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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라스트 듀얼:최후의 결투] - 진실이 중요하지 않았던 현장

영사남 영사남
3039 1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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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은 거의 영화의 각본을 자기가 쓰지 않습니다. 할리우드 감독 중에 자신의 손으로 각본을 쓰지 않는 경우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지만 리들리 스콧은 40년 간 영화계에 활동하면서 자신의 각본으로 영화를 만든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 대신에 영상 연출에 힘을 쓰면서 멋드러지고 거장의 기품이 넘치는 장면을 매 영화마다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그래서인지 필모그래피 편차가 다른 거장들에 비해서 크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스타일을 맘껏 뽐내면서 인장을 드러냅니다. 이번 <라스트 듀얼>은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이 <굿 윌 헌팅> 이후 오랜만에 공동 각본을 작업하였는데 시나리오에서 느껴지는 이야기의 정밀함과 섬세함, 리들리 스콧 특유의 장엄하고 유려한 연출이 교합을 이루면서 스타일과 이야기를 동시에 잡은 중세극의 품위와 정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리들리 스콧은 이미 중세 시대를 그린 영화를 몇 편 연출하였고 그 중 <글래디에이터>는 오스카 작품상을 탄 적이 있는 만큼 현역 감독 중에서 사실상 중세극을 스케일 크게 만드는 몇 안되는 감독인데 <라스트 듀얼>은 이전의 중세극보다 스케일은 비교적 작습니다. 전투 장면도 얼마 안 되는데다가 폭이 크지 않습니다. 쟝과 자크의 마지막 대결도 힘이 넘치고 박진감 있지만 분량이 적죠. <라스트 듀얼>의 액션은 스펙타클이 아닌, 오직 인물의 관계나 이야기의 밀도를 넓히는 요소에 불과합니다. 물론 액션 연출은 훌륭합니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은 액션이 아닌,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영화는 세 사람이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서로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를 하는 구성으로 진행합니다. 이 분야로 대표적인 영화가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이죠. 하지만 <라스트 듀얼>은 마르그리트의 시선이 사건의 본질이라는 전제로 두고 쟝과 자크의 왜곡된 시선을 통해 당대의 여성을 이야기합니다. 결국 진실의 왜곡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영화는 명예를 중시하는 시대에서 힘을 잡은 남자와 그로 인해 자신의 뜻이 널리 내세우지 못하고 조용히 지내야 했던 여성을 보여주는데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14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당시의 여성상을 대사와 상황으로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유부녀를 강간한 남성을 강간죄가 아닌 재산침해죄로 처벌하는 것처럼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에 불과한 처신을 받았고 여성의 존재는 남성을 보필하고 피를 이어야 하는 역할이 중요하게 여겨 자주적이지 못하고 누군가를 위한 역할에만 머물렀어야 했습니다.

 

쟝과 자크의 마지막 결투는 형식뿐만 아니라, 주제적인 측면에서 특히나 인상적인데 진실을 밝히기 위한 방법으로 '결투 재판'을 하게 되는데 쟝이 지게 되면 덩달아 마르그리트의 주장도 거짓으로 판명되어 무고죄로 사형에 처하게 되는, 현대적으로 보면 굉장히 야만적이지만 당시에 과학 기술이 없었고 결국 진실은 하느님만이 아신다는 상당히 종교적인 방식으로 처리하게 됩니다.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결투 재판에 참여한 쟝과 자크도 결국 진실이 아닌 명예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쟝과 자크의 이야기를 본 우리들은 이 둘의 싸움이 마르그리트는 둘에겐 명분이었고 더럽혀진 영광과 빼앗긴 명예를 되찾기 위한 둘만의 자존심을 건 싸움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정작 가장 중요한 마르그리트는 이 현장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버리고 사람들은 진실보다 영광에 심취하며 마르그리트의 진실이 아니라 쟝의 승리에 열광합니다. 마르그리트는 살았다는 안도감보다는 허무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남성적인 시대에, 남성적인 방식으로, 남성적으로 해결한 이 현장에 진실이 중요한 사람은 마르그리트밖에 없었고 진실이 무엇이든 결국 중요하지 않았던 그 현장의 쓸쓸함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14세기를 배경으로 하였음에도 대사나 상황들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하였지만 현대적인 문법을 통해 현대의 사회상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가 철저했습니다. 재판에서 판관들이 마르그리트에게 치욕적인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장면은 지금도 낯설지 않는 불편함을 선사합니다.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쏟아지는 질문을 가장한 2차 가해들, 마치 그것들이 진실 요구인 것처럼 포장하여 또 다른 말로 피해자를 능욕하는 사람들, 중립을 지킨다면서 피해자의 아픔에 전혀 공감하지 않으려는 태도들은 그 시절에도, 현재도 우리 주변이나 엄청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내포하는 인터넷 등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권력으로 일어지는 성범죄는 오히려 피해자들을 갉아먹고 몰아내면서 또 다른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이는 마르그리트가 받는 재판과 다를 게 없죠.

 

개인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만든 게 한때 하비 와인스타인과 친하게 지냈고 그 문제에 있어서 자유롭지 않았던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이라는 게 놀랍기도 합니다. 또한 리들리 스콧은 <에이리언>과 <델마와 루이스> 등 오래전부터 페미니즘 서사를 적극적으로 만들었고 남성 캐릭터가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는 중세극에서도 비중 있는 여성 캐릭터를 만들기도 한만큼 그의 자세와 시선이 <라스트 듀얼>이란 영화를 매력적인 영화로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맷 데이먼과 아담 드라이버는 겉으로는 멋있는 척을 하면서 찌질한 본성을 드러내는 연기가 빛을 발했으며 특히 조디 코머는 마르그리트의 심리를 표현하는 연기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벤 애플렉은 기존의 연기와는 색다른 캐릭터를 보여주면서 재밌는 인상을 남깁니다.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현대의 관객들에게도 뼈저리게 느끼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영사남 영사남
46 Lv. 390510/4000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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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후기 잘 봤습니다.

댓글
영사남글쓴이 추천
22:31
21.10.28.
2등
이 영화 은근히 최고에요.
계속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감상 잘 읽었어요. ^^
댓글
영사남글쓴이 추천
23:02
21.10.28.
profile image 3등

각본가와 감독의 비하인드 스토리 만큼이나...
현대에도 (어쩌면 더) 의미있는 미투이슈를 중세를 배경으로 정말 처절하고 유려하게 담아냈더라구요. 
스토리와 미장센, 음악과 관객을 휘몰아치는 감정적인 흐름 모두 너무나 대단했던 영화였습니다. 
1~3장 주제에 대해서 해석해본 리뷰 소개드려봅니다. ^^
https://extmovie.com/movietalk/69578270

댓글
영사남글쓴이 추천
23:26
21.10.28.
profile image
깔끔한 분석이네요. 리뷰 잘 봤습니다 :D
댓글
영사남글쓴이 추천
01:06
21.10.29.
MichaelMyers
삭제된 댓글입니다.
01:57
21.10.29.
profile image
리뷰 잘 봤습니다~ㅎㅎ 이번주말에 꼭 봐야겠네요!
댓글
07:19
21.10.29.
profile image

좋은 리뷰네요 약간의 딴지를 건다면 로마시대는 중세로 안치고 고대로 칩니다 잘 읽었습니다

댓글
22:12
2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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