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필즈 '플레이그라운드' 초간단 리뷰
1. 블랙필즈라는 OTT는 처음 들었다. 숏폼 콘텐츠 위주로 한다니 아이디어가 좋다. 숏폼 콘텐츠야 유튜브가 꽉 잡고 있지만 좋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한다면 언더독으로써 충분한 경쟁력이 있어보인다. 몇 개의 콘텐츠 예고편이 소개됐다. 장르영화의 파격적인 특징을 살리면서 레트로 감성까지 느껴져 개인적인 취향을 자극했다. 매니아적인 소재와 연출이 돋보였지만, 영화리뷰 유튜버들이 좋아할만한 작품들이다. 소비자들에게 먹힐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블랙필즈가 준비한 숏폼 시리즈물 '플레이그라운드'를 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플랫폼의 아이디어를 콘텐츠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 (이제는 한물 간 감독) 뤽 베송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는 10부작 숏폼 드라마 '플레이그라운드'는 킬러 훈련소 '코트야드'에 들어가게 된 10대 소녀 에이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훈련소 내에서 우등생으로 손꼽히는 에이미는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되고 '코트야드'의 비밀을 파헤치게 된다. 평범한 듯한 킬러 액션물에 복잡한 인물관계가 개입하면서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진다. 이 시리즈의 장점은 딱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모두 엉망진창이다
3. 영화를 제작하는데 있어 돈이 없는 일은 흔하다. 특히 숏폼 콘텐츠(단편영화)는 아직까지 돈이 된다는 보장이 없어 투자를 받기도 더 힘들다. 커머셜 무비라도 찍을 게 아니라면 정말 거지꼴로 작품을 만들 수 밖에 없다. '플레이그라운드'에 대해 작품이 가난하다고 비난할 생각은 없다. 나는 '가내수공업 영화'를 좋아한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경고'나 '베니 러브 유' 같은 가내수공업 영화들을 아주 만족하면서 봤다. '경고'와 '베니 러브 유'는 자본의 한계를 아이디어로 돌파하고 있다. 기발한 소재를 가지고 기발하게 촬영해서 대자본의 영화가 시도도 못 할(굳이 시도도 안 할) 영역에 이른다.
4. 그러나 '플레이그라운드'는 대자본 영화들에서 봤을 익숙한 클리셰들을 몽땅 선보인다. 당장 '원티드'나 '다이버전트', '테이큰', '해리포터' 등 메이저 장르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여자 킬러'에 대해 페티시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되는 뤽 베송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눈치다. 그나마 익숙한 이야기는 회를 거듭하면서 흥미로워지지만, 성질 급한 사람들이 보는 숏폼 콘텐츠에서 그 '흥미로워지는 지점'까지 참고 갈 사람이 얼마나 될 지 걱정이다. 익숙한 클리셰와 '실습용 연기'는 참고 보기 힘든 수준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참기 힘든 건 '어설픈 설정'들이다.
5. '플레이그라운드'는 여러가지 거슬리는 설정이 등장한다. 그 중 제일 거슬리는 건 킬러를 양성하는 훈련소의 보안 수준이다. 10대 아이들을 통제하면서 빡빡한 룰이 있는 것처럼 소개하지만 생각보다 아이들은 제멋대로 돌아다니면서 비밀을 파헤친다. '사소한 영화적 허용'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이 이야기에서 훈련소의 보안은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런 훈련소의 보안이 우리 동네 주상복합 아파트보다 못하다. 뭔가 대단히 있어보이는 척 하지만 어설픈 보안 때문에 이런 의도는 와장창 깨져버린다.
6. 극 중 훈련소를 운영하는 '아버지'는 훈련생들에게 "두 달 동안 훈련을... (어쩌고 저쩌고)"이라는 대사를 한다. 대충 두 달 훈련을 받더니 얼추 킬러가 된 모양이다. 요즘 군대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내가 군입대 할 당시 훈련병 기간은 6주였다. 경우에 따라 후반기 교육까지 받으면 두 달은 훌쩍 넘긴다. '실미도'도 훈련 과정은 두 달을 넘겼을 것 같다. '훈련이 빡세다'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 연출 또한 어설프다. 게다가 이 훈련소는 미국 뉴욕 한복판에 있다. 이것 역시 제작비가 부족해서 이렇게 한 모양인데 제대로 할거라면 뉴멕시코 사막이나 미네소타 깊은 숲속 정도로 가야 했다. 한국의 기숙입시학원도 도심에서 벗어난 곳에 있다.
7. 결론: '플레이그라운드'는 회당 10분 남짓의 숏폼 드라마다. 이런 분량은 한국의 웹드라마 수준이다. 한국의 웹드라마는 10~20대들이 좋아할 로맨스물이 주를 이루지만 소소하게 기발한 설정들이 포함돼있다. 그들 역시 큰 돈을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진 않는다. 대신 아이디어로 차별성을 확보해 시청자들에게 어필한다. '플레이그라운드'의 환경은 한국의 웹드라마와 비슷할거라 예상된다. 그런데 여러모로 한국의 로맨스 웹드라마보다 훨씬 구리다(몇 개 보진 못했지만, 그나마 몇 편 봤던 '에이틴', '사당보다 먼 의정부보다 가까운'과 비교한 결과다). 가난한 제작환경은 아이디어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블랙필즈라는 플랫폼 역시 적은 투자비용 안에서 아이디어로 탄생한 차별화 된 OTT 플랫폼이라 생각된다. 그런 플랫폼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하기에 '플레이그라운드'는 많이 부족해보인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시리즈물로 넷플릭스의 프랑스 드라마 '카이드'가 있다(10분 남짓의 페이크 다큐 시리즈물). '카이드'도 드럽게 재미없었는데, 이건 더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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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엉성하죠. 훈련소 보안이 엉성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