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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엔칸토: 마법의 세계] 없는 것을 찾지 않고, 있는 것을 제대로 본다

창이 창이
1645 1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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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편에 대한 스포일러 포함)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신작 '엔칸토: 마법의 세계'의 특이한 점이라면, 이게 모험담보다 탐구담의 성격을 띄고있단 사실이다. 주인공 미라벨은 가족의 비밀을 찾기 위해 어딘가로 떠나는 게 아니라, 집 안을 누비고 가족 구성원을 심문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영화 속 무대는 마드리갈 가정과 그 마을에 한정될 뿐, 그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다. 이같은 한정된 배경을 보완하기 위해, 영화는 규모가 아닌 색채에 볼거리를 집중한다. 집에게 생동감을 불어넣고, 가족에게 다양한 능력을 부여하며, 그 능력에 맞는 다채로운 방(공간)을 보여주는 걸로 말이다. 중요한 건 이같은 비주얼이 무엇을 지향하냐는 점이다. 영화의 무대가 한 가정으로 한정된다는 건, 결국 '엔칸토'의 핵심이 마드리갈 가족 그 자체임을 암시한다.

 

 마드리갈 가는 기적에서 비롯됐다. 외부의 세력으로 마을이 침입당할 때, 신비의 마법이 외세를 몰아내고 마을을 지켜냈다. 마법이 선택한 마드리갈 가는 대대로 자신만의 마법을 물려받았으며, 그들의 마법은 대대로 마을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미라벨에겐 마법이 없다. "알고보니 숨겨진 마법이 있다"라던가, "마법 대신 다른 힘을 지니고 있다" 따위의 비밀도 없는 채, 그에게는 정말 어떤 특별한 능력도 없다. 혹여나 마법의 대가 미라벨에서 끊어진 줄 알고, 집주인인 할머니는 노심초사했고, 다음 마법의 전수자인 사촌 안토니오는 불안해 했다. 그런 안토니오를 미라벨이 응원해 주고, 덕분에 그는 마법의 문 앞에 당당히 서 동물과의 소통 능력을 전수받았지만, 한편으로 미라벨은 마법에서 자신만 소외당한 거 같아 속상함을 느낀다. 지나간 기회를 한탄하며 미라벨은 기적을 바라지만, 마법은 그에 응답하지 않는다. 마치 영화가 미라벨에게 어떤 비밀도 부여하지 않은 거처럼, 영화는 미라벨이 왜 마법에서 소외되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사실 마법의 영역을 굳이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자칫하면 어색해 보이기 십상이다. 설명할 수 있는 마법이라면, 그건 더 이상 신비롭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없는 것에 골몰하지 않고 대신 있는 것에 몰두한다. 이를테면 미라벨에게 없는 비밀을 궁구하지 않고, 가족한테 있는 마법의 이면을 재고하는 것이다. 마법의 터전인 까시타(집)에 생기는 균열이라던가, 언니 루이사나 이사벨라가 마법한테 느끼는 감정이라던가, 그리고 가족 중 유일하게 자취를 감춘 삼촌 브루노의 행적이라던가 말이다. 특히 상술한 세 가지는 가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고 있는데, 표면적 타임라인에 녹아든 기저의 역사는 마법의 뒤바뀐 위상을 보여준다. 루이사의 괴력에서 비롯되는 압박감, 이사벨라의 외양에서 비롯되는 부담감, 브루노 삼촌의 예지에서 비롯되는 불가해함은 '가족'이란 대의에 의해 가려졌는데, 이는 가족원의 존재보다 마법의 존재가 더 중요해지는 형세를 반영한다. 본래 가족을 지키기 위해 탄생한 마법이, 후에 마법을 지키기 위해 가족이 희생하는 거로 바뀐 건데, 이처럼 역전된 마법의 의도는 '마법에 걸맞는 가족'이 돼야한다는 아부엘라 할머니의 오해에서 비롯된다. 마법으로 말미암은 가족 내 불안은 곧 마법의 불안으로 직결되고, 이는 까시타의 균열으로 재현된다(꽤나 직접적인 비유인데, 직관적인 애니메이션에 더없이 적합하다). 불안은 드러나지 않을 뿐 엄연히 그 자리에 있고, 균열은 미라벨의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까시타의 균열을 집주인인 할머니가 모를 리는 없고, 그렇다면 균열을 발견한 이는 왜 미라벨이어야 했을까? 그건 그가 가족 중 유일하게 마법이 없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법을 지닌 이와 마법이 없는 자의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다. 마법이 있는 자는 마법으로 비롯된 긴장이 스스로의 나약함 때문이라 믿는다. 즉, 마법과 자아 간의 관계성에서 문제를 찾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는 거다. 반면 마법이 없는 자는 마법이 주는 압박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보다 객관적인 시선에서 마법과 개인 간 관계를 볼 수 있다. 즉, 이건 마법 혹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이 마법을 어떻게 인지하고 수용하느냐의 문제다. 타고난 마법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은 마법이 자신을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옭아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같은 개인의 불안은 결코 외부와 무관하지 않으며, 되려 외부의 기대가 마법과 개인 간 불화를 키우고 만다. 마법은 그 자체로 신비에서 내려온 gift(재능, 선물)인데, 이것이 duty(의무, 직무)가 되는 순간 마법은 개인에 우선된다. 마법을 지닌 이는 자신에게 내려온 gift에 혼란을 느낄 지언정 어떠한 의심도 품지 않는다. 하지만 gift가 없는 미라벨은 그것에 의심을 품는다. 최소한 마법에 대해서 미라벨은 제3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엔칸토'는 근래의 디즈니 애니 중에 대단히 소박한 주제를 다루지만, 그 깊이가 얕다고 치부할 순 없다. 상술했듯 마법을 재능에 비유하고, 균열을 불화에 비유하면, 이 가족의 이야기는 현실과 굉장히 밀접해진다. 영화는 특출난 재능이 없는 자가 가족한테 받는 차별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특별한 재능을 지닌 자가 가족한테 받는 강박을 표현하는데, 어느 쪽이든 선천적 원인이 후천적 결과를 부르는 부조리를 양측에서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영화는 "실존은 본질에 앞서는가?"라는 철학자 샤르트르의 논제를 인용하는데, 만일 관객이 마법으로 이뤄진 가족에서 마법을 받지 못한 미라벨의 존재 의의에 유념해서 관람한다면, 영화의 주제와 점차 맞닿게 될 거다. 개인적으로 '엔칸토'는 보편적 주제와 특수한 소재가 또 한번 시너지를 일으키는 중요한 영화적 사례로 남았으며, 또 이토록 내밀한 이야기를 환상적으로 표현하는 디즈니의 마법에 다시금 감탄한 순간이었다. 특히나 극중곡이 홀로 돋보이지 않고 서사의 흐름에 제대로 녹아들며, 동시에 인물의 심리를 제대로 부연하는, 꽤 모범적인 뮤지컬로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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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와.... 정말 멋진 리뷰네요!
전 희안하게 만족도가 높진 않았지만... 주제의식은 꽤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에 디즈니식?으로 마무리해서 급실망을...^^;;)

댓글
22:08
21.11.28.
profile image
창이 작성자
Nashira
저도 마무리는 좀 아쉽긴 했어요 ㅎㅎ
때로 가족 간 갈등이 손쉽게 풀리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쉽게 해결더라고요.
댓글
22:11
21.11.28.
profile image
창이

리뷰 작성하면서 내용중에 창이님 글도 링크 걸었는데... 혹 불편하시면 말씀해주세요!
https://extmovie.com/movietalk/70713884

댓글
01:32
21.11.30.
profile image 2등

섬세함과 지식의 깊이가 녹아든 후기네요.
특히 미라벨의 남다른 시선이 와닿았습니다. 무언가가 있을 때는 그것의 존재를 느끼기가 어렵지만 사라지거나 없으면 비로소 보이지 않습니까. 

 

말씀처럼 갈등 해소가 너무 빨리 됐던 점은 저도 아쉬웠습니다. 마법으로 인한 가족 간 갈등 해소 부분을 조금 더 풀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예요. 강물에 가더니 갑자기 내 잘못이다 그러면... 후반부에 영화가 너무 휙휙 끝난 감이 없잖아 있는 것 같습니다.

 

댓글
22:17
21.11.28.
profile image
창이 작성자
우주비행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전 그 강물 장면 보고 든 생각이, 싸울 때는 절대 자기 잘못 인정 안하다가, 맘이 수그러들면 잘못을 뉘우치는 전형적인 부모상이 떠올라서… ㅋㅋㅋㅋ 급전개가 아쉬우면서도 이해는 가는 장면이었습니다.
댓글
23:18
21.11.28.
profile image 3등
아는만큼 보인다 이말이 딱 와닫는 리뷰에요!
요즘 자꾸 시누이 모드로 디즈니애니를 보는거같아서 두번째 관람엔 그냥 편안히 즐기고싶네요!
댓글
22:32
21.11.28.
profile image
창이 작성자
석갈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차 관람 때는 즐겁게 보실 수 있으시길…!
댓글
23:21
21.11.28.
profile image
와 제가 느낀 감상이 이렇게 멋진 리뷰로 나올 수가 있다니 감탄만 나오네요. 잘 읽었습니다 :)
댓글
22:45
21.11.28.
profile image
창이 작성자
김프프
과찬이십니다 ㅠㅠ 이번 글은 쓰는데 조금 힘들었네요
댓글
23:21
21.11.28.
profile image
창이 작성자
나는야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댓글
13:49
2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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