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시카리오 스타일의 스페이스 오페라 (스포)
• 좋았던 것
드니 빌뇌브 감독의 전작 시카리오(2015)나 어라이벌(2016, 한국상영명 컨택트)을
보면서, 화려하지도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은 화면에 끊임 없이 시선이 끌려들어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면... 신작 블럭버스터 듄(2021)에서도 빌뇌브 감독이 자신의
장기를 십분 발휘한 것에 아주 만족스러울 겁니다.
시카리오 영화와 비교하면 각본가도 바뀌고 촬영감독도 바뀌었는데요. 그럼에도
감독이 자신의 장기를 잘 발휘했다는 사실에서, 그런 흡인력 있는 화면은 다른 누구보다
감독의 연출 스타일에서 나왔다는 것도 알 수 있죠.
그렇게 듄2021에서 감독은 자신의 스타일을 잘 살려 내는 한편으로, 방대한 원작을
압축하면서도 드라마의 완성도 역시 놓치지 않는, 굉장히 어려운 목표를 절묘하게
달성해냈더군요. 이건 정말 감탄스러웠습니다.
저의 경우, 듄 원작 소설을 미리 읽지는 않았지만 듄 1984 영화는 미리 봤었는데요.
같은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라 듄1984를 보면 듄2021의 예고편이 이해가 되어
버리거든요. 결국 영화 내용의 대부분을 미리 알고 본 셈이죠.
그렇게 내용을 알고 봐도 2시간 반 넘는 상영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빌뇌브 감독은 또 이렇게 그려냈구나 하면서요.
• 그래도 아쉬움
하지만 보면, 시카리오 영화에 대해서 지루하다는 등으로 싫어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죠.
그런 사람들한테 듄2021 영화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블럭버스터 SF영화를 보러갔는데
역사 드라마를 본 것처럼 별로였을 것 같기도 해요.
물론 영화 감상이라는 것이 예/아니오로 딱 떨어지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생각도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요.
비록 지루하지 않게 보긴 했지만, 저도 중간에 한두번 시간 체크를 하게 되더라구요.
요새 블럭버스터 SF들이 상영시간이 길더라도 눈 뗄 틈 주지 않고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것에 비해, 듄2021은 여유를 가지고 볼 수 있었다는 뜻인데요.
감독의 절묘한 연출력에는 감탄했지만, 10분~20분 정도 더 압축했더라면 더욱 현대적이고
대중성 있는 SF블럭버스터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시카리오나 어라이벌에서는 그렇게 시선을 계속 잡아끌고 가다가 결정적으로
터뜨리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듄2021에서는 그렇게 터뜨리는 부분이 없어요.
이건 원작의 내용을 알고 보기 때문인 이유도 있겠지만, 영화를 2부작으로 나눴기
때문인 듯도 해요. 이 부분에서 꽤나 허전함이 느껴졌습니다.
• 스페이싱 길드의 배제
듄 원작과 듄1984에서 항성간 우주여행과 운송을 독점하는 스페이싱 길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세력이지만, 듄2021에서는 스페이싱 길드가 최소한으로 등장할 정도로
배제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듄1984처럼 시작 부분에서 황제와 스페이싱 길드가 결탁하는 내용이
나왔다면 설명력이 나은 영화가 되었을 거라고 하던데요. 단순히 영화를 압축하기
위해 앞부분 설명을 잘라낸 것이 아니라, 스페이싱 길드를 배제하기 위해 잘라낸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듄2021에서는 주인공 폴 아트레이드와 어머니 제시카의
생존이 베네제서릿 일파와 하코넨 가의 밀약으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듄1984에서는 황제와 스페이싱 길드의 밀약, 베네제서릿 일파의 개입, 하코넨 가의
꼼수, 배신자 유에의 계략 등이 복잡하게? 지저분하게? 꼬이다가 폴과 제시카가
생존하게 되거든요.
듄2021에서 스페이싱 길드를 배제하면서 원작을 압축하기 편해졌을 뿐 아니라,
서사도 더욱 명료해지고 개연성도 높아졌습니다. 스페이싱 길드 배제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상당히 좋은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스페이싱 길드와 원작의 결함
프랭크 허버트의 듄 원작에서 스페이싱 길드는 항성 간 초광속 여행을 독점하는 집단
입니다. 어떻게 특정 집단이 초광속 여행을 독점하게 되었을까요?
과거 은하 제국에서 기계와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인간을 침해하자, 반기계 혁명이
일어나서 지능을 가진 기계들을 몰아내게 되었는데요. 이 후 항성간 여행은 스페이싱
길드가 길러낸 항법사들, 스파이스 물질을 이용해 계산 능력과 예지력을 극단적으로
향상시킨 항성 여행 항법사들이 전담하게 되었거든요.
듄 소설의 첫권이 발매된 해는 1965년으로, 원작자 프랭크 허버트는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던 아시아 신비주의, 인간에게 개발되지 않은 신비한
능력이 있다는 여러 신비주의에 심취해서 이런 소설을 구상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1977년 첫 개봉한 또 다른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인 스타워즈 시리즈도 아시아 신비주의
중에서 중국문화권의 기(氣)를 중요한 요소로 차용해서 유명한데요. 프랭크 허버트는
이슬람 신비주의에 매료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양한 아시아 신비주의가 1990년대까지 많은 관심을 끌다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차츰 사그라들게 되죠. 그런 신비주의의 내용이 인간의 정신 작용에 대한 무지, 허구,
환각, 판타지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것임을 이해하게 되었거든요. (그런 신비주의가
인간의 정신건강에 도움을 주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여기서는 넘어갑니다)
신비주의가 쇠퇴해도 스타워즈 시리즈는 크게 영향 받지 않았습니다. 기계 문명과
신비주의를 상당히 조화롭게 조합해서 미래 세계를 묘사했기 때문에요. 하지만, 프랭크
허버트의 듄처럼 지능적인 기계를 완전히 배제한 우주시대라는 설정은 곤란해졌습니다.
1960년대, 컴퓨터가 유아기 수준이고 지능적 기계는 SF 허구였던 시대가 아닌 21세기
현재의 관점에서는 허황된 판타지로 보이거든요.
• 빌뇌브의 스페이싱 길드 배제
드니 빌뇌브 감독이 듄을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 제가 제일 관심 갔던 부분 중 하나가
바로 그 부분, 기계를 없애고 스페이싱 길드가 항성간 여행을 독점하는, 현대의 관점에서는
허황된 설정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부분이었습니다.
위에 적었듯이 감독은 단순하면서도 현명한 선택을 했더군요. 그냥 스페이싱 길드를
보이지 않게 만들기... 어차피 원작에는 다뤄야할 요소들이 넘쳐나니까요.
듄2021에서는 스페이싱 길드를 배제하면서 여러 모로 좋아졌는데요. 다음 편에서도
배제할 수 있을까 궁금해지네요.
스페이싱 길드의 배제로 다 좋아진 것은 아니고, 안 좋아진 점도 하나 있었어요.
스페이스 오페라 류의 영화에서는 항성간 여행을 화려한 특수효과로 시각화하는
장면들이 음식의 양념처럼 보는 맛을 더해 주었거든요.
듄2021에서는 항성간 여행을 화려하게 시각화한 장면들이 없어서 영화가 더욱
밋밋했던 것 같네요.
듄2021... 방대한 원작을 효과적으로 압축하면서도, 감독 스타일의 장점을 살리고
드라마의 완성도 역시 놓치지 않은 절묘한 연출에 감탄했지만... 원작의 결함부터
시작해서 감독 스타일까지, 현대 블럭버스터 SF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채워주기는
부족한 부분도 있었다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듄2021에 대한 반응을 보면, 다른 영화들에 비해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던데요.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좋아하는 사람들도 납득이 되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납득이 되더군요.
추천인 7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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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야 빌뇌브 식 화면 연출이 좋아서 지루한 줄 몰랐지만요 ㅎㅎ
빌뇌브는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명감독,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예술영화 감독이잖아요.
블럭버스터 영화에 예술영화라고 하면 비꼬는? 의미라서...
처음에는 "시카리오 얼라이브가 좋으셨다면 듄2021도 100%라고는 못해도 90% 이상 만족하실 듯 해요"라고
적었는데... 다시 보니 벌써 보셨는데 별로 마음에 안 드셨다는 뜻으로 적으셨네요 ㅎ
그럴 수도 있겠죠.
저도 임팩트 면에서는 시카리오나 어라이벌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그 임팩트가 없었다면 시카리오나 어라이벌도 상당히 별로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듄이 딱 그 임팩트 없는 시카리오... ㅎㅎ
프리즈너스는 제가 안 봐서 잘 모르겠지만 어라이벌(컨택트)은 저도 정말 좋았네요.
시카리오+어라이벌로 빌뇌브 감독이 헐리웃에서 뜨는 감독 촉망 받는 감독이 되었죠.
그의 영화들이 대부분 마이너 취향인 걸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프리즈너스’도 ‘그을린 사랑’도 상당히 재밌습니다. 특히 ‘그을린 사랑’은 생각보다 스펙터클이 꽤 있어서 흥미진진하게 흘러가니 권해드립니다.
그리고 제 생각보다 잔잔하다는 평이 많네요. 저는 듄 보면서 와 이렇게 계속해서 액션이나 거대한 스케일의 웅장한 장면을 낸다고? 빌뇌브가? 싶었거든요.
음악도 지루하지 않게 한 몫 했다고 느꼈는데, 개인마다 감상이 정말 다르다고 느끼네요. 제가 인천 아이맥스 관에서 봤는데 스피커가 달라서 그런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공감 가면서도 대부분의 평이 제 감상보다 지루하다는 평이 많아서 좀 안타깝습니다. ㅎㅎ. 저는 혹성탈출을 이은 훌륭한 트릴로지가 또 하나 나오는구나 싶어서..
그런가요?
제가 보기에는 블레이드러너2049하고 듄2021은 스타일이 많이 다른 거 같아요.
저도 최근 SF블럭버스터는 모두 돌비에트모스 지원하는 상영관에서 봤거든요.
음악은 빌뇌브가 원래 적극적으로 쓰는 감독이 아니라서 그런갑다 했는데요.
듄2021의 음향이 다른 SF블럭버스터에 비해 떨어진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구요.
의자까지 울려서 귀찮기는 다른 영화나 비슷 ㅎㅎㅎ
'그을린 사랑'은 처음 들어보는데 '프리즈너스'는 여러 사람들이 좋다고 하더라구요.
찾아서 봐야겠습니다.
제가 봤던 인터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번 ‘듄’ 보면서 감독이 상업성도 잡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미학적 성취는 ‘듄’에서 어느정도 엿보인다고 느꼈고, 당시의 흥행 실패는 이번 연출 스타일에도 큰 영향을 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뭐 제 생각이고 첫 감상일뿐입니다. ㅎㅎ.
'그을린 사랑'도 빌뇌브의 초기작으로 상당히 좋았나봐요. 찾아보겠습니다.
저는 블레이드러너2049를 상당히 안 좋게 봐서, 그 영화에 대해 "미학적 성취"라면
"무슨 미학? 그런 식이면 듄1984도 컬트적 스팀펑크 미학"이라는 생각이 들어버리네요.
비꼬는 의미죠. 데이빗 린치의 듄1984 미장셴에 대해 썰렁하면서도 지저분하게 채워
넣었다며 절래절래하기 때문에...
듄2021은 잘 정돈되고 현대적인 미장셴을 보여줘서 만족합니다. "너무 깔끔한 거
아닌가?" 그러니까 화면에서 불필요해 보이는 요소들을 지나치게 배제한 것 아닌가
생각도 합니다만...
아무래도 블럭버스터 영화들은 감독이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줄어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