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네트] 영화를 연극처럼(스포주의)
코돌비 익무 시사 후기 뒤늦게 올려봅니다.
돌비 비전이나 애트모스를 들여오진 않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코돌비 스펙이 좋아서인지 그래도 타상영관보다 좋은 환경에서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티켓과 함께 받은 레터형 전단지는 일반 극장에서 배포하진 않아서 고이 모셔두고 있어요. 노오란 색감이 예쁩니다.
아네트는 제가 본 레오 까락스 감독의 두 번째 영화입니다. 마침 최근 서울극장 마지막 기획전으로 <홀리 모터스>를 본지 오래 지나지 않아 비교하며 볼 수 있었는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홀리 모터스가 좀 더 좋았습니다.
홀리 모터스를 보고나서 이런 평을 메모에 적어두었습니다.
"삶이 연극일까, 연극이 삶이 되어버린 걸까"
많은 분들이 아네트를 보고 오페라 같다는 감상평을 적어주셨던데 저는 오페라에 관해선 문외한이라 그런지 제게는 홀리 모터스도 아네트도 연극처럼 느껴지더군요.(물론 연극도 잘 아는 건 아닙니다...😂)
영화라는 물리매체지만 관객들 앞에서 재생 없이 단 한 번의 쇼를 보여주는 연극 같았어요. 배우들의 연기 또한 어찌보면 이상하고 기괴해보일 수도 있으며 현실과는 동떨어진 "극화"된 연기처럼 보였고요.
1. 연극같은 느낌을 더해주는 오프닝, 엔딩 크레딧
이 영화가 영화적으로 특별하다 느껴지는 부분은 오프닝과 엔딩 크레딧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많은 시퀀스들이 그러하지만 오프닝과 엔딩 크레딧 시퀀스는 특히나 롱테이크 촬영을 아주 효과적으로 활용합니다. 노래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데 노래 가사를 보면 아주 직관적입니다. 시작할 때는 may we start 우리 시작할까요 시작할 거니 자리에 앉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하면서 손을 잡고 등장해서 각자의 수단(오토바이, 기사 딸린 차)으로 각자의 일터(스탠딩 코미디쇼 공연장, 오페라 공연장)로 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엔딩 크레딧 뒤에 삽입되는 장면은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산등성이를 내려오며 good night 잘 자요 우리 얘기는 모두 끝났어요 우리 얘기를 친구에게 가족에게 혹은 stranger에게 전해주세요 하면서 마무리하는 내용이지요. 내려오는 사람들을 아마도 드론(?)으로 부감 숏으로 찍은 것도 잘 가 라는 의미처럼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2. 인상적인 시퀀스, 올해의 장면
아담 드라이버는 <스타워즈>로 알게 됐지만 배우로서 인식한 건 <패터슨>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연기 잘한다는 인식은 있었으나 와 연기 미쳤네 했던 적은 없었는데 아네트에서 그 장면이 나왔네요.
아내를 죽였다고 말하면서 관객들에게 비난을 받는 시퀀스가 아니라 맨 처음 스탠딩 코미디 쇼를 하면서 관객들에게 환호를 받는 그 씬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장면 대본이 어떻게 쓰여있을지 정말 궁금했어요. 확실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게 없고 시시각각 바뀌어서 굉장히 어려운 연기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해내던데요. 여담으로 이 장면 촬영구도가 좋았습니다. 헨리 맥헨리의 쇼를 보는 관객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듯한 쇼트들이 헨리의 쇼를 더 실감나게 연출했죠.
그리고 올해의 장면, 지휘자 360도 회전 시퀀스입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장면들 때문인 것 같아요. 시, 소설, 음악, 드라마가 해낼 수 없는 영화만이 가능한 영역을 극대화시킨 장면들이요. 피아니스트였던 지휘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지휘를 하고 카메라는 지휘자를 중심으로 회전하다 excuse me a minute 을 외치면 빠르게 돌아가며 오케스트라를 비추고 그것의 반복. 감히 올해의 장면에 들어갈 수 있는 시퀀스라고 생각합니다.
3. 노래의 수미상관적 구조
저는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란 탓인지 시나 소설의 수미상관 구조에 희열을 느끼는데요. 드라마나 영화, 뭘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이 가로 세로를 완벽하게 맞춘 쇼트를 찍는 것에 집착하는 것처럼 저도 수미상관이 딱 맞아 떨어지는 것에 어느정도 집착해요. 이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 크레딧 시퀀스의 구성도 어떤 의미에선 수미상관이라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엄밀히 말하면 첫 장면에 나온 노래는 아니긴 한데요. 이 영화의 중요한 넘버이자 주인공 두 연인이 서로의 사랑을 공고히 하는 장면에서 나온 가사 we love each other so much
이 가사는 엔딩에서 아네트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 now you have nothing to love 으로 변주됩니다. 같은 멜로디에 정반대의 의미를 담은 두 가사가 재밌습니다.
4. 점점 커지는 헨리 턱선의 붉은 반점
헨리 턱선에 있는 붉은 반점은 처음엔 점처럼 작았지만 엔딩에서는 누가 봐도 놓치기 힘들만큼 거대해져있습니다. 영화 중간 중간에도 의도적으로 그의 턱을 조명하기에 반점이 중요한 장치라는 것을 누구나 의식할 수 있죠. 제가 느끼기에는 이 붉은 반점은 일종의 불안감인 것 같습니다. 헨리는 당대 최고의 오페라 가수인 안과 연인이 되고 결혼을 했지만 그가 과거 여성들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과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언제 들킬지 모르는 일이었죠. 그는 자신의 과오 때문에 불안감을 안고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 일로 안과의 관계가 틀어지자 그는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안을 살해하는 것으로 문제를 회피해버립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까지 속일 수 있는 뻔뻔한 인간은 못 되기에 안의 망령에 시달리고 그때마다 매번 술과 여자, 클럽 등의 유흥으로 문제를 회피하죠. 지휘자라는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도 역시 살인으로 도망칩니다. 그렇지만 그의 턱의 붉은 반점은 그가 숨기지 못한 진실이고 헨리가 과오를 쌓을 때마다 계속해서 커져갑니다.
5. 아네트 퍼펫
이 영화에서 아네트를 실제 아이가 아닌 퍼펫(엔딩신에 등장하는 진짜 아이 제외)으로 등장시킨 것이 재밌었는데요. 퍼펫의 의미에 대해선 모호한데 아직 gv 영상 등 감독님의 질의응답을 찾아보지 못해서 관련 얘기를 검색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퍼펫의 움직임이 꽤 진짜같아서 인상적이었는데 엔딩 크레딧을 쭉 보다 보니 퍼펫 조종사들의 이름이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한두명인줄 알았는데 대여섯명 그 이상의 이름들이 적혀있는 걸 보며 감독이 이 설정에 꽤나 공을 들였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요즘 리뷰 작성에 소홀했던 것 같아요. 오랜만에 긴 리뷰 써보았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한줄평: 영화를 연극처럼
별점: 4/5
추천인 7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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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너무 좋았어요.
홀리 모터스처럼 감독님이 시작을 알려주는것,
마지막에 이건 영화일뿐이라고 인사하는것,
연극같은 영화, 감정을 노래로 표햔하는것..등등
지휘자 장면 소름 돋았습니다.
정말 입이 떡 벌어지더라구요 ㅎㅎ
리뷰 잘보고 갑니다 🙏🙂
호불호가 세게 갈리길래 고민이 깊은데...
이 리뷰를 보니 엄청 신기한 경험일거 같아 또 호기심이 동하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