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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스포) [라스트 나잇 인 소호] 피어오르지 못한 꿈

창이 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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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편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 포함)

 

 

 평소 '꿈'이란 단어가 지닌 다중적 의미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사전에 검색해 보니 세 개의 뜻이 나온다. 1) 잠자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 2)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3)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 상태의 의미와 긍정의 의미, 그리고 부정의 의미 모두 포함하고 있는 이 단어는, 현실지향적이기도 하면서 미래지향적이기도, 때론 과거지향적이기도 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잠잘 때마다 무작위로 나타나는 정신 현상은 '현실의 꿈'이고, 원하거나 바라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미래의 꿈', 그리고 지금의 처지를 무시한 채 바랄 수 없는 허황에 빠져사는 것은 '과거의 꿈'으로 비쳐지는 거처럼 말이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신작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이러한 꿈의 다층적 의미를 넘어, 시간적 의미까지 함유하는 영화다. 이 영화 속 '꿈'의 의도에는 '정신 현상', '이상', '허황',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가 온통 뒤섞여 있다.

 

 주인공 엘리(토마신 맥켄지)는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이지만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 그의 집 거울에는 어릴 적 돌아가신 어머니의 형상이 남아있으며, 요즘 음악보다 옛날 음악을 좋아하는 대학교 새내기다. 상경 첫 날 자신이 만든 복고풍 옷을 입고 와 동기들의 비웃음을 샀고, 그렇게 엘리는 요즘 애들과 맞지 않아 기숙사를 나와 오래된 하숙집에 머물게 된다. 밤마다 바깥 간판의 네온 사인이 엘리의 방을 비추곤 하지만, 엘리는 그런 불편함도 감수한 채 옛 방에 정감을 느낀다. 귀신, 고전, 복고, 구식에 익숙한 엘리는 미래를 위해 런던에 오고, 현재의 패션 대학에서 전공을 익히지만, 되려 런던의 옛스러움에 흠뻑 빠지고 만다. 그리고 그녀는 옛 하숙집의 잠자리에서, 실제 런던의 과거와 조우한다.

 

 60년대의 주인공 샌디(안야 테일러 조이)는 가수의 꿈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꿈을 위해 가장 잘 나가는 클럽의 매니저에게 스스로를 어필한다. 매니저 잭(맷 스미스)은 샌디의 당찬 태도와 미모에 반하여 그녀를 지원해주기로 하고, 그렇게 둘은 서로의 매력에 빠져 사랑을 나눈다. 샌디는 엘리하곤 다르게, 과거보다 미래를 바라본다. 자신의 본명인 알렉산드라를 버리고 애칭인 샌디를 사용하며, 지금 잘나가는 가수인 실라 블랙은 뒤로 둔 채 자신이 '제2의 실라 블랙'이라고 치켜세운다. 미래를 위해서 뭐든 할 각오가 되어있는 샌디는, 잭이 사주한 작은 클럽의 주인장에게 공연을 선보이고, 그렇게 공연계에 첫 데뷔를 준비하게 된다.

 

 엘리는 과거의 꿈을 꾸고, 샌디는 미래의 꿈을 꾼다. 하지만 각자가 속한 현재라는 자리에 말미암아, 각자의 꿈은 현실적으로 닿을 수 없다. 엘리의 꿈은 이미 일어난 사실이기에 개입할 수 없고, 샌디의 꿈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기에 돌이킬 수 없다. 엘리의 과거를 향한 순정은 드러나는 진실에 의해 점차 비애로 변해가고, 샌디의 미래를 향한 희망은 연예계의 남성성에 의해 점차 휴지조각이 되어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꿈이 지니는 어떤 잔혹한 속성이다. 엘리의 꿈은 엘리에 의해 바꿀 수 없다. 그건 통제 불가능한 정신 현상이자 고정불변의 과거로서 주체자의 의지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샌디의 꿈은 샌디에 의해 실현될 수 없다. 그건 꿈(가수)이 지니는 상품성이 꿈의 수요자인 남성성에 의해 작동하면서 주체자의 의향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저 지금보다 좋아 보일 줄만 알았던 엘리의 꿈은 잔혹극이었고, 그저 지금보다 나을 줄로만 바랐던 샌디의 꿈은 치정극이었다. '정신 현상'으로서의 꿈과 '이상'으로서의 꿈은 모두 의도된 바와 다른 '허황'으로 이어진다.

 

 런던은 모든 것이 가능한 도시다. 어느 사람이든 만날 수 있고, 어느 이상이든 실현될 수 있으며, 동시에 어느 사건이든 발생할 수 있고, 또 어느 봉변이든 당할 수 있다. 무엇이든 빛날 수 있는 곳, 또 무엇이든 질 수 있는 곳.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영화 속 런던에서, 관객이 마주하는 것은 어떤 형상들이다. 시내를 수놓는 무수한 네온사인은 갖가지 사람들을 비추며 밝음의 형상을 만들지만, 빛 너머 그림자 속에 갖가지 사람들이 배회하며 어둠의 형상도 이끌어낸다. 희망과 절망의 교차로 사이, 꿈의 도시 런던에는 희극과 비극이 교류한다. 특히 영화는 꿈의 당사자조차 어찌할 수 없는 꿈들을 혼합하면서, 강렬한 빛 너머의 그림자에 더 주목한다.

 

 영화의 말미에 다다를수록, 영화 속 꿈들은 결국 피어오르지 못한다. 엘리가 목격한 과거의 꿈은 경찰에게 증명받지 못하고, 샌디가 바랐던 미래의 꿈은 막다른 종착지에 다다르고 만다. 각자의 부서진 꿈의 파편 한가운데, "Save yourself!"라 외치는 누군가의 말은 보는 이의 마음을 미어지게 한다. 이것이 꿈의 무용성, 혹은 무가치성을 말하는 영화는 아닐 터다. 누구나 꿈을 꿀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시대에나 꿈은 존재했다. 개개인과 시대를 넘어, 모든 꿈은 소중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꿈이 성공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많은 꿈이 실패한다. 어느 꿈('정신 현상')은 비범하기보다 기이하고, 어느 꿈('이상')은 아름답기보다 끔찍하며,  어느 꿈('허황')은 낭만이기보다 공상이다. 특히나 많은 꿈들이 발아하는 런던일수록, 많은 꿈들이 상했을 거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그렇게 실패한, 상해 버린, 피지 못한 꿈들을 회고한다. 더 이상 미화될 수 없는 과거의 꿈을, 더 이상 성립할 수 없는 미래의 꿈을 기억하며 말이다. 그렇게 좌절의 기억을 가슴에 품은 채,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을 사는 엘리는 패션학과 전공생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녀의 덧없는 행보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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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나잇 인 소호>의 런던에서 샌디의 꿈을 마주 본 엘리에게서

<라라랜드>의 LA에서 이모의 꿈을 마주 본 미아가 겹쳐보였습니다.

누군가는 사랑에 배신을 당해서 꿈이 죽어버렸고 누군가는 사랑 덕분에 꿈을 이룰 수 있었지만 그 사랑을 놓을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들.

수많은 사람들이 꿈을 안고 왔다가 사라져가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각자의 방식대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댓글
01:52
21.12.03.
profile image
창이 작성자
셋져
'라라랜드'가 꿈과 사랑의 양립 불가능성을 얘기했다면,
'소호'는 꿈과 사랑 모두가 절멸하는 이야기라 더 가슴이 처연해 지는거 같아요.
이게 전반부에 60년대 런던의 흥취에 흠뻑 빠지고 난 이후의 감정이라 더 대비가 되는 거 같고요.
영화 보는 중에는 한없이 뜨거워지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없이 가라앉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댓글
02:12
21.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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