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스포] '라스트 나잇 인 소호' 간단 리뷰
1. 오래전 수습기자로 일하던 시절, 친하게 지내던 형사아저씨와 경찰서 구석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형사아저씨는 이런저런 썰을 풀다가 "우리나라 모텔급 숙박업소 중 절반 이상의 객실은 누구 하나가 죽은 곳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 아저씨가 뭣모르던 햇병아리 기자를 겁주려고 한건지 몰라도 이래저래 주워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그것은 꽤 신빙성이 있는 말이었다. 잠시 뒤 이 형사는 "너무 쫄 필요는 없다. 어차피 사람 죽은 객실은 대부분 기차역 근처에 모텔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더 무서웠다. 어느 대도시나 기차역 근처에는 숙박업소가 많다. 외지인이 드나드는 관문인 만큼 여러 사람과 사연이 머무는 곳이다. 어떤 사연은 사람의 목숨을 결정짓기도 한다. 기차역 근처 모텔에 누군가 자살했거나 살해당한 객실이 많다는 이야기는 도시괴담일 수 있지만 꽤 설득력이 있다.
2. 나는 지금도 거울을 무서워하는 편이다. 공포증 수준은 아니지만, 가끔 근처에 거울이 있으면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특히 세수를 하다가 무심코 거울을 쳐다보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서 기척이 느껴지곤 한다. 거울을 무서워하게 된 원인은 몇 가지가 있다. 김성호 감독의 2003년 영화 '거울속으로'는 훌륭한 기폭제가 됐지만, 그 영화가 시작은 아니다. 거울을 무서워하게 된 데는 2003년보다 더 이전,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공포특급'이라는 유명한 괴담집이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였다. 짧은 글 수준의 괴담을 모아놓은 책으로 간편하게 읽을 수 있는 무서운 이야기였다. 이 괴담집에 등장하는 주요 소재는 학교, 엘리베이터, 거울, 화장실 등 일상적인 것이었다. 나는 그 중에서 엘리베이터와 거울을 무서워했다(특히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거울은 최악이었다). 쫄보였던 나는 당시 우리집이 아파트 1층에 있는 게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덕분에 엘리베이터에 대한 두려움은 꽤 빨리 극복했지만, 거울은 지금도 조금 무섭다.
3. 2021년 12월 2일 밤 11시쯤,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라스트 나잇 인 소호'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풍경은 예전과 조금 달랐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도시에는 거울이 참 많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내가 사는 서울 한복판도 마찬가지였다. 집으로 향하는 익숙한 밤거리에는 그날따라 유난히 많은 거울, 혹은 유리창이 눈에 띄었다. 도시에는 거울이 참 많다. 자동차의 사이드미러, 건물 외벽 유리, 백화점의 진열코너 등. 비단 '거울'이라고 정의내려진 것뿐 아니라 '유리창'이라고 부르는 것들 역시 거기에 비친 상을 반사하기 때문에 사실상 '거울'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현대에 쓰이는 거울은 모두 유리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둘의 개념은 같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도시괴담에서 시작한다. 이는 구체적으로 실체가 존재하는 괴담은 아니지만, "도시는 무서운 곳이다"라는 추상적인 두려움이 반영된 괴담이다. 그 괴담은 도시에 가장 많은 '거울'과 만난다. 그 시너지 효과는 영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4. '라스트 나잇 인 소호'에서 거울은 특별하다. 현재의 주인공 엘리(토마신 맥켄지)가 과거와 연결하게 되는 통로가 거울이다. 거울은 엄밀히 따지면 '벽'이다.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아닌 이상) 누구도 거울을 뚫고 지나갈 수 없다. 즉 도시에 널린 수많은 거울은 도시라는 거대한 공간에 깔린 단절을 의미한다. 이야기에서 엘리는 기숙사 룸메이트 조카스터(신노브 칼센)와 빠른 시간에 단절된다. 그리고 엘리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려는 존(마이클 에이자오)과도 엘리는 처음에 벽을 닫는다. 이야기는 현재 공간에 깔린 도시 속 단절의 원인을 과거에서 찾는다. 과거의 샌디(안야 테일러 조이)는 가수가 되고 싶어한다. 이를 위해 매력적인 남자 잭(맷 스미스)에게 접근하지만 잭은 그녀를 이용한다. 꿈을 품고 도시에 도착한 샌디에게 도시는 화려한 얼굴에 가려진 민낯을 드러낸다. 이는 엘리가 런던에 처음 상경에 마주한 민낯과도 조금 닮아있다. 도시의 수많은 거울은 공간이 단절돼있음을 의미한다. 그 단절이 엘리와 샌디에게는 통로가 돼있다.
5. 엘리에게 처음부터 거울은 통로였다. 런던에 도착하기 전에도 엘리는 거울을 통해 죽은 엄마의 모습을 본다. 본래 거울은 사물의 모습을 비추는 상이지만, 엘리에게 거울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지 않는다. 엘리에게 거울이 비추는 상은 '공간의 현재'가 아니라 '공간의 기억'이다. 런던에 오기전 살던 집에서 거울이 비추는 공간의 기억은 어머니의 모습이었지만, 도시에서 공간의 기억은 샌디가 겪은 끔찍한 일들이다. 그 기억은 도시 곳곳에 유령처럼 머물러있다. 영화 내내 도시의 사람들은 "도시에는 많은 일이 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도시에는 거울이 많다. 엘리의 눈에 비친 도시라는 공간의 기억은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도시는 많은 사람이 모이고 돈이 도는 곳이다. 그 가운데는 존과 같이 선량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탐욕스런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탐욕스런 사람에게 상처입은 누군가도 있을 것이다. 필요에 의해 사람들이 모이고 형성된 도시라는 공간은 희망적일 여지가 많지 않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도시에 대해 대단히 비관적이다.
6. 이를 의식하기라도 한 듯 마지막 장면은 지나치게 희망적이다.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성공적으로 도시에 안착한 엘리의 모습은 너무 편안해 보여서 엘리의 꿈이라고 생각해도 믿을 정도다. 만약 그 장면이 엘리의 꿈이라면 지금쯤 엘리는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꿈이 아니라면 마지막 장면은 엘리와 교감을 이룬 샌디가 등장한다. 샌디는 사연이 많은 인물이지만, 결과적으로 연쇄살인을 저지른 '한 많은 여인'이다. '상을 비추는 물건'인 거울에 엘리를 비추자 거기에 샌디가 나타났다. 엘리와 샌디는 동일시돼버렸다. 영화 내내 엘리의 도시생활은 순탄치 않았음을 보여줬다. 이제 엘리는 샌디만큼 독하게 런던에서 살아남으려고 할 것이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의 마지막 장면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무시무시한 엔딩장면이 될 수 있다.
7. 결론: 사람들이 모인 도시에는 여러 가지 일이 생긴다. 위기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는 훈훈한 일과 가여운 사람을 등쳐먹는 악랄한 일이 공존하는 게 도시의 얼굴이다. 한 학교 안에 조카스터와 존이 공존하고 그들이 공평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것은 도시의 실체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의 진짜 주인공은 여러 사람들이 머물고 여러 이야기를 품은 런던 그 자체다. 한 여인의 존엄성이 짓밟혀도, 여러 사람들이 끔찍하게 살해당해도 도시는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누군가가 죽더라도 도시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은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마치 침묵하는 신(神)처럼 모두에게 공평하게 무관심하다. 그것은 런던이나 서울이나 마찬가지다.
추신) 토마신 맥켄지는 다른 건 몰라도 공포영화에는 안 어울린다. 비명소리가 공포영화와 어울리지 않는다.
엔딩 장면이 섬뜩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