괴적인 면모에서마저도 어느새 둘은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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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동질감을 서로 예감이라도 한걸까. 자기 파괴의 마지막 문턱에서 둘은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서로를 향한다. 그리고 새로이 태어날 가련한 생명을 위해 함께 유대하는 순간에서야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각자 목도한다. 알렉시는 이제 타인의 살갗을 스스럼없이 만질 수 있게 되었으며, 뱅상은 아들의 망령에서 벗어나 눈앞에 있는 이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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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상의 품에서 갓 눈을 뜬 아이는 축축한 울음소리와 따스한 살갗을 가졌으면서도 그 단단한 뼈대는 한기로 가득차있었다. 금속의 세계에서 비롯된 단절로 인해 아직 수복해야할 피해가 이 새 생명에게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더 늦기 전에 되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예감이 든다. 이번만큼은 우리에게서 멀어졌던 이를 다시금 우리 세계로 불러올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레알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