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1
  • 쓰기
  • 검색

[BIFF] 벗어날 탈 : 스포 없는 후기 및 스포 포함된 주관적 해석입니다.

어둠속의댄서
967 2 1

후기 (스포 x)>

이번 부국제에서 파비안 다음으로 두번째로 인상깊게 본 작품입니다. 영화의 시놉시스만 읽어봐도 난해한 인상을 주는 데다가 영화 자체도 다 보고나면 답보단 궁금증들이 먼저 떠오르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짧은 러닝타임 동안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들을 통하여 무시무시한 몰입감을 만들어내는데다가, 다 보신 이후로는 쉬이 구체화되지 않는 개개인만의 감상이 분명 생겨나면서 왠지 개운한 느낌이 드실 겁니다. 

우리나라 영화 중에서 (그것도 독립영화에서!) 이토록 철학적이고 종교적으로 깊이있으면서도 흥미롭고 창의적인 표현기법까지 갖춘 영화가 등장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고스트 스토리>나 <토리노의 말>과 같은 상징적인 기표들을 해석하는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강추합니다!!

 

 

*아래부터는 제가 왓챠개인평으로도 올린 영화에 대한 제 주관적인 해석입니다. GV에서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벗어날 탈>을 감상하는 데에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으니, 한 명의 관객의 감상이겠거니 하고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관적 해석 (스포 o)>

모든 구도의 길에서는 진리를 찾아헤메는 '구도자'와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진리', 그리고 구도자가 자신의 순례길에서 맞닥뜨리는 '진리'에 대한 힌트들, '진리의 그림자들'이 존재한다.

이 영화에는 두 가지 구도의 길이 제시된다. 용철은 자신의 필연적인 죽음 이전에 하나의 '진리'를 포착하기 위한 순례길에 오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무'를 무기로서 사용한다. 그는 자신이 학습한 글귀들과 자신 주변의 물체들을 '무화'시킨다. 영화의 첫 나레이션처럼 용철은 관찰자의 편향된 시선이 진리로의 도달을 방해한다고 믿으며, 그에 따라 일시적이고 물질적인 번뇌들을 지워나간다.

지은 또한 구도의 길을 걷고 있다. 그녀는 죽음을 향해 움직이는 동적인 이미지들에 대한 공포감을 품어 시간의 진행을 정지시킨, 죽음으로부터 유예시킨 이미지들만을 그려왔다. 이제 그녀는 그 공포감을 극복하여 움직이는 이미지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오랜 기억 속에 품었던 '해변의 사내'를 죽음에서 건져올리는 이미지를 만들고자 한다. 처음에는 그녀도 지워나감으로써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 즉 용철과 비슷한 구도의 길을 택하고자 했으나 이내 이것이 버거운 길임을 깨달아버린다.

따라서 그녀가 택한 길은 생도 죽음도 없으나 끊임없이 움직이는 윤회의 이미지를 해답 삼아, '해변의 사내'를 죽음에서 건져올리는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반면 용철이 일시적이고 편향된 '물질' 혹은 '육신'이 주는 고뇌를 지워나가며 구도하는 방식은, 오랫동안 불교에서 강조되어온 윤회의 고리를 끊고 열반에 오르고자 하는 구도의 방식과 상통한다. 여기에서 둘 사이의 차이점이 발생한다.

어쩌면 용철이 지은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유령을 극도로 두려워했던 게 이와 관련있을지도 모른다. 지은의 애니메이션처럼 다리를 벌려 자신을 윤회의 반열에 올려 생으로 순환시키려는 유령의 이미지는, 육신의 번뇌가 재시작되는 것을 경계한 용철에게는 마귀와도 다름없었을 것이다. 용철이 추구하고자 하는 진리는 덧없이 변화하며 순환하는 윤회에 영향받는 것이 아닌 절대적이고 고정된 속성의 것이었다. 반면에 지은은 자신이 그동안 추구해온 '사진'과도 같이 멈춰있는 이미지들이 사물의 본질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한계를 내심 깨닫고 있었기에, 그녀가 추구하는 진리는 '물체는 지우고 행위만 남긴' 동적이고 움직이는 속성의 것이었다. 결국 구도의 끝에서 용철과 지은은 개별적으로 추구한 진리를 직접 목도하게 된다. 용철은 관찰자 없이도 포착되는 진리(듣는 이 없이 들리는 유리잔의 깨지는 소리)를, 지은은 자신의 움직임에 따라 같이 움직이는 진리(흙탕물에 비치는 건물의 형상)을 각각 발견해낸다.

이렇게 구도에 있어서 진리관에서부터 그 종착지까지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이었지만, 이 둘의 구도에서 나타나는 한 가지 공통분모가 있다. '검은 옷의 남자'로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그 공통분모이다. 용철의 관찰에 따르면 그 남자는 화염으로 표현되는 '무'를 직접적으로 체험한 인물이며, 지은의 관찰에 따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강물을 바라보거나 빙빙 도는 춤을 추는 등 자신만의 구도를 이어나가는 인물이다.

'검은 옷의 남자'가 자신만의 구도를 통해 무엇을 찾고자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가 강물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용철이 부처들이 태어나는 곳이라 일컬은 '동산수산행'의 이미지가 연상되고, 이는 지은이 발견한 '흙탕물 속의 건물'의 형상과도 겹치게 된다. 더 흥미로운 것은 '검은 옷의 남자'가 빗속에서 빙빙 돌며 추는 춤은 지은의 애니메이션이 유래된 윤회의 형상을 연상시키면서도, 이는 빗물에 흠뻑 젖은 채로 명상에서 깨어나는 용철의 이미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검은 옷의 남자'는 용철과 지은의 구도를 이어주는 매개체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용철과 지은의 분신이다. 그리고 '검은 옷의 남자'에 의해 연결된 이후 두 남녀는 진정으로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진리관을 가진 유령으로서가 아니며, 본질이 불분명한 사진 속 '해변의 사내'로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진리관을 가짐에도, 마치 허울을 벗어던진 아사달과 아사녀처럼, 구도에 대한 편향된 시선을 벗어던짐으로써 병존이 가능해진 두 명의 동등한 구도자로서이다.

불일불이(不一不二). 우리는 서로 같지 않으나, 서로 다르지도 않다. 두 남녀의 구도의 끝은 끝이면서도, 끝이 아니다. 각자의 개인적인 진리가 곧 우주적인 진리이다.

* 남자(용철)의 과업 : 육의 번뇌를 무화하고, 진리를 구도하는 것
* 남자가 구도 중에 발견한 것
1) 없다(무)란 불타는 장작더미 위에 인간이 놓인 형상
2) 수많은 부처들이 탄생하는 곳은 '물 위를 건너는 동쪽의 산(동산수산행)'이다.
3) 연기가 나는 자신의 방에서 뛰쳐나간 뒤, 화재로 부상당한 한 남자가 복도로 실려나가는 걸 목격한다.
4) 빨간 옷과 검은 치마의 얼굴없는 여성의 이미지가 끊임없이 그를 괴롭힌다.
5) 방 안에는 지중해를 표현하는 그림이 그려진 냉장고 자석이 있다.
6) 명상에서 깨어난 자신은 땀이 아니라 물에 젖어있었다.
7) 컵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곳에는 그것을 들을 내 자신이 없었다.

* 여자(지우)의 과업 : 죽음에 대한 유예를 멈추고, 동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 그리고 소멸에 이른 '해변의 남자'를 다시 생의 반열에 올려놓는 것
* 여자가 구도 중에 발견한 것
1) 사진은 '지금'인 것마냥 존재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것이 아니다.
2) 탄생도 소멸도 없이 순환하는 이미지라면, 죽음에서 자유로운 동적인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
3) '해변의 남자'를 죽음에서 구하려면 다시 태어나게 하면 된다. 그것은 여자의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할 수 있다.
4) '검은 남자'가 자신의 사진을 불씨 속에서 건져올렸다. 그는 강을 한없이 바라보거나 빗속에서 빙빙 돌며 춤을 춘다.
5) 처음에는 '검은 남자'가 '해변의 남자'일 거라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그는 화재로 죽은 줄만 알았던 남자였다.
6) 가볍게 봐야한다. 물체는 지우고 행위만 남긴다.
7) 내가 이동하면 물에 비친 건물도 이동하고, 내가 멈추면 물에 비친 건물도 멈춘다.
8) 지워나가면서 이미지를 생성하는 과정은, 새로 만들어나가는 것만큼이나 버거운 과정이다.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2

  • 록산
    록산
  • 시아z
    시아z

댓글 1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profile image 1등
글 잘 읽었습니다.
고스트스토리와 토리노의말 두 영화 다 제가 마음이 어수선할때
그냥 틀어놓기만해도 좋은 영화인데 영화평를 읽으니 이영화는 꼭 봐야겠네요.
14:40
21.10.14.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차이콥스키의 아내] 시사회에 초대합니다. 10 익무노예 익무노예 3일 전19:34 1360
HOT 트랩 - 공식 예고편 [한글 자막] 3 푸돌이 푸돌이 2시간 전18:33 628
HOT '레벨 문 파트 2' 해외 주요 매체들 리뷰 제목 3 golgo golgo 2시간 전18:34 607
HOT 전도연 & 박해수 연극 '벚꽃동산' 포스터 2 NeoSun NeoSun 2시간 전17:53 952
HOT 넷플릭스 '종말의 바보' 제작보고회 1 NeoSun NeoSun 2시간 전18:02 607
HOT 최근에 본 미드 4편에대한 단평~~ 6 방랑야인 방랑야인 6시간 전14:27 1601
HOT '레벨 문 파트 2' 현재 로튼 리뷰 전부 썩토 6 golgo golgo 3시간 전17:31 1307
HOT [불금호러] 고정관념을 뒤집어라! - 터커 & 데일 Vs 이블 12 다크맨 다크맨 9시간 전11:23 727
HOT [펄프 픽션] 30주년 기념 레드카펫 행사장 사진 1 시작 시작 3시간 전17:50 500
HOT <레옹> 메박 포스터랑 드로잉 챙겼는데 괜춘하군요! 2 선우 선우 3시간 전17:34 457
HOT ‘에이리언 2’ 다큐 <에이리언 익스팬디드> ─ 카메론 ... 5 카란 카란 7시간 전13:35 861
HOT '레벨 문 파트2 더 스카기버' 넷플 업 3 NeoSun NeoSun 4시간 전16:05 714
HOT <메멘토> 너무 난해해서 “관객 이해할 수 없을 것” ─ ... 5 카란 카란 7시간 전13:12 3345
HOT CGV [범죄도시4] IMAX, 4DX 포스터 4 오래구워 5시간 전15:37 1194
HOT 울산의 별 - 간단 후기 4 소설가 소설가 8시간 전12:31 679
HOT <미션 임파서블> 8편으로 톰 크루즈가 졸업? ─ “무시... 4 카란 카란 6시간 전13:58 1751
HOT <나츠메 아라타의 결혼> 야기라 유야 주연으로 실사 ... 2 카란 카란 6시간 전14:22 550
HOT <애비게일> 보도스틸 공개 3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7시간 전13:19 406
HOT <올드보이> 영어판 TV 리메이크 준비중 2 mcu_dc mcu_dc 7시간 전13:08 662
HOT 범죄도시 1~4편 씨네21 별점 비교 11 영화그리고 영화그리고 8시간 전12:25 2886
HOT 이번엔 시장에 가신 조지 밀러 감독 - 워너코리아 6 NeoSun NeoSun 8시간 전12:01 1520
1133227
image
e260 e260 13분 전20:39 60
1133226
image
e260 e260 13분 전20:39 59
1133225
image
NeoSun NeoSun 51분 전20:01 212
1133224
normal
GreenLantern 1시간 전19:43 275
1133223
image
시작 시작 1시간 전19:17 374
1133222
image
중복걸리려나 2시간 전18:36 292
1133221
image
golgo golgo 2시간 전18:34 607
1133220
normal
푸돌이 푸돌이 2시간 전18:33 628
1133219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8:02 607
1133218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7:55 424
1133217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7:55 421
1133216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7:53 952
1133215
image
시작 시작 3시간 전17:50 500
1133214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7:47 466
1133213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3시간 전17:35 265
1133212
image
선우 선우 3시간 전17:34 457
1133211
image
golgo golgo 3시간 전17:31 1307
1133210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7:14 284
1133209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7:03 278
1133208
image
샌드맨33 3시간 전16:57 543
1133207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6:48 245
1133206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4시간 전16:35 291
1133205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6:24 298
1133204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6:21 326
1133203
image
NeoSun NeoSun 4시간 전16:05 714
1133202
image
golgo golgo 4시간 전15:56 405
1133201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15:50 680
1133200
image
오래구워 5시간 전15:37 1194
1133199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5시간 전15:23 508
1133198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5시간 전15:19 346
1133197
image
NeoSun NeoSun 5시간 전15:09 701
1133196
image
NeoSun NeoSun 6시간 전14:51 252
1133195
image
오래구워 6시간 전14:49 289
1133194
image
방랑야인 방랑야인 6시간 전14:27 1601
1133193
image
카란 카란 6시간 전14:22 550